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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스토리

기사승인 2019.12.04  0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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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주변 나무들에 붙어있던 낙엽들이 다 떨어져 버렸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드니  왠지 쓸쓸함이 밀려온다.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니 무언가 따뜻한 것으로 속을 채우고 싶어진다.

집으로 가는 도중 마트 입구 한 구석에 있는 허름한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향했다. “붕어빵 천원어치 주세요” 천원에 3마리, 가격도 참 저렴하다. 뜨끈뜨끈한 붕어빵이 담겨진 종이봉지가 차가워진 손을 위로해준다. 한 마리를 꺼내 썰썰한 배를 채운다. 고소하면서 달콤한 맛과 바삭하면서 말랑말랑한 식감이 입안에서 맴돈다. 천원으로 즐기는 소확행[小確幸]이다.

붕어빵은 일본의 타이야끼(도미빵)가 1930년대 말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붕어빵으로 모양과 이름이 바뀐 것이다. 타이야끼(도미빵)의 원조는 일본의 이마가와야끼(풀빵)이다. 이마가와야끼는 18세기 일본에 전파된 서양의 와플을 일본인의 입맛에 변형시킨 빵이다. 일본에 전해진 와플은 이마가와야끼(풀빵)로, 에도시대(1603-1868) 통용되던 금화(金貨)인 ‘오방’의 이름과 모양을 딴 오방야끼(오방떡)로, 일본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인 국화(菊花)가 찍힌 국화빵으로, 그리고 도미모양의 타이야끼(도미빵)로 변형되었고, 그 중에서도 도미빵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미보다 더 친숙한 민물생선인 붕어의 모양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붕어빵의 원조인 일본의 타이야끼(도미빵)는 1909년 오사카 출신의 칸베라는 사람이 도쿄 아자부에 위치한 자신의 제과점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일본의 대표 간식이다. 가게의 이름은 칸베 자신의 고향인 ‘나니와’의 이름을 따서 ‘나니와야’(야는 집, 가게라는 뜻)제과점이라고 지었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인 도미는 ‘백어(白魚)의 왕’이라 불릴 만큼 비싸고 귀해서 부자가 아니면 쉽게 먹을 수 없었다. 칸베는 돈 없는 서민들이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값비싼 도미를 마음껏 즐기는 기분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도미빵을 만들었다. 당시 도미 모양의 빵이 출시되자 평소 도미를 먹고 싶었던 서민들은 열광했고 불티나게 팔렸다. 도미빵을 먹은 이들은 실제 도미구이를 먹었을 때처럼 행복해했다는 말까지 전해진다. 칸베의 타이야끼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자손들에 의해서 명성을 지키고 있다.

일본의 도미빵 틀이 1930년대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처음에는 풀빵으로 불리다가 붕어빵으로 바뀌었고 대중화가 된 것은 1960년대 전후였다. 한국전쟁 이후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누군가는 구호물자로 나눠준 밀가루를 묽게 푼 반죽으로 붕어빵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갔고 누군가는 저렴한 붕어빵으로 굶주린 배를 채웠다.

우리나라에서 붕어빵 기계를 가장 오랫동안 만들어 온 사람은 서일기계 창업주 故 박광연씨다. 대장장이였던 그는 연탄식 붕어빵 기계를 만들어 쌀 한 가마 정도의 가격에 판매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뜬 뒤에는 아들 박동우 씨가 사업을 물려받았고, 지금은 붕어빵 뿐 아니라 호두과자를 비롯한 다양한 제빵기계를 만드는 건실한 업체로 성장했다. 이 붕어빵 기계는 미국, 중국, 호주는 물론 일본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한 동안 모습을 감췄던 붕어빵이 다시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전국적으로 복고열풍이 불었던 1990년대 초반이다. 그 즈음 청파동 숙대 앞에서 붕어빵을 파는 총각 김익태씨와 단골손님이었던 여대생 김현숙씨가 결혼하여 화제가 된 ‘붕어빵 사랑’이야기도 유명하다. 이들은 학력과 신분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하였고 결혼 뒤에도 그 장소에서 붕어빵 장사를 계속하였는데 이들의 붕어빵 사랑은 장안의 화재를 모으면서 1998년까지 계속되었고 명소가 되기도 했었다. 이 부부는 2001년 경기도 구리시 교문리에서 ‘감자탕’집을 내었다고 한다.

붕어빵은 우리가 늘 가까이 먹었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름과 모양이 바뀐 붕어빵의 역사는 이제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우리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붕어빵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음식이다. 가난한 이들이 동전 몇 푼으로 따뜻하게 허기진 속을 달랬던 이 붕어빵에 암울했던 우리 현대사 속 서민들의 사연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추운 겨울 우리 가까이에서 따뜻함을 전해주는 붕어빵처럼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늘 따뜻한 친근함과 기분 좋은 추억을 제공하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따뜻한 붕어빵을 사먹기 위해 이 겨울에는 늘 지갑에 천 원짜리 두세 장정도 넣고 다녀야겠다. 오늘 집으로 들어가는 길 붕어빵 가게가 있다면 가족들과 한 마리씩 따뜻하게 나눠먹어보는 건 어떨까?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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