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분리와 혐오의 시대로 들어섰다. 분리는 불신에서 시작되었고, 혐오는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정치적 편향에 언론이 들러붙었고 이를 파당으로 만들어 싸우는데 종교적 성향과 세대 차이 그리고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같은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이 얹혀 가중되었다. 파(派)가 나뉘고 편(偏)이 갈라지다 보니, 방송 채널은 늘었는데 ‘보는 것만 보고’ ‘듣는 것만 듣는’ 정보의 자발적 장애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에서 “‘진보와 보수’간 갈등이 ‘크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91.8%에 달했다. 추석에 시골 부모님 댁에 갔더니 아버님이 내내 보수적 성향의 종편 방송만 보고 계셔서 답답한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의 대사가 떠오른다. “원래 이 대한민국이 한 다리 건너서 형, 누나, 동생이고, 약간은 오지랖으로 굴러가는 민족이라고!” 맞다! 대한민국 국민의 심성이 원래 남 아프고 힘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뭐라도 거들고 싶어 하는 오지랖에 있고 그래서 눈물도 많고 애정도 깊은 민족이다. 그런데 이 오지랖이 정치와 종교의 문제에 들어서면 ‘약간’이 아닌 ‘도를 넘어서’ 펼쳐지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도 자기편에만 넓히는 외곬의 ‘오지라퍼’가 되어 남의 편에는 상대적으로 그악스레 패악질마저 부린다. 내편이 아니면 모든 것이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광화문 광장에서 이성과 객관적 판단, 종교적 배려와 자비는 하수구로 쓸려 내려간다.
불안한 것은 자기와 자기편에 대한 옹호와 집착이 애국-국가주의, 민족주의, 종족주의, (종교의) 종파주의 등의 갈등으로 이행되어 대한민국을 넘어서 지구(地球)-세계적인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그것은 광화문과 여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세상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갈가위와 같은 개인들의 욕망 그리고 무리마다의 제 욕심 차리기가 쓰레기 하치장의 폐기물 더미처럼 세상 곳곳에 쌓이고 있다.
하워드 가드너는 『교육받지 않은 마음The Unschooled Minds』에서 사람들이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고서도 “세상의 중요한 일에 대해서 나름의 의견을 강력하게 형성하고 있어서 그 의견이 새로운 의견의 수용을 무척 어렵게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교육받지 않은 마음’에 ‘믿지 않는 마음’이 가세해 (적으로 판단한) 상대를 ‘악의 무리’로 규정하고 심지어 정죄하고 있는 행태가 대한민국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의 상황이다.
종교개혁의 영어 표현은 Reformation이다. 앞에 종교를 뜻하는 Religious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당시 유럽에 있어 종교개혁은 교회와 신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의식(意識)과 문화와 생활의 개혁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따로 ‘종교’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종교이자 문화 그리고 생활인 기독교가 변하면 유럽의 모든 것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종교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면 사회가 변할 수 있을까?
조슈아 W. 지프는 『환대와 구원Saved By Faith And Hospitality』에서 “교회의 주요 소명 중 하나가 ‘적의가 환대로 바뀔 수 있는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언명하고 있다. 종교가 다른 사람들과의 우정, 가난과 박해와 같은 불행을 안고 떠도는 거류민(居留民)과의 우호적 관계, 범과에 상응하는 값을 치른 후에도 사회에 복귀하거나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유랑인의 복귀를 돕는 환영 등으로 교회의 소명을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슈아 W. 지프는 제안한다. 환영과 대접, 환대가 곧 현실에서 이뤄지는 구원 사업이 되리라는 놀라운 통찰이다.
환대는 교회의 익숙한 관행이나 예절이 아니라 구원의 근거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메시지)과 행동을 우리가 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 모범을 따라서 실천한다는 증거가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십자가에서 죽게 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정신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죄의 관습과 습관에 얽매인 인류에게 풍성하고 값지고 거룩한 환대”로서의 용서와 구원을 베푸신 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환대, 즉 거룩한 신적(神的) 환대이기에, 이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한 용서받은 죄인-인간은 이웃과 남에게 그 환대를 베풀어야 하는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환대는 인간의 환대에 의해 세상에 구원의 사업을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내편에게로만 향하는 편향적이고 일방적인 오지랖은 세상에 오시는 신적 환대인 구원을 밀어내고 세상을 온통 싸움터로 만들 뿐이다. 내편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라도 은근히 마음을 기울여 약간의 오지랖을 떠는 성탄의 절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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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식 목사(배화여대 교목실장) | ||
전병식 배화여대 교목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