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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단상

기사승인 2020.07.08  22: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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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의 반이 훌쩍 넘어갔다. 하반기와 한여름의 시작 속에 서 있다. 이맘때면 여름 과일이 나올 때다. 여름의 대표적 과일을 꼽으라 하면 우선 복숭아다. 더욱이 음성과 내가 사는 마을은 복숭아가 다반이다. 오죽하면 ‘햇사래’라는 복숭아 브랜드가 나왔을까. 봄이 오면 들녘에 피어오른 분홍빛 꽃들은 노오란 새순 속에 그 빛깔이 더욱 곱다. 멀리서 바라보는 복숭아 과수원은 한 폭의 그림 그 이상이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종종 발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을 구경하기도 하고, 핸드폰에 담아 놓기도 한다. 매년 만나는 경치지만 매년 새롭다.

어릴 적 풍경 달력을 보면 복숭아꽃이 만개한 풍경이 사월에 꼭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리고 복숭아를 구경하기 어려웠던 추운 지방의 제천에 사는 나로서는 복숭아꽃 잔치가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달력 한가득 그려진 붉은 복숭아꽃이 촌스럽게 여겨지곤 했다. 오히려 하늘을 바라보며 쭉 뻗어 올라가는 하얀 사과꽃이 내 맘을 환하게 해주고 사과꽃 향이 싱그러워 사과를 더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촌스럽다고 여긴 복숭아가 앞뒤 옆으로 가득한 마을에 살고 있다. 사월이면 마주했던 만개한 복숭아꽃을 달력이 아닌 실제로 마주하며 그 풍경을 즐기고 있으니 세상사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오히려 지금은 복숭아 과수를 할 사람이 없어서, 기후 변화로 복숭아가 맞지 않아서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자리에 서 있다. 복숭아나무가 베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다시 달력의 풍경으로만 볼 수 있게 될 것이라 여기니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해진다.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 귀한 복숭아를 실컷 먹어보았다. 도시에 있을 때만 해도 복숭아는 늘 내 손 너머의 과일이었다. 여름이 오면 시장이나 마트에 참외, 수박, 자두와 함께 모습을 보인 복숭아는 내 지갑을 여는데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크기나 가격을 비교했을 때 참외, 수박, 자두 등의 다른 여름과일에 비해 복숭아는 엄청 비쌌다. 같은 가격이라면 한두개의 복숭아보다 대여섯개의 참외와 자두를 골랐다. 복숭아는 언제나 있는 사람의 과일이라 여겼고, ‘시어진 포도’의 여우처럼 맘속으로 되뇌었다. ‘저 복숭아는 분명 맛이 없을 거야.’ 그렇게 복숭아에 대한 나의 굴절된 마음은 도시에 사는 내내 먹지 못한 과일이었다. 복숭아가 정 먹고 싶은 때는 그 옆에 담겨져 있는 복숭아, 천도복숭아를 사서 먹었다. 값은 참외보다 저렴했으니 잘만 고르면 달고 신 복숭아를 맘껏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머나먼 곳에 자리했던 복숭아가 음성에 내려와서 물리고 질리도록 먹을 수 있었다니 이 또한 세상사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저 복숭아는 분명 맛이 없을 거야’라며 스스로 최면을 걸었던 자신이었는데, 이곳에서 먹어본, 이웃 복숭아 농가에서 보내준 복숭아를 입에 베어 문 순간, ‘아! 복숭아가 이렇게 달고 맛있는 것이었구나.’로 복숭아에 대한 굴절된 마음은 곧게 펴졌다. 그렇구나. 과일도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구나. 그렇게 먹어본 복숭아가 올해로 8년째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남들은 아니 8년 전까지의 나는 멀리서 군침만 흘렸던  복숭아를 봄이면 꽃을 보고 여름이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웃에 사는 집사님네 유기농 복숭아가 오늘 처음 수확을 하여 몇 알 챙겨왔다. 아직은 알이 작았다. 복숭아를 건네주신 권사님은 올해 복숭아는 예년에 비해 맛이 덜하니 감안하고 먹으란다. 아마도 날씨 때문이리라. 과일은 일교차도 중요하지만, 올해는 하늘이 그다지 맑지 않았다.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거나 하는 날씨가 많아서 해를 받고 바람을 맞아야 하는 과수에도 영향을 아니 미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감안하며 먹는다. 이것 또한 농촌에서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복숭아를 도시에 내놓으면 십중팔구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복숭아가 왜 이렇게 맛이 없어요?” 그러니 농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한 알의 열매를 얻기 위해 농부는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농사를 하겠는가! 그러나 시장에 나가는 순간 그러한 노력과 수고와 애씀은 소비자의 한입에 평가절하 되거나 악플로 다가온다. 농부의 삶을 조금이라도 기억해준다면 좋겠다. 특히 요즘처럼 구름이 많이 끼고, 비가 많이 오는 때의 과일은 맹하다. 이 또한 감안하고 먹어준다면 농부는 위안을 받으리라.

근 몇 해는 물리고 질리도록 먹었던 복숭아를 보관하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했다. 한자리에 앉아 소쿠리 가득한 복숭아를 먹었던 적도 있었다. 복숭아로 배를 채운 셈이다. 그것도 모자랄 때는 복숭아 껍질을 깐 뒤 깍둑썰기를 하여 통조림을 만든다. 설탕과 물 그리고 깍뚝썰기한 복숭아를 냄비에 넣고 한번 후루룩 끓인 뒤 식혀 소독한 병에 담아 냉장고에 일주일 정도 보관한다. 그러면 어릴 적 병원만 가면 괜히 먹고 싶었던 황도‧백도 복숭아 통조림이 되는 것이다. 더울 때, 밭일하고 들어와서 달달한 것이 생각날 때 꺼내어 먹으면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통조림도 꽉 찼다 하면 그 다음엔 복숭아 잼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도 깍뚝썰기를 작게 하여 동량의 설탕을 넣고 곤죽처럼 될 때까지 끓인다. 수분을 완전히 날린 뒤 식혀 소독한 병에 넣어 빵에 발라먹으면 달콤새콤한 맛이 향과 함께 입안 가득하다. 이런 일을 근 3~4년을 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복숭아가 한가득이었다. 슬기로운 복숭아 먹기였다.

5년 차가 되니 슬기로운 복숭아 먹기는 멈췄다. 생활하다 보니 뭐든 제철에 먹는 것이 최고였다. 한 철 지난 뒤 먹을 것이라고 여겼던 복숭아는 해를 넘겨도 먹지 않았다. 재료만 낭비한 셈이다. 그런 우여곡절 뒤에 지금은 복숭아를 받는 즉시 그 자리에서 모두 소화한다. 내 이웃과 동량으로 나눠 먹는 것이 가장 슬기로운 복숭아 먹기, 아니 세상의 가장 슬기로운 삶이란 것을 이웃에서, 자연에서, 농사를 지으며 공짜로 얻은 삶 속에서 깨달은 지혜다. 내 두 손에 있는 것 외에는 모두 이웃과 나누라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 아니던가. 그래서 올해도 첫 수확하고, 처음 얻은 복숭아를 이웃과 나눠 먹었다. 나눌 수 있으니 감사하다. 내일은 블루베리를 따러 간다. 이웃에 사시는 분이 이맘때면 내 몫을 남겨놓으시고 맘껏 따 가란다. 그러면 나는 다시 이웃과 나누면 된다. 소소하나 삶은 이렇게 풍족하고 풍요롭다.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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