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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의 의식변화 (2)

기사승인 2019.11.28  20: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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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나라가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선 것은 피터 대제(표트르 1세)부터다. 그가 모스크바 공국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고 새 수도를 건설했을 때가 1703년이다. 1917년까지 존재했던 로마노프 왕조는 1613년 모스크바에서 시작됐지만, 러시아 역사는 피터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러시아 제국’이 된 1721년부터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토가 많지만 러시아 땅의 크기는 지구 땅덩어리의 1/8을 차지한다. 한 나라가 아시아에도 속하고 유럽에도 속하는 나라는 러시아 밖에 없다. 유라시아(Eurasia)는 러시아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쉬지 않고 달려도 일주일 너머 걸린다. 러시아는 그렇게 넓다.

1240년부터 1480년까지 러시아인은 타타르의 지배를 받았다. 타타르(Tatar, Tartar)는 러시아인이 몽골을 부르는 말이다. 몽골인들이 ‘타타타타’ 말을 타고 쳐들어왔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북쪽 미개인들이 ‘바바바바’ 말한다고 해서 그리스인이 그들을 바바리안(Barbarian)으로 불렀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다른 견해도 있다. 몽골인을 희랍 신화에 나오는 지옥 ‘타르타로스’(Tartaros)로 부르게 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몽골인은 유럽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몽골인은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노예가 필요 없었다. 그래서 점령지를 약탈하고는 다 죽였다. 마상에서 육포를 뜯어 먹으며 파죽지세로 달려오는 타타르인을 막아낼 민족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럽 중심까지 쳐들어갔던 몽골인들은 칸이 죽자 철수했다. 몽골 제국은 네 칸국(Khanate)으로 나뉘었다. 중앙아시아 북부와 동유럽의 여러 공국들은 킵차크 칸국(Golden Horde Khanate, 1240-1502)의 지배를 받으며 공물을 바쳤다. 공국들 중에서 킵차크 칸에게 가장 충성한 자는 모스크바 공국의 대공이었다. 모스크바 공국의 권력자들은 공물을 바치면서 몽골의 통치술을 배웠다. 인민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전제주의 통치술 말이다. 15세기 후반 킵차크 칸국이 사그라지자 모스크바 공국은 강력해지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공국을 러시아라는 ‘나라’(나치아, nation)의 태동기로 본다면 러시아는 시작부터 ‘인민’(나로드, people)의 나라가 아니었다. 슬라브인들이 러시아를 세웠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일 뿐 정확한 말이 아니다. 러시아 인민은 나라가 아니라 ‘미르’로 결속되어 있었다. 미르(Mir)는 강력한 농민 공동체였다. 살기 힘든 땅에서 도우며 살아야 하는 러시아인들에게 그것은 필연적인 운명 공동체였다.

러시아 역사를 보면 항상 나라와 인민이 부딪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러시아인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내가 권력자를 뽑고 내가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생각은 러시아인의 생각이 아니다. 나라는 권력자가 부리고, 인민 개개인은 공동체 속에 숨어 있다.

러시아인들에게 그토록 참을성이 많은 이유, 회의 때 객관적인 사실을 두고는 옳고 그름을 열심히 얘기하면서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 정교회에 속해 있으면 다 잘 된다는 믿음은 먹히고 ‘내가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는다’는 프로테스탄트 믿음은 안 먹히는 이유도 이와 관계 있다.

러시아에 온지 여섯 해가 됐다. 스무 해 전 선교사로 있었던 다섯 해를 더하면 십 년이 넘었다. 스무 해 전에는 러시아인 교회를 세웠으니 이번엔 고려인 교회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일은 전보다 쉽지 않았다.

지난 달 세례 받고 입교한 교인 수가 스무 명 됐다. 해마다 한글을 배우는 고려인들 중에서 두세 명씩 전도해 모은 교인들이다. 때가 됐으니 러시아 종교청에 교회 등록을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교회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목사는 외국인이므로 대표로 이름을 올릴 수 없다. 교회를 대표해서 등록할 사람이 3명 필요했다. 회의를 하는데 모두 말이 없다.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결석한 교인들도 있었다. 나는 다음 주일에 회의를 속행하기로 하고 집에 가서 기도해 보라고 했다.

다음 주일에 다시 모였지만 상황은 마찬가지. 아이를 낳느라 오래 출석하지 못했던 젊은 교인이 나섰다. 일단 한 사람으로 교회 등록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다. 교인들은 내 마음을 간파하고서 말했다. 당국이 무섭고 자신들은 여전히 걱정된다고.

그 동안 고려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더듬어 알 수 있는 모습이다. 고려인의 의식이 변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함을 실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사람의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별명을 가졌다. 아무 것도 없던 해안가에 웅장한 도시를 세우느라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피터 대제는 큰 도시를 세우고 개혁을 밀어붙였지만, 그것은 위로부터 개혁이었다. 1917년 공산혁명이 일어났다. 체제를 들어 엎는 전대미문의 혁명이었다. 그것도 공산주의자들이 실행한 위로부터 혁명이었다. 1980년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개혁과 개방)가 일어났다. 그것도 위로부터 개혁이었다.

그럼 개혁과 혁명이 일어날 때 인민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대개는 참고 있었다. 러시아인은 자신을 감추려는 수동적 태도가 강하다. 러시아인에게 질문을 던지면, 즉각 모른다고 쌀쌀맞게 대꾸한다.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게 아니다. 잘 모르는 상대방과는 무조건 대화를 끊어서,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이에 비하면 지금 한국인들은 능동적이다.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참여도 잘한다. 반세기만에 한국인들이 이룬 민주화 덕분 아닐까 한다.

박효원 hyo1956@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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