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놀라운 선물

기사승인 2020.05.21  23:41:41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당당뉴스>에 글을 올리면서 어느 때부턴가 내 신앙체험을 간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쑥스러워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7년 동안 독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내 생각을 다 드러내 보여주었으니, 이제는 내 신앙체험을 이야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내 신앙체험의 일부를 털어놓으려고 한다.

그런데 내 간증은 다른 사람들의 간증과 다른 면이 있다. 대부분의 간증자는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주신 것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 간중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불치의 병이 나았다고 믿는 경우이다.

나는 그들과 달리 전혀 예상하지 않은 선물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간증하려고 한다. 아브라함 내외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노쇠한 자기 내외는 아들을 낳을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이삭을 그들에게 주셨다. 이렇게 그들이 예상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는 면에서 그들의 신앙체험은 나의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내 신앙체험의 원형은 아브라함의 신앙체험이다.
 
이제 내가 호주에 나가서 공부할 때부터 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될 때까지 내가 반복적으로 체험한 기적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박사 과정으로 올라가다

나는 영어 문화권에서 공부하고 싶어서 35세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공주사대에서 휴직계를 내고 처자식을 한국에 남겨 둔 채  호주의 퀸슬랜드대학으로 자비유학을 떠났다. 내가 호주 대학으로 간 것은 그 당시 외국 학생도 등록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학에서는 나를 석사과정의 Research Course 학생으로 받아주었는데, Research Course란 학점을 이수하지 않고 학위논문만을 쓰는 과정이다.

나는 지도교수와 상의해서 20세기 영국 그리스도교 작가 그레이엄 그린(1904-1991)에 대한 논문을 쓰기로 하고, 그린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료를 읽다가 그린이 30년 전에 스페인의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1864-1936)의 『돈키호테와 산초의 생애』를 읽은 일이 있는데, 그 책을 다시 읽어보니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그 책이 자기의 “무의식의 움 속에서 작용하고 있었던 같다”고 말한 것을 알아냈다.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그린의 말을 언급하면서 우나무노가 그린에게 미친 영향에 관해서 연구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내가 그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더니 지도교수가 아주 좋은 논문 주제라고 반기면서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런데 퀸슬랜드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재직 중인 김형석 교수를 교정에서 만났더니, 어느 모임에서 내 지도교수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도교수가 내 논문 주제가 아주 좋다고 말하더라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대학원 규정집에 지도교수가 석사과정 학생을 1년 동안 지도해보고 그 학생의 논문 주제가 박사 논문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를 박사과정으로 올려주는 규정이 있으니 한번 지도교수를 만나서 그 문제를 상의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2년 동안에 석사과정을 마친 다음 귀국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호주에 갔었기 때문에, 김 교수의 말을 듣고도 지도교수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김 교수가 며칠 후에 나를 다시 만나자 지도교수와 상의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가 두 번이나 지도교수를 만나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지도교수를 찾아가지 않았다.

지도교수가 내 논문 주제를 좋게 말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석사 논문감으로 좋다는 말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 외에 한국에서 석사 논문을 쓰기는 했지만, 한국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호주대학에서 석사 논문을 써보지 않고 껑충 뛰어서 박사 논문을 쓴다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마치려면, 여러 해 동안 호주에서 지내야 하는데, 그 비용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김 교수가 다음에 만나서는 지도교수와 상의하라고, 되든 안 되든 부딪쳐 보라고 거의 책망조로 말했다.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권하는 그의 말에 진정성이 있어 보여서 한번 도전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내 말을 들은 지도교수는 내가 원한다면 그 문제를 대학원 위원회에 올려 보겠으니 논문의 첫 장(chapter)을 써오라고 했다. 아마도 지도교수 보기에 내 논문 주제가 박사 논문으로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이 첫 장이 대학원 위원회에서 인정을 받는다면, 내가 박사 논문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첫 장을 써서 제출했다. 마침내 대학원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박사과정으로 올라갔다. 그 후 6개월쯤 지났을 때, 지도교수가 내 방으로 찾아와서 전교적으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외국 학생들 중에서 장학생을 한 명 선발하는데, 당신이 강력하게 추천할 테니 장학금을 신청하라고 말했다.

지도교수의 지시대로 장학금을 신청했더니, 얼마 후에 장학생에 선발되었다는 전보가 날아왔다. 그래서 대학 본부에 가서 그 대학에서 논문을 쓰는 동안 내내 생활비를 지급해준다는 장학증서를 받았다. 나는 그때 박사과정으로 올라간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이것은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나는 연거푸 일어난 이 예상 밖의 행운이 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은 김 교수를 통해서 나를 설득하시고 지도교수를 통해서는 박사 논문을 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을 뿐 아니라 장학금까지 마련해주신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미겔 데 우나무노가 그레이엄 그린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그리고 이 영향 관계의 연구가 그린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조명해준다는 것을 밝히는 논문을 써서 호주 유학 4년만에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내가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을 때, 호주에서 단기간에 받은 내 학위는 진위가 의심된다고 혹은 적당히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잘못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그린이 나를 위해서 작품을 쓰다

내가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한 2년 후에 놀랍게도 그레이엄 그린이 『돈키호테 신부』(Monsignor Quixote)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서 내 논문의 논지를 뒷받침해 주었다. 내 지도교수는 그 책을 사서 내게 보내면서, 그린이 나를 위해서 그 소설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논문을 책으로 낼 때 마지막에 이 소설에 관한 장을 첨가하라고 조언했다.

『돈키호테 신부』의 배경은 세르반테스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이다. 주인공 키호테 신부는 세르반테스 소설의 돈키호테가 그의 조상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전직 시장을 산초라고 부른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탔던 말의 이름과 같은 로시난테를 타고 산초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그린의 『키호테 신부』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연관시키기 쉽지만, 실상 그린의  작품은 우나무노가 쓴 『돈키호테와 산초의 생애』의 패러디이다. 우나무노는 그의 책에서 자신의 신앙적 고뇌를 피력했고, 그린은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의 신앙적 고뇌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키호테 신부』에서 우나무노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어 있다.

키호테 신부와 그의 산초는 여행 도중 우나무노의 생가를 방문한다. 그런데 이 산초는 자기가 살라망카 대학을 다녔고, 살라망카 대학의 총장이었던 우나무노의 강의를 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키호테 신부가 신앙인의 고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우나무노 교수의 강의 시간에 앉아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우나무노가 강의 시간에 한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산초의 이 언급을 통해서 우나무노의 신앙적 고뇌와 그린 소설의 주인공 키호테 신부의 고뇌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달리 말하면, 우나무노의 고뇌와 작가 그린의 고뇌가 상통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레이엄 그린이 직접 나서서 내가 학위논문에서 밝힌 우나무노와 그의 관계가 정확하다는 것을 공표한 셈이다. 따라서 그린이 나를 위해서 이 소설을 쓴 것 같다는 지도교수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신앙인으로서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 것이라고 믿었다. 석사과정이나 마쳐야겠다는 마음으로 호주에 갔던 내게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이 이번에는 그린을 통해서 내 박사 논문의 우수성을 밝혀주신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미국에서 책을 내다

그린이 『키호테 신부』를 낸 후에 나는 내 학위논문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마지막에 『키호테 신부』에 관한 글을 첨가해서 한신출판사에서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과 우나무노』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그리고 그 책을 디트로이트에 있는 웨인주립대학의 유병천 교수에게 보냈다. 유 교수가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고려대에 왔을 때, 그분의 강의를 들은 일이 있고 그분이 내게 외국 유학을 적극 권했기 때문에, 호주에서의 내 공부의 결과물을 보낸 것이다.

그 후에 나는 풀브라이트 시니어 장학금을 받아서 이스트 랜싱에 있는 미시건주립대학에 갔다. 그곳에 가게 된 것은 내 친구 현영민 교수가 거기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병천 교수가 살고 있는 디트로이트가 이스트 랜싱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체류가 거의 마쳐갈 무렵, 나는 현 교수와 함께 유 교수를 방문했다. 그때 유 교수는 내가 한국에서 낸 책을 미국에서도 내라고 권했다.

나는 유 교수에게 내가 미국에서 책을 내려는 것은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지도교수의 조언에 따라서 한동안 미국의 여러 출판사에 책을 내달라고 편지했었지만, 전혀 답을 듣지 못했다고, 그래서 미국에서 책을 내는 것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때 미국에 가서 한국계 교수들에게서 한국인이 영문학 분야의 연구서를 미국에서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실제로 미국의 하버드대학이나 영국의 런던대학 같은 유명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영문학자들이 영미에서 책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국내의 영문학 교수로서 미국에서 책을 낸 사람은 연세대학교에 있던 최재서 교수 한 사람뿐이었다. 이런 형편이니 미국의 출판사들이 호주의 대학에서 나온 내 논문을 외면하는 것은 아쉬워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귀국하기 이틀 전에 유 교수가 내게 전화를 했다. 미국에서 책을 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소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유 교수는 내 책은 미국에서 낼 만하다고,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에 시외전화로 25분 동안이나, 애써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내 논문을 심사한 미주리대학의 피터 울프 교수에게 출판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라고, 울프 교수가 그레이엄 그린에 관한 연구서를 비롯해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니 내 원고에 관심을 가질 만한 출판사를 알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후 유 교수의 간곡한 충고를 받아들여서 한 번 더 책 출판을 시도해보기로 마음먹고 피터 울프 교수에게 편지했다. 그 편지를 보내면서 나는 울프 교수가, 유 교수처럼, 내 논문이 미국에서 책으로 출판될만하다고 생각하면 출판사를 소개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울프 교수가 피터 랭 출판사를 소개하면서, 친절하게 출판사에 편지를 보낼 때 유의해야 할 것 두 가지를 알려주었다.

원고에 대한 소개가 장황하면 출판사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100단어 이내로 원고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라고 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는 학위논문을 신통치 않게 여긴다고 말하면서, 내 원고가 학위논문이라는 것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다. 울프 교수가 지시한 대로 작성해서 피터 랭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다. 아마도 전에 계속 퇴짜를 맞은 것은 내 원고가 학위논문이라고 말면서 원고를 장황하게 소개했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한참 후에 피터 랭에서 답이 왔다. 내 원고를 보내라고 하면서 그 원고를 읽어본 사람 셋을 추천하면, 그 세 사람과 자기네 출판사에서 위촉하는 한 사람, 모두 네 사람의 평을 듣고 책을 낼 것인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 편지를 받고는 내 책이 미국에서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지도교수와 유병천 교수는 미국에서 책을 내라고 말했고, 울프 교수는 피터 랭을 소개했기 때문에 이 세 사람은 내 원고를 적극 추천할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원고라면, 출판사의 심사위원도 좋게 평가할 것이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세 사람의 명단과 원고를 피터 랭 출판사에 보냈다

몇 달 후에 피터 랭에서 기다리던 편지가 왔다. 책을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내 책 Greene and Unamuno: Two Pilgrims to La Macha가 피터 랭 출판사에서 나왔다.     

                     

마치면서

석사만을 계획하고 호주에 건너간 내게 박사를 위한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이 내가 그 과정을 마친 후에는 『키호테 신부』를 통해서 내 논문의 논지를 뒷받침해 주셨다. 그렇게 준비해 놓으신 후에는 유 교수를 내세워서 나를 설득하게 함으로써 미국에서 책을 낼 수 있게 도와주셨다. 이렇게 책이 나오기까지 하나님이 하나하나 준비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미국에 간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만 살펴보아도 하나님이 얼마나 세심하게 준비해 주셨는가를 알 수 있었다. 먼저 내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얻지 못했더라면, 미국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내 친구가 이스트 랜싱에 살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유 교수가 사는 디트로이트에 가까운 이스트 랜싱에 가지 않았더라면, 유 교수를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 교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유 교수에게서 책을 내라는 권면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피터 울프 교수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피터 랭에 편지를 보냈다 하더라도 전처럼 퇴짜를 맞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것이 모두 우연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거듭 일어난 기적적인 일들을 그리고 순서에 따라서 착착 진행된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보잘 것 없는 나를 위해서 이렇게 준비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나는 내 체험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었을 때 느꼈을 감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놀랍고 감격적인 이 체험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는 닻이 되었다.

제임스 맥그라나한의 찬양곡 <하나님의 선물>을 노래할 때면 내 가슴이 뜨거워진다. ‘네 공로가 아니었고 값없는 큰 선물일세. 은혜로 은혤세. 자랑하지 않게 함이요.…하나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선물. 그 선물로.’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리아산에 오르는 것이다.

 

 

최재석 jschoi4111@gmail.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