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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구경가세

기사승인 2019.11.17  02: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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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금강산’이란 노랫말처럼 1998년 금강산 관광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은 귀가 번쩍 뜨인 소식이었다. 11월 18일 역사적인 금강산 유람선 ‘현대 금강호’가 첫 출항을 한 것이다. 낯선 왕래가 신뢰의 디딤돌이 되어 2년 후 2000년 6월 15일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남과 북은 개성공단 건립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어렵게 열린 금강산 관광은 10년 만에 불행히도 한 관광객이 피격되어 급작스레 중단되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개성공단마저 일방적으로 폐쇄를 통보함으로써 남북교류는 전면적으로 빗장을 걸어 잠궜다. 그리고 지금 10년 동안 침묵하던 금강산이 다시 핫이슈가 되고 있다. 절정에 이른 단풍뉴스가 아니다. 이젠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을 철거하겠다는 북측의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은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해빙을 맞는 계기가 되었다. 남과 북 모두에게 관계복원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곧 금강산관광이 재개되고, 개성공업단지도 동력을 회복하리라는 희망이 넘쳤다. 그런데 지지부진한 북-미 협상이 번번이 기대심리를 비껴가면서, 오히려 희망고문에 그치고 말았다. 행여 북한이 금강산 협력의 불씨를 완전히 꺼뜨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이유이다.

  점점 자유로이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던 시절이 과연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고 있다. 모처럼 10년 간 잠잠하던 금강산 관광재개 여론이 차차 되살아나는 까닭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초조함 때문만은 아니다. 기왕에 살려 놓은 남북관계의 봄기운이 행여 다시 엄동설한으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배경일 것이다.

  내게 좋은 시절이 있었다. 금강산을 세 번 여행하고, 개성을 두 차례 방문한 이력이 자랑스러운 이유다. 금강산 여행의 백미는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 이렇게 네 분을 나란히 모시고 다녀온 2005년 6월 말 일이었다. 감리교 서부연회가 제1회 평화통일기도회를 금강산에서 열었는데, 양쪽 부모님에게 참여를 권유했더니 모두 적극적으로 참석하셨다. 지금 고인이 되신 부모님과 장인어른께 이만한 효도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2박3일 간 열린 금강산 일정은 기도회도 기도회였지만 참 좋은 효도관광이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이만한 유람이 없었다. 그때는 이미 금강산 관광 연인원이 100만 명이 넘었기에 그다지 새로운 일도 아니었지만,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천하제일명산에 대한 호기심은 가벼운 긴장감을 주었다. 입경을 위한 준비와 지리한 수속, 약간의 눈총과 부자유, 비싼 여행 경비 등 모든 불편을 감수하더라고 남는 장사였다.

  구룡연을 산책할 때는 어머니와 동행하고, 만물상에 다녀올 때는 장모님과 함께 하였다. 금강산 호텔에서 온천욕을 하면서 하루는 아버지를, 또 다음날은 장인을 모시고 차례로 등을 밀어 드렸다. 네 분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삼일포 해변을 산책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대동강 횟집에서 식사를 할 때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양가양친 모두 모시고 다니던 나를 칭찬하여 으쓱하던 기억이 까마득한 과거 일이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일기를 살펴보니 이런 대목이 있다. 어머니의 금강산 여행 15년 전 일인데, 이제 막 남과 북의 문이 열려 남북을 오가며 총리회담이 열릴 무렵이었던가 보다. 
  “오늘은 한국에 대표단이 이북에 90명이 간다. 7시에 출발했다. 이번에는 좋은 성과가 있어야지. 우리는 언제 금강산 구경가나. 백두산도 가보아야지. 더 늦기 전에 통일이 되어야지. 그리던 사람 만나게”(1990년 10월 16일 자 어머니 일기 중).

  이제 생각하니 금강산 구경을 소망했던 어머니의 꿈이 내 가벼운 권유를 통해 이루어졌다니 놀랍다. 그 문을 열기 위해 1998년 6월 정주영 회장은 500마리 소떼를 싣고 판문점을 넘었다. 선각자처럼 그 이전에 불법 혹은 합법의 경계선을 넘나들던 사람들의 무모함도 있었다. 2007년 5월에는 북쪽 금강산 청년역과 남쪽 제진 역을 연결하는 동해선 철길도 열렸다. 
 
  금강산의 기적은 어머니의 소원 이전에 온 국민적 여망의 결과였다. 어렸을 적 배운 동요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처럼 볼수록, 들을수록, 아름답고 신기한 놀라움이었다. 2019년 가을 이 즈음 들어야 할 핫이슈는 금강산의 또 다른 이름 풍악산처럼 온 산을 불태우는 떠들썩한 단풍소식이고, 마침내 금강산 관광객 1천만 명을 넘어섰다는 꿈만 같은 뉴스여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다시 ‘늙은 군인의 노래’를 목청껏 불러야한다. 남북관계에는 더 이상 물러 설 청춘이 없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우리에게 효도할 기회가 마냥저냥 있는 것은 아니더라.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갔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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