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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3요소, 즉시! 온전히!, 기쁘게!” 요나3장 1절~3절

기사승인 2020.07.14  17:42:37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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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3요소, 즉시! 온전히!, 기쁘게!” 요나3장 1절~3절

 

 

1. 두 번째 기회

 

① (1절)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예수님의 사랑은 ‘만회할 기회를 주는 사랑’이다. (요13:36)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사도 베드로와 배신자 가롯유다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나 은 삼십에 주님을 팔아넘긴 죄의 무게는 동일하다. 이 둘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가 사도행전에 기록된다. 베드로는 돌이키는 참회의 회개로 주님께서 베푸신 두 번째 기회에 응답했다. 반면에 가롯유다는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제 곳으로’ 가버렸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회개의 영을 부어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구원역사를 방해하는 죄 곧 회개치 않는 죄를 가리킨다.(마12:31)

 

 

2. 예언자의 소명

 

(2절)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 보내심을 받은 예언자의 책무는 ‘내가 네게 명한 바’에 그 핵심이 있다. 예언자는 자기 말이 아니라 오직 보내신 분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예언자의 권위는 오직 여기에 있다. 그와 동시에 말씀을 듣는 청중들에게는 예언자의 말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말씀으로 청종해야할 책무가 따른다. 하나님께서 예언자의 책무를 이처럼 명확하게 제시하시는 이유가 있다. 예언자들 가운데 말씀을 왜곡해서 변질시키거나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나 자신이 그 실 예다. 왜, 예언자들이 ‘그 명하신 바대로 전달’하지 않는 걸까? 듣든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경고와 책망)을 듣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전달하는 수많은 예언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예레미야는 옥에 가뒀고 이사야는 톱으로 켜서 죽였다.

▶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친 이유다. 에스겔을 향한 하나님의 당부에서 예언자의 깊은 고충을 본다. (겔2장 4절~6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지가 있은 줄을 알찌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찌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찌어다’ 예나지금이나 참된 선지자들은 핍박을 받고 거짓선지자들은 득세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강단의 위기다. 말씀을 전달하기보다 청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설교자들의 문제다. (겔13:2~4)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에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찐저 이스라엘아 너희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한국교회의 회복은 ‘우매한 거짓선지자’의 길을 떠나 ‘가시와 찔레,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흔들림 없이 증거 하는 설교자들의 출현에 달려 있다. 제사장적인 사명 뿐 아니라 예언자적인 사명도 균형 있게 수행해야 한다. 말씀을 듣는 청중들은 페스트 푸트의 3요소인 ‘빨리’, ‘맛있게’, ‘배부르게’와 같은 ‘짧게’, ‘재미있게’, ‘유익하게’의 자극적인 설교에 열광하기보다 ‘순종’, ‘거룩’, ‘회개’와 같은 본질적인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성숙이 요구된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쉬운 길, 편한 길,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좋은 길이 아니다. 어렵고, 힘들고,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 생명의 길이다. 무엇보다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요구된다. (마7:15~18)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열매는 언약의 성취다. 참된 예언자의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 열매는 삶이다. 화려한 말이 아니라 진솔한 삶으로 드러난다.

 

 

3. 순종의 3요소-즉시, 온전히, 기쁘게

 

(3절)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 (메시지성경) ‘이번에는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니느웨를 향해 즉시 출발했다’ 순종의 세 가지 조건은 ‘즉시’, ‘온전히’, ‘기쁘게’다. 순종의 첫 번째 요소는 ‘즉시’다. 순종은 지체하면 안 된다. 더 좋은 상황이나 조건을 따지거나 때와 기한을 내가 정하는 건 순종이 아니다. (수3:13)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요단강 도하 시에 하필이면 강이 범람하는 시기에 건너게 하신 까닭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온전하게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7)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10) ‘너희 가운데 계시사...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순종에 ‘나중에’나 ‘다음 기회에’는 없다. 때와 기한은 주님께서 정하신다.

▶ 순종의 두 번째 요소는 ‘온전히’다. 순종은 내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일치되는 ‘동의’나 내 의견과 주님의 의견을 편의에 따라 조율하는 ‘합의’가 아니다. 더하거나 생략해서 가감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다. (삼상15:13~18)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멜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사울왕은 스스로 순종했노라 자부했지만 사무엘의 답변은 달랐다. (22~23)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울이 행한 제멋대로인 제한적인 순종은 도리어 악하게 여기시는 일이 되고 말았다.

▶ 순종의 세 번째 요소는 ‘기쁘게’다. 순종은 억지로 하면 안 된다. 자원하여 기쁘게 해야 한다. (출25:1~2)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신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 (대상 29: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 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으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학습에서 자발적인 자기주도성은 기쁨으로 오래갈 수 있지만 억압적인 강요는 기쁨이 없어 오래가지 못한다. 신앙생활도 동일하다. 기쁨으로 순종, 은혜로 봉사, 감사로 예물, 기쁨으로 찬송해야 한다. 말씀을 읽는 기쁨, 기도하는 기쁨을 경험해야 한다. 무엇보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기쁨을 스스로 경험해야 한다.

▶ 순종은 기적이다. 요나가 순종할 때 이방인의 큰 성읍 니느웨에서 놀라운 회개의 기적이 벌어졌다. 순종은 축복이다. (눅5:4~6)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목수출신의 랍비였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베테랑 어부였던 베드로의 전격적인 순종으로 만선의 놀라운 기적으로 이어졌다. 순종은 전적인 의뢰와 신뢰를 전제한다. 내 생각보다 주님의 생각이 더 높고,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더 좋다는 확신이 있으면 기꺼이 순종할 수 있다.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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