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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꽃, 논농사

기사승인 2020.06.03  23: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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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중순부터 시작한 모내기가 내가 소속된 공동 농가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논에 가득히 심어진 모를 보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사실 농사를 짓는데 있어 밭농사와 논농사를 비교하라 하면 기간으로 봤을 때는 논농사가 쉬워 보일 수 있다. 밭농사는 파종이 시작되는 3월부터 수확으로 마치는 10월 중순까지 주욱 이어진 농사라고 본다면 논농사는 4월과 5월 그리고 9월 하순만 반짝 수고를 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보면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훨씬 수월해 보일 수 있다. 비교의 대상이 될 수야 없겠지만 굳이 비교를 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올해도 밭과 더불어 논농사도 시작했다. 논농사의 시작은 볍씨 소독부터다. 4월 초순에 작년에 거둬들인 벼 중에 가장 실한 벼를 골라내어 소독을 한다. 손이 참 많이 가는 순간이다. 먼저 가마틀을 만들어 군불을 지핀다. 불이 끓기 전에 소금물을 준비한다. 달걀이 오백원 크기로 떠오를 만큼 소금의 농도를 맞춘다. 그리고 그곳에 볍씨를 담군다. 떠오르는 쭉정이와 가라앉는 알곡을 분리하여 건져낸다. 상대적으로 백미보다 흑미는 가벼워서 떠오르는게 많은데 초반에는 백미와 흑미의 성질을 몰라서 뜨는 흑미를 많이 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난 뒤 커다란 솥 가득히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 큰 고무다라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 65도 정도 맞춘 뒤 볍씨를 넣는다. 10분 정도 소독을 한다. 10분이 되면 찬물로 옮긴다. 온냉욕을 한차례씩 하는 것이다. 그렇게 소독된 종자는 촉이 올라올 때까지 물과 현미식초를 500:1의 비율로 섞은 물에 낮에는 넣어놓고 밤에는 건져놓는 과정을 거친다. 거의 일주일 뒷면 촉이 올라온다. 그러면 볍씨 파종의 시간이 된다.

볍씨 파종은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아니, 많으면 많을수록 빨리 끝날 수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소속된 교회의 목사님 세 아들이 손을 보태어 한순간에 마칠 수 있었다. 역대급 빠른 속도였다. 여하튼 볍씨 파종은 모판에 고운 상토를 깐다. 상토를 깐 모판에 볍씨를 빼곡이 편만하게 담는다. 예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뿌렸다는데 지금은 기계가 있어 한번 주르룩 밀면 땡이다. 볍씨가 골고루 펴진 모판에 다시 고운 상토를 더 곱게 체에 쳐서 담은 뒤 싹이 트일 수 있도록 켜켜히 올려놓는다. 물을 충분히 뿌려준 뒤 볍씨가 잘 발아될 수 있도록 보온을 해준다. 보온을 위해 비닐로 꽁꽁 싸매고 그 위에 이불을 덮고 그런 다음 비에 맞지 않도록 천막을 씌운다. 이러고 나서 기온이 좋으면 거의 10일 안에 볍씨가 잘 자란다.

상토가 담긴 무거운 모판이 들려올려질 정도로 자라게 되면 이번엔 모판나르기를 한다. 맹꽁이 차라고 불리는 농사용 운송차에 가득 담아 논으로 옮겨진다. 논은 이미 트랙터로 1차 평탄 작업이 되어 있다. 물이 가득한 논 한 곳에 천막을 길게 깐다. 그 위에 가지고 온 모판을 나란히 놓는다. 내가 하는 논은 백미는 150판 정도, 흑미는 140판 정도 준비하여 깔아놓는다. 서로 섞이지 않도록 가지런히 구분하여 펼쳐놓은 뒤 그 위에 하얀 부직포를 덮는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낮에는 따사로운 햇살로, 밤에는 차가운 달빛에 모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그 때는 본격적인 모내기를 하는 것이다. 모를 낼 수 있도록 자람세를 아는 방법은 오고 가는 길에 모를 덮어 놓은 부직포가 잘 자란 모로 인해 붕 뜨게 된다. 그것을 통해 아하~~ 벼가 잘 자랐음을 가늠한다. 

모내기 전 잘 키운 모판을 논둑에 올려놓는다. 그런 뒤 모판을 키웠던 천막을 거둬내어 열심히 평탄작업을 한다. 이 작업이 모내기 과정 중 제일 힘이 들었다. 거의 뻘 수준의 흙을 괭이로 모를 잘 심고 물이 잘들어갈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든 것인데 다리가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이만저만 아니다. 가끔은 허벅지까지 빠졌을 때 나오는 것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안간힘을 써야 나올 수 있어 그런 것을 서너번 반복하면 진이 쭉 빠지기 일쑤다. 그러한 작업을 모내기 전야 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씩씪거리며 마친다.

드디어 모내기다. 아침 7시 30분 급히 논으로 달려간다. 이미 소속교회 목사님이 와계셔 이앙기를 모는 이장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논에 물이 너무 많다느니, 모가 너무 작다느니 등등의 얘기가 형식적으로 한차례 오고간 뒤 이앙기에 모판을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그러면 이앙기는 물 위의 배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가면서 착착착착 모를 심는다. 그 소리가 참 흥겹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이앙기를 보면서 생각한다. 저 편리한 농기계를 누가 만들었을까?

사실 2017년까지만 해도 직접 손으로 모를 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감신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농촌현실과 생명문화’ 수업이 있어 그 때의 학생들이 생명 공동체 실습으로 모내기를 하러 왔었다. 수업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농활이었고, 또 품앗이이기도 했다. 어느 해는 70명이 된 적도 있었고, 어느 해는 30명 정도였다. 또 어느 해는 10명 정도였다. 뭐든지 그렇지만 농사에 있어서 손이 많으면 그만큼 일이 금방 끝난다. 설령 수가 적어도 일하는 손이 얼마나 일에 익숙하냐에 따라서 일의 추진 또한 달라질 수 있기도 하는데, 어느 해 10명 정도의 학생들은 정말 일을 잘했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모내기였는데 순식간에 꾀도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해 준 덕에 그 어느 해보다 빨리 끝나는 놀라운 때도 있었다. 그렇게 고마운 손길들이 이제는 없다. 농촌에 대한 관심도 사라지고, 농촌목회에 대한 소명(?)도 이전만큼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전에도 농촌을 향한 마음이 많지 않았을 터였지만 그래도 간간히 보석과 같은 학생들이 있었고, 젊은 신학생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의 그들이 어찌됐든 농촌을 지키고 농촌교회를 지켜왔으니 그나마 지금까지 농촌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지금은 농촌을 향한 마음이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이렇게 매해 손으로 모를 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년 전부터 수강생이 10명이 되지 않아 그 과목은 더 이상 개설되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그때부터 손모는 기계로 대체됐고, 비록 여러모로 편리해지긴 했지만 손모를 내는 아침이면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마을의 산을 울리며 메아리쳐서 기분이 좋았던 시절이 이제는 기억으로, 추억으로 사라지고 있다.

근 8년 째 접어드는 논농사이지만 할 때마다 새롭다. 딱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과정에 힘쓰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점차 어렵게 느껴진다. 내 나이 오십 중반까지 하고 마쳐야지 하면서도 그 이상 하게 될 것은 우리 마을의 논이 점차 밭으로, 대지로, 상가가 세워지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는다. 분명 돈이 안되는 농사이긴 하지만, 내가 심고 가꾸고 거둠을 통해서 농부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여력만 된다면 끝까지 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쌀 한 톨 얻기 위해 허리를 수십 번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쇼파에 앉았더니 나도 모르게 스르르~~~ 두어시간 단잠을 자고 깼다. 고된 노동의 순간이었지만 꿀잠은 역시 하늘이 내려주시는 선물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오늘도 감사한 하루로 일과를 마친다. 농사의 꽃, 논농사. 올해도 그렇게 시작하였다.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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