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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교회에 드리는 글

기사승인 2020.07.13  11: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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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리더들의 자기관리...

1945년,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한 강당에는 종교리더들을 비롯하여 당시 세계를 주도해가는 지식인들과 그 밖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강당에 가득 찼다. 그들은 이제 갖 약관(弱冠)을 넘은 25세의 젊은 전도자 브론 크리포드(Bron Clifford)의 설교를 듣기위해 그 강당에 들어가려고 10~12줄로 빽빽이 줄을 서 있었다. 그날, 사회를 맡은 M.E.도드(Dodd) 박사는 스리브포드(Shreveport)에 있는 제일 침례교회의 저명한 교역자이며 크리포드를 “사도바울 이래 가장 위대한 설교가”로 소개했다.

그날 크리포드는 모인청중을 매료시켰다.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었다. 같은 해 그는 “그리스도와 철학자의 기념비(Christ and the philosopher’s Stone)"라는 제목의 설교로 2시간 15분 동안 베이러 대학교(Baylor University)학생들을 흥분시켰다. 팻 네프(Pat Neff)총장도 내노라  하는 연설가였음에도 크리포드가 시간에 매이지 않도록 끝남을 알리는 벨소리의 스위치를 꺼버리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25세 의 젊은 크리포트는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었고 더 많은 리더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미국 역사상 그 시대에 있어서 그 어느 성직자보다 더 많은 참석자 기록을 매번 경신하였다. 국가 리더들은 앞을 다투어 그의 주의를 끌기 위해 경쟁하였다. 그는 키가 크고, 젊고, 지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헐리우드(Hollywood)쪽에서는 ‘더 로브(The Robe)’라는 작품의 마르셀러스(Marcellus) 역할을 위해 오디션을 받아보지 않겠느냐고 요청을 하였다. 이처럼 그는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탁월함에서 비참한 말로...

그 마이애미 집회 후 10년이 못 가서, 크리포드는 그의 리더십과 그의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술 취함과 재정적 인색함이 그 안에 자리했던 것이다. 크리포드가 사망하기 전에, 칼 E. 베이트(Carl E. Bates)박사는 기독교계 리더로서 그를 방문하여 그를 돕고자하였다. 베이트 박사의 교인 중 외과 의사 어니스턴 스미스 박사는 크리포드를 위해 수술을 했지만 그가 거의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박사는 목사님께 그의 임종을 위해 찾아와 주실 것을 요청했다. 크리포트는 혼자였고 주변엔 그를 돌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다운 증후군 증세를 가지고 있는 2명의 자녀와 아내를 남겨두고 떠났다.

텍사스 아이멜리로(Amarillo)에서 플레인즈 세블럿(Plainns Chevrolet)트럭을 판매하든 그는 그가 생존을 위하여 하든 그 일을 계속하기에는 너무나 심하게 중병을 앓고 있었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장소, 3류 급 모텔의 지저분한 방안에 있는 크리포드를 발견한 베이트 목사는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생의말년에 브론 크리포드는 울어 주거나, 존경을 표하거나, 장송곡이 없는 가운데 죽었다. 아이멜리에 있는 목사들은 헌금을 모금하여 그다지 비싸지 않는 관을 사서 그의 시체를 넣어, 동부로 옮겨 토기장이의 밭에다 매장했다. 이처럼 크리포드가 리더십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부족한 필수 자질(資質)은 절제(節制)였다.

언제든지 사명자라면 누구에게나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엄위(嚴威)와 임재”앞에서 수시로 갖추어야 할 자기성찰, 즉 절제가 문제다. 그는 이처럼 중요한 자기 통제의 부족으로 그 당시 그의 탁월함을 기억하는, 그를 아는 많은 이들에게도 슬픔을 안겨 주었다. 그의 일화는 당시 그를 알고 있는 이들이 기억하는 가장 슬픈 이야기 중 하나였다. 이처럼 소명자 에게 절제는 사랑의 완성(mastery)이며 생명이다. 성령의 능력의 통제 안에서 자신의 욕망이 자신의 삶을 다스리지 않도록 방치하지 않는 것...(존E.하가이, 미래는 진정한 리더를 요구한다. P.140).


많은 목사들의 로망 경신교회...

80년대 초 그해에 엄청난 폭우가 내릴 때 양수리수양관 세미나에서 그 빗속을 뚫고 오신 분을 처음으로 뵌 적이 있다. 분명하고 소신 있는 메시지를 정립하기위하여 지금까지 당신께서 겪어 오신 고난의 시련과 그 과정들... 그날 고급승용차가 물에 잠겨 폐차시키고 장로님들께서 그 다음날로 새 차로 가져왔다는 임시번호판의 고급승용차는 가난한 신학생들의 눈에 목사님도 목회를 잘하면 좋은 장로님들과 더불어 성도들이 함께하는 저리 축복을 받는구나? 한마디로 경외감(敬畏感)으로 듣는 이들에게 설레 임을 안겨주었다. 각자 졸업 후 초년목회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잊혀 졌으나 언젠가 현재의 교회건물을 건축하는 중에 설계문제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회사로부터 특명을 받고 해결한 적이 있다는 손위처남소장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년전부터 주변의 들려오는 소문과 함께 “당당뉴스”와 “감게”를 통하여 등장하는 남연회의 감독후보자와 관계된 내용들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 남들에게 자랑꺼리를 비롯하여 베풀 능력이 없기에 다만 교단에 유익한 이들이 잘 맡아 감당했으면 하는 마음에 관심으로 글을 올리든 중이었기에 그대로 지나쳤다. 어느 날, 큰 봉투에 전준구 목사에 관한 내용이 등기로 배달이 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통하여 그동안의 관심 없든 여러 가지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이어 전국적으로 지방마다 성명서들이 등장을 하고, 여러 과정을 거쳤다. 지금도 일부의 깊은 내용을 모르는 목회자들을 비롯한 성도들이 기도회를 진행하여가고 있다.           


로고스교회에게...

최근 지난 몇 차례의 표현한글을 통하여 주변에 있는 이들과 교회에 실망한 분들로부터 거친 표현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하면 로고스교회는 목사와 장로들을 비롯하여 성도들대부분들이 지금 자신들이 어떠한 위기(危機)에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한가하게 자기들끼리 편을 갈라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은 교회를 가리켜 어느 쪽이 더 의롭고 덜 의롭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비렁뱅이들끼리 동냥자루를 찢는 것”으로 본다. 교인들, 목사들, 이라 하지 않는가? 스스로 자기학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로고스교회 문제에 개입하는 목사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그동안 전임자를 따라다니며 수족노릇하든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로 인하여 그분께서 더욱 성숙과 함께 존중함을 받으셨는가? 오히려 그분과 함께 자신들의 남은 구령사역에 실패만 가져왔을 뿐이다. 각자 본인들의 초장에서 맡겨주신 영혼을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전준구 목사께도 할 말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실수할 수 있기에 인정하고 보완하며 더욱 성숙을 향하여 간다. 모두가 주님의 섭리였으나 한때나마 전임자에게 은혜를 입어 남다른 발전으로 오늘에 이르렀다면 그에 대한 마음의 겸비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냉정하게 판단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본인에게 부담을 느낀다면 그 뜻을 따름이 은혜로 살아가는 성직자의 본분(本分)이다. 지금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지냄을 잊지 말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앞서 어려움을 겪은 교회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집요한 사단의 덫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를 기대하며 기도드릴 뿐이다....  
 

 

오재영 ojy0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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