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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부활신앙으로 이겨내야” 요나 2장1절~2절

기사승인 2020.06.29  2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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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부활신앙으로 이겨내야” 요나 2장1절~2절

 

1. 삼일 삼야

 

(1장17절)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 요나가 물에 던져진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리시는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신 하나님의 구원역사(기적)로 이어졌다. (호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메시지성경) ‘우리가 이틀 내에 회복되고 사흘째에는 주께서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해주실 것이다’ 점진적인 구원의 완성을 기록한다. 이틀과 삼일은 하나님의 시간, 곧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이다. ‘오늘’은 우리의 시간이다. ‘오늘’ 우리가 회개할 때 ‘이틀 후에’ 회복이 시작되고 ‘제 삼일에’는 마침내 완전케 하신다. 제 삼일의 기적은 물에 빠져 수장되는 요나의 죽음, 곧 오늘 우리의 철저한 회개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되는 까닭이다.

 

 

2. 스올의 뱃속에서

 

(2절) “가로되 내가 받은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내가 받은 고난을 인하여’ 요나가 받은 고난은 구체적으로 물속에 던져져서 수장되는 죽음이다. 오늘날 물세례는 물을 뿌리는 약식이지만 물세례의 본래적인 의미는 물에 완전히 수장되는 죽음을 의미한다. 물세례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눅3:3)다. 나는 죽고(이기적인 자아) 주님으로 다시 사는 삶(거듭남)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대속이 전부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삶(부활의 생명력)에 있다. ‘내가’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질 때 ‘하나님께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부활의 새 역사다. 십자가 위에서 나의 모든 노력이 끝장나는 순간,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리시는 제삼일의 부활역사가 시작된다.

▶ ‘스올(Sheol)’은 문자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거하는 처소인 음부(hades 또는 무저갱, abyss: 바닥없이 깊은 구덩이)를 뜻한다. 무덤이나 지옥, 죽음의 형편이나 죽음이라는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스올은 해어날 수 없는 절망의 나락에 빠진 실존을 가리킨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고르) 곧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스올의 뱃속에서’ 요나의 형편은 깊은 절망이었다. 모든 것이 끝장난 죽음 같은 절망 중에 요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삶에서 만나는 절망의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다. (사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자녀)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탄원에 보응하신다. 이 믿음이 있으면 기도한다. 오래참고 기다린다. 하지만 현실에서 만난 절망 가운데 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눅18:7~8)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환란이 극심하고 응답이 더디면 많은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절규에 외면하시나 의심하고 낙심에 빠진다. (출2:23~24)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시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잊지 않고 돌아보심)하셨더라’ 하지만 우리의 낙심과 달리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신다. 또 잊지 않고 돌아보신다. (계8:3~5) 일곱 인을 때실 때 금향로에 담겨진 성도의 기도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서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 지진이 나면서 일곱 나팔의 재앙이 시작된다. 박해 가운데 부르짖은 성도의 애타는 탄원에 보응하시는 장면이다.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신다. 반드시...

 

 

3. 물고기 뱃속에서

 

(1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 요나의 삼일삼야는 ‘스올의 뱃속에서’이면서 동시에 ‘물고기 뱃속에서’다. 물고기는 헬라어로 ‘익투스(ΙΧΘΥΣ : Ιησονξ Χριστοξ Θεον Υιοξ Σωτηρ, 예수스 크리스토스 데우 휘오스 소테르)’다. 초대교회 기독교인을 나타내는 이 상징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고백을 담고 있다. 핍박 가운데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표식(sign)으로 유명하다. 스올의 시간은 절망의 때이지만 동시에 ‘익투스’되신 주님 안에 거하며 주의 구원을 경험하는 때다. 스올의 뱃속에서도 ‘익투스’의 주님께서 여전히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시139편 7~12)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주의 낯을 피할 수 없다는 다윗의 신앙고백은 주님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비록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변함없이 지키고 보호하심을 선포한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선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 가에만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죽음의 절망 가운데도 여전히 함께 하신다. 이 믿음이 그 어떤 죽음의 상황 한 가운데서도 우리를 다시 살리는 부활의 신앙이다.

▶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진정한 믿음은 내가 주님을 붙잡는 게 아니다. 나는 약하고 힘들어서, 극심한 박해와 훼방에 잡은 손을 놓칠 수밖에 없지만 주님께서 크고 강하신 팔로 여전히 나를 붙잡고 계심을 믿는 믿음이다. (롬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을 살리는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곧 부활신앙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믿음(부활신앙)으로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미래인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렸다. 모든 희망이 끊어진 백세에 이삭을 주신 분께서 설혹 ‘죽어도 다시 살리실’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히11: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외에 두려운 것이 이 세상에 없다.

 

 

4. 요나의 기적이 예표 하는 십자가와 부활

 

(눅11:30)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 요나의 표적이 전하는 두 가지 메시지 가운데 두 번째 메시지가 ‘이방인 니느웨 사람의 전격적인 회개를 통한 구원’이라면, 그 첫 번째 메시지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표적이다. 삼일 삼야 동안 물에 빠져죽었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 살아난 요나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머무시고 사흘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예표(豫表)다.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삼 일만에 살리시고 부활하게 하신 것처럼, 나도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부활하게 하신 그분께서 내 몫에 댄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나도, 다시 살리시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실 것을 변함없이 믿는 세상을 이기는 굳건한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뒤덮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도 이 믿음에서 예외가 아니다. 전대미문의 재난을 속수무책으로 통과하는 지금 순간이, 부활신앙이 필요한 때이며 이 믿음을 사용해야 할 때임에 틀림없다. 기독교 이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박해 가운데 이 믿음이 적은 이들은 이러저런 핑계를 앞세우며 배교를 선택했다. 허나 이 믿음을 가진 이들은 모욕과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며 담대하게 순교를 선택했다. 죽어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스올의 뱃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비록 죽음의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 믿음으로 마침내 승리할 것을 나는 확실히 안다. 불확실성이라는 감염병의 특수성 속에서도 내가 이토록 확신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누가 뭐래도, 믿거나 말거나 나의 삶에서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요12: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코로나 팬데믹이 창궐하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아멘.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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