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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예수가 살았던 시공간을 그대로 보존한 도시 – 폼페이

기사승인 2020.07.27  23: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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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하 목사

1594년 우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폼페이는 기록상으로만 존재하던 도시였다. 지중해 연안의 상업도시이자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했는데, AD 79년 8월 24일에 인근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도시가 사라진 날을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로마의 정치가였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이킬리우스 세쿤두스가 당대의 역사가 타키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화산폭발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

 

   
 

사진 1. 폼페이와 베수비오 화산

 

영원히 묻혀 있을 것만 같았던 폼페이는 1594년 우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 다시 발견되었는데, 당시는 발굴 기술이 영의치 않아 방치되었다가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는 174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하여 귀중한 유물들을 프랑스 왕궁으로 가져갔다. 그러다가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발굴대장으로 임명된 주제페 피오렐리의 조직적인 발굴 작업으로 폼페이는 세상에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사진 2. 폼페이 주거지역

 

도시 전체를 덮고 있던 4-6m 두께의 화산재를 걷어내자 폼페이는 폭발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자리 잡은 화려한 주택들, 유흥가 및 식당가, 상점들, 늘어선 술집과 숙박시설까지 당시 시민들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고 즐겼는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는데, 심지어 대폭발 당시 폼페이는 선거철이 다가올 무렵이어서 벽에 새겨진 수많은 구호와 함께 낙서까지 생생히 남아 있다.

 

   
 

사진 3. 폼페이 음식점 화덕

 

이처럼 폭발 당시의 시대상, 생활상, 사회상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엄청난 두께로 쌓여 있는 화산재 덕분이다. 흔히 폼페이 최후의 날에 흘러내리는 용암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화산재, 화산가스와 같은 화산 분출물들로 인해 질식해서 숨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위에 평균 6m가 넘는 화산재가 덮임으로써 발견 당시까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4. 폼페이 빵가게 및 화덕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주제페 피오렐리 교수는 건물과 도로, 심지어 식탁 위의 음식을 담았던 그릇, 그대로 놓여 있었지만, 사람과 동물의 사체 흔적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당시 25,000명 이상이던 폼페이 시민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의문은 피오렐리 교수가 발굴 현장의 흙더미 속에서 이상한 형태의 빈 공간들을 발견함으로 풀렸다.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굳힌 다음 흙을 긁어내자 그날 죽어간 사람들과 동물들의 형체가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사진 5. 발굴된 캐스트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의 남녀 주인공처럼 서로 꼭 껴안고 함께 최후를 맞은 연인들,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골목길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의사, 집에서 나와 홀로 놀고 있다 죽음을 맞이한 아이, 마지막까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꼭 껴안고 죽은 엄마를 비롯해서 각자의 사연을 품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석고형상(이를 ‘캐스트’라고 부름)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그날 폼페이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숫자는 당시 인구의 약 1/10 정도인 2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사진 6. 폼페이의 명망가 발렌테스의 집

 

1861년 시작된 발굴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필자가 처음 폼페이를 방문했던 때에도 발굴지역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 했는데, 지금도 발굴이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발굴은 계속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방대하다. 그나마 지금은 폼페이 복원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발굴이 진척되었으니 그 또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혹시 폼페이를 방문한다면 현장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지금까지 폼페이 발굴 성과를 소개하는 영상이 항상 상영되고 있으니 놓치거나 혹은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시청하면 한 눈에 폼페이에 관한 거의 모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진 7. 폼페이의 명망가 발렌테스의 집 벽화

 

폼페이의 가장 특이한 점은 역사의 특정 순간과 그 당시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완벽하고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유적이다. 그렇다면 폼페이가 보여주는 역사의 특정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AD와 BC를 가르는 예수 탄생과 그 활동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사진 8. 아레나

 

당시 로마는 지배 정책을 공고히 하고자 자신들의 문화 및 생활양식을 정복지 전역에 전파하는 일에 열중했는데, 이는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AD 1세기 지중해 지역 대부분은 로마화 되었다. 즉 로마가 당시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이자 지배적 생활양식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예수의 활동 지역이던 갈릴리와 예루살렘도 포함되는데, 당시 이 지역의 지배자였던 헤롯 대왕이 로마화의 충실한 협력자로 그 지위를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도 예수 당시 로마화의 영향력을 추측할 수 있다.

 

   
 

사진 9. 폼페이 원형경기장

 

근래 들어 신약학계의 가장 큰 관심 중 하나가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재발견 하는 일이다. <예수 세미나>로 대변되는 방대한 작업은 인간 예수뿐만 아니라 인간 예수가 존재했던 시공간에 대한 폭넓은 정보도 함께 제공해 주었는데,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인간 예수의 시공간이 바로 ‘로마화 된 AD 1세기 지중해 지역’이다. 그렇다면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어디일까? 바로 폼페이다. 폼페이는 인간 예수가 활동했던 시공간을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완벽하고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인간 예수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었으며, 어떤 곳에서 살았는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폼페이를 방문해 보라. 인간 예수를 존재케 한 시공간이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그곳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진 10 폼페이 복원도

신태하 hopeac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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