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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예배의 가벼움” (아모스 5장14절~27절)

기사승인 2020.03.22  14: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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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예배의 가벼움” (아모스 5장14절~27절)

 

0. 아모스 5장 후반부 요약

 

“나는 너희 종교행사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너희 집회와 성회는 이제 신물이 난다. 너희가 벌이는 종교 프로젝트들, 너희가 내거는 허영에 찬 슬로건과 목표에 진절머리가 난다. 너희의 기금 모금 계획, 홍보 활동과 이미지 연출도 지긋지긋하다. 너희 자아나 만족시키는 시끄러운 음악들은, 나는 이제 들을 만큼 들었다. 너희가 나를 향해 노래한 적이 언제더냐?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내가 바라는 것은 정의다. 큰 바다 같은 정의! 내가 바라는 것은 공평이다. 강 같은 공평!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것, 내가 바라는 전부다.” (The MESSAGE / 아모스5:21~24)

 

1) 전대미문의 재난을 통해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분의 허락 없이 한낱 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마10:29) 한국교회가 예배당 문을 닫는, 사상초유의 결단을 내리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단지 코로나19의 무서운 전파력이나 타인의 생명을 배려하는 숭고함, 확산방지를 위한 성숙한 공중보건의식의 발현만이 전부였을까.

 

2) 이단사이비에서 벌어진 폭발적인 집단감염사태를 바라보며 또 다른 집단감염의 확산자로 지목 받거나,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엄청난 비난이 더 두려웠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문을 닫은 교회나 문을 닫지 않는 교회, 모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친히 주관하심에 대해서는 동일한 고백 위에 세워진 것에는 틀림없다. 이 고백에서 물론 전염병도 예외는 아니다. 과연 그렇다면, <누가, 교회의 문을 닫은 것인가?>

 

3) 미증유의 전염병 탓인가, 이단사이비가 확산시킨 집단감염의 공포인가, 그도 아니면 만물의 주관자 되시고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이 합력하게 하시어’ 한국교회의 문을 친히 닫으신 것인가. 어쩌면 7대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은 교회들에 대한 경기도의 강력한 행정명령처럼 혹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향해 준엄한 행정명령을 내리신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가혹한 행정명령을 한국교회에 내리셨을까.

 

4) 이런 의문을 품는 충분한 근거가 따로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민족의 우상숭배에 대한 징벌로 강제집행을 이미 시행하신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정든 고향을 떠나 열국에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 : 흩으심, 분산, 이산, 파종), 이스라엘민족의 통치권자이신 하나님의 강제해산조치였다. 성서의 역사 속에서 한두 번 벌어진 사건이 아니고 수차례 시행되었고 또 언제든 다시 시행하겠노라 누누이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5) 마침내 그 경고가 한국교회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중세 로마가톨릭교회 보다 더 타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삼천년 전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우상숭배 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을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확산방지를 위해 교회 문 몇 주 닫은 것으로 할 도리를 다한 것처럼 여기며 엄살을 떤다. 성찰도 없고 회개도 없는 한국교회와 교회지도자들에게 이제 남은 건 더 강력한 하나님의 강제조치 뿐이다. 믿거나 말거나,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할 따름이다.

 

 

1. 동행은 준행이다

 

① (14절~15절)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만군의 하나님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추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구하다(demand, ask)’는 말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목적을 두고 ‘추구하다(seek, pursue one's work)’는 뜻이다. 선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목적을 두고 사는 삶을 가리킨다. 상황 따라 형편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살기 위하여(행복을 위하여)’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동행은 준행이다. 믿는 대로 사는 삶 곧 신앙의 생활화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3)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요셉은 주님과 동행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39:23) 범사는 좋은 일에서 나쁜 일까지 언제나를 뜻한다. 요셉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함께 해주셨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형통케 하셨다. 이 믿음은 삶에서 나타나는데 전염병이 창궐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동행은 준행이고 준행은 순종이다. 순종은 신뢰를 바탕으로 의뢰(맡기는 것)하고 순응(받아들임)하는 것이다. 순종이 어려운 까닭은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다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사55:8~9) 순종의 조건은 믿음이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든 상황을 의뢰하고 받아들인다.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지금은 비록 이해할 수 없어도 마침내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비록 전염병의 순간에도 죽음의 순간에도...

 

② (16절~17절)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메시지성경) ‘다시 나의 주님의 메시지다. 하나님, 곧 만군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거리로 나가 통곡하여라! 가게와 상점마다 곡하는 소리로 넘쳐나게 하여라! 소리내어 울부짖어라. 저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하고 외쳐라. 관공서도 상점도 공장도 일터도 모두 문을 닫고, 사람들을 다 통곡에 동원시켜라. 너희에게 가는 날, 나는 그 소리가 크고 분명하게 들리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포고다’ 전대미문의 재난을 만난 전 세계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하나님 앞에 나가 울어야 할 때다. 통곡하며 울어야 산다. 재를 뒤집어쓰고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회개를 요청하신다. 조기종식이란 헛된 희망을 버려라. 정직한 절망이 참된 희망의 시작이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하실 것이다. 예배당 문을 닫는 미봉책이 아니라 전심으로 회개할 때다. 다른 길은 없다.

 

 

2. 화 있을찐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① (18절~20절) “화 있을찐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 없음이 아니냐”

▶ ‘화 있을찐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반어적인 역설이다. 시한부종말론자들이나 수한부종말론자들이 여호와의 날에 당할 운명이다.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스스로 잘 믿는 줄 착각하며 자신들만이 천국의 주인공처럼 착각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그날은 최고의 날이 아니라, 최악의 날이 될 것이다’ 너희가 그토록 고대하던 그날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는 날이 아니라 무서운 징벌의 날이 될 것이다. 과연 사이비종말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 오늘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잘했다 칭찬 받을만한 삶인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매를 많이 맞을 삶인가, 날마다 겸비해야 한다. 따논 당상인 듯 자만하지 마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이단 사이비 신천지 보다 더 심각한 이들은 여호와의 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가는 세속적인 신앙인들이다. 참된 종말신앙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야 한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빨리 회개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3. 참을 수 없는 예배의 가벼움

 

① (21절~23절)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 (메시지성경) ‘나는 너희 종교행사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너희 집회와 성회는 이제 신물이 난다. 너희가 벌이는 종교 프로젝트들, 너희가 내거는 허영에 찬 슬로건과 목표에 진절머리가 난다. 너희의 기금 모금 계획, 홍보 활동과 이미지 연출도 지긋지긋하다. 너희 자아나 만족시키는 시끄러운 음악들은, 나는 이제 들을 만큼 들었다. 너희가 나를 향해 노래한 적이 언제더냐?’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 자기부인의 희생으로 드려야할 예배가 하나님은 안중에 없고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드리는 종교행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오히려 악한 행위가 된다는 사실이다. 예배당이냐, 온라인이냐는 논하지만 아모스는 재난의 원인을 잘못된 예배에서 찾는다. 잘못된 예배를 막기 위해서 재난을 보내셨다는 도발적인 해석이다.

 

② (24절)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 (메시지성경)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내가 바라는 것은 정의다. 큰 바다 같은 정의! 내가 바라는 것은 공평이다. 강 같은 공평!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것, 내가 바라는 전부다!’ 공법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천하는 정의로운 삶, 정의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실천하는 사회정의다. 공법과 정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오만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을 책망하시며 개인의 삶과 이웃과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몸으로 실천하며 살 것을 요청하신다. 삶의 주관자 되심을 기억하며 삶으로 드려지는 산제사, 진정한 예배다.

 

 

4. 미드바르와 디아스포라

 

① (25절~27절)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를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다. 미드는 ‘함께’란 뜻이고 ‘다바르’는 말씀이란 뜻이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다.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기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곳이다. 광야에서 사십년간 오직 말씀을 듣고 준행하면서 살았다. 진정한 예배다.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화려한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겼다.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 ‘식굿과 기윤’은 고대근동지방에서 별(토성)신인데 ‘가증하고 역겹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아무것도 없던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았다. 하지만 젓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모든 것이 번성하고 풍족할 때 헛된 우상을 좇아갔다.

 

② (27절)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스라엘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예고한다. 앗수르에게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민족이 당할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짐, 분산, 이산, 파종)를 가리킨다. 만국에 분산되어 흩어지고, 옮겨 심으실 것을 가리킨다.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약속의 땅에서 광야로 흩어버리신다.

▶ 전대미문의 코로나19로 야기된 재난을 통해서 한국교회를 향해 던지는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한국교회가 예배당 문을 닫는 사상초유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단순히 코로나19의 강력한 감염력 때문만이 아니다. 이단 신천지의 집단감염사태가 몰고 온 집단감염에 대한 위기의식이었다. 문을 닫은 교회나 문을 닫지 않는 교회 모두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것은 동일하게 고백한다. 이 고백에서 전염병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한국교회의 문을 닫은 것인가? 미증유의 전염병과 이단 신천지집단감염이라는 사태로 하나님께서 친히 한국교회의 문을 닫으신 것이다. 137곳에 대한 경기도의 강력한 행정명령처럼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향해 준엄한 행정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행정명령을 내리셨을까.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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