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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착한 음식 어묵

기사승인 2020.03.24  23: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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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갈 때마다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은 분식을 파는 한 단골가게 앞에 서서 어묵꼬치를 먹는 일이다. 어떤 때는 어묵꼬치를 먹으러 시장에 가는 경우도 있다. 천 원짜리 한 장으로 두 개를 먹을 수 있다. 분무기에 담겨 있는 간장을 두 번 뿌려서 먹으면 간이 딱 적당해진다.

어묵꼬치라고 하니 좀 어색하다. 실제로 우리는 오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묵과 오뎅은 차이가 있다. 어묵은 흰살 생선을 잘게 갈아 소금 간을 한 후 약간의 밀가루를 넣어 뭉친 음식을 말한다. 생선을 갈아 묵처럼 만들었다고 해서 어묵이라고 한 것이다. 오뎅은 일본에서 두부, 어묵, 무, 곤약, 쇠심줄, 돼지고기, 소고기, 달걀 등의 온갖 재료를 가다랑어포, 간장을 넣은 국물에 넣어 익혀 먹는 요리다. 어묵은 식재료 자체의 이름을 지칭하는 것이며 오뎅은 이를 이용하여 만든 요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생선살을 으깨는 조리법은 한중일 모두에게 있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진나라 때이다. 당시 권력자였던 진시황(기원전 247~210년 재위)은 평소 생선요리를 즐겨 먹었는데, 요리에서 생선 가시가 나오면 요리사를 바로 처형시켰다고 한다. 이에 한 요리사가 가시를 제거한 생선살로 시황에게 ‘생선완자요리’를 만들어 바치자 매우 흡족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 어묵은 네리모노로 통칭된다. 생선살을 으깨거나 갈아서 반죽을 만들고, 이를 다양한 모양으로 성형하여 찌거나 굽거나 튀겨낸 음식이 네리모노이다. 네리모노는 일본의 고훈(古墳, 3~7세기)시대 생선살을 나무 막대기 등에 붙여 불에 구워 먹었던 것이 그 시작이다. 그 이후 제조방법에 따라 찌는 것을 가마보코, 굽는 것을 치쿠와, 튀기는 것을 덴푸라로 구별한다.

가마보코는 헤이안(平安, 794~1192)시대에 영주들을 치하하는 잔칫상에 생선 으깬 살을 구워 올렸다는 기록에 등장한다. 갈아서 으깬 생선살을 대나무에 붙여 구운 것으로, 그 모양이 부들 꽃대와 비슷하다 하여 ‘가마보코’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에도(江戶, 1603~1868)시대부터는 생선살을 쪄서 조리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치쿠와는 에도시대 막대기에 생선살을 붙여 구운 후, 그 막대기를 뽑아내면 속이 빈 원통 모양의 어묵이 되는데, 마치 대나무 통처럼 생겼다 하여 이런 이름을 붙였다. 덴푸라는 에도시대 말 류큐국(현 오키나와)과 교류가 있던 사쓰마(가고시마)에서, 기름으로 튀겨내는 요리법으로 가마보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우리나라도 조선 숙종(1674~1720년 재위) 때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산림경제’ 등에 ‘생선숙편(生鮮熟片)’과 ‘생선 완자탕’의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음식들은 지금의 어묵과 가까운 음식이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어묵은 일제강점기때 부산을 통해 널리 전해진 음식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개항과 더불어 부산 동광동과 중앙동 일대에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어묵과 어묵 요리도 함께 들어왔고 이 음식들은 일본인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만들어진 어묵은 일본식으로 만들어져서 유흥업소에 일품요리로 소비되던 고급식재료였다. 이것이 대중화된 음식이 된 것은 1945년 광복이후에 조선인들이 공장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면서 어묵을 본격적으로 생산한 이후부터이다. 자갈치시장에서 판매되고 남거나 상품가치가 없어서 그 자체로 시장에 내다가 팔 수 없는 작은 생선들을 통째로 그냥 갈아서 정어리기름이나 고래 기름에 튀겨낸 후 저렴하게 판매하는 어묵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어묵은 특수를 누렸다. 이런 이유로 부산어묵은 부산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어묵 로드’ 여행을 위해 부산을 찾는 이가 연간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참고로 부산어묵이라고 팔리는 어묵들이 모두 부산에서 만든 것은 아니다. 부산어묵은 일반명사로 취급돼 상표등록이 안 되어서 누구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묵은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값싼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며, 1960년대 산업화시기에 서민들의 주요 반찬거리였고, 소시지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락 반찬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을 시절 값싸고 양 많고 풍부한 영양으로 우리의 반찬과 간식이 되어준 따뜻하고 착한 음식 어묵은 지금도 여전히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이다.

따뜻하고 착한 음식 어묵처럼 고단하고 어려운 상황을 살아가야 하는 어려운 이웃에게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가는 선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되면 좋겠다.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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