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弔辭) 사랑하는 정영문 목사님께 이 글을 올립니다

기사승인 2020.08.02  20:25:54

박철 pakchol@empal.com

공유
default_news_ad1
   
 

(弔辭)
사랑하는 정영문 목사님께 이 글을 올립니다.

한 달 전 즈음 정영문 목사님이 하나님께 떼쓰듯이 내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곡기를 끊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정영문 목사님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을 찾아뵐까 생각도 했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 모든 연을 끊고 하나님과 독대하며 기도에 전념하도록 하는 것이 변명 같지만 목사님께 더 좋을 듯싶었습니다.

20여 년 전 제가 감리교 농촌목회자회 회장을 역임하던 시절, 전국농목대회를 열게 되었는데 재정이 부족해서 걱정하던 차에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정영문 목사님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정 목사님에게 도움을 청하면 절대로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정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긴 말씀도 안 하시고, 사무원 바꿔줄 테니 필요한 금액과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후로 정 목사님과 인연이 되어 몇 번 더 도움을 청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 목사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내가 만난 정영문 목사님은 매사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매사에 반듯한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정장에 정갈하게 나비넥타이를 매셨습니다. 머리는 까맣게 염색을 하셨고 구두는 반짝반짝 윤기가 났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 다고 정 목사님은 안과 밖이 같았고, 그 사람이 높은 사람이든지 낮은 사람이든지 가난한 사람이든지 부한 사람이든지 누구에게나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대하셨습니다.

정영문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부흥사이셨습니다. 정목사님이 강단에서 말씀의 불을 토하면 많은 사람들이 눈물바다를 이루고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의 삶은 예수의 복음적 열정으로 충만한 분이셨지만 생각은 진보적이셨습니다. 정 목사님은 에반젤리칼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으시고, 그 둘이 모순되거나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도록 잘 조화를 이루내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수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부산시민사회에서 부산역 광장에 천막을 치고 <세월호특별법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저녁마다 기독인들이 중심이 되어 추모기도회를 열었는데, 거기에 정 목사님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오셨냐고 했더니 정 목사님은 “세월호 희생자들이야말로 우리 기성세대를 대신해서 죽은 사람들이라며 우리 기독교인들이 큰 부채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종교의 경계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을 뛰어넘어 이웃종교와의 대화에도 앞장 선 분이셨습니다. 보수성향이 강한 부산지역에서 불교스님들과도 격의 없이 대화하는 것은 좋아하셨고,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 날이면 꼭 사찰을 방문하시어 기독교목사로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달하셨습니다.

언젠가 부처님 오신 날, 어느 사찰을 방문해서 불자들에게 말씀하시길 우리나라에 기독교보다 불교가 훨씬 먼저 전해졌다며 한국에선 예수님보다 부처님이 형님이시라고 하셔서 불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정영문 목사님은 사유와 철학의 폭이 넓으셨고, 언제나 개방적이셨습니다. 정 목사님은 정통 감리교신학으로 무장하신 분이었지만 교리화된 종교, 이념화된 종교, 화석화된 종교를 매우 거북하게 여기셨습니다. 정 목사님은 1928년 평안남도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평양성화신학교를 나오셔서 감리교 목사가 되셨습니다. 이 땅에서 92년 성상을 사시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정 목사님은 평소 나와 너, 너와 다른 입장, 우리와 다른 생각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 목사님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과도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의 헌신과 희생으로 이땅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을 양성하셨습니다.

그분은 일 년에 수십 차례 부흥회를 인도하며 받은 사레비를 노후를 대비해서 한푼도 모은 적이 없으셨습니다. 다 교회를 섬기고 어려운 신학생들과 이웃들을 돕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의 말년에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남겼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바울의 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남겼던 참으로 비장하고 의미심장한 신앙고백입니다. 저는 바울 사도의 이 마지막 신앙고백이 정영문 목사님의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목사님은 그야말로 일평생 예수님 때문에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의의 면류관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실 줄 믿습니다. 우리도 정 목사님이 가셨던 길을 잘 따라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 아름다운 사람 정영문 목사님! 한국교회의 큰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습니다. 부산의 재야의 큰 어르신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가시는 길, 하나님의 각별한 위로와 은총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정영문 목사님, 고마웠습니다. 우리도 당신께서 걸어가신 길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하나님! 정영문 목사님의 영혼을 고이 품어 주소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긴 자녀들과 유족들을 어루만져 주소서. 남아 있는 우리들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게 해주소서.

박 철(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샘터교회원로목사)

정영문 목사 약력
1928년 평안남도 출생 △평양성화신학교, 건국대 정외과, 동아대 대학원 정치학과 등 졸업 △부산 시온중앙교회에서 46년 동안 담임목사로 목회 활동 △부산경실련, 부산종교인평화회의 상임의장 등 역임△2020년 8월 1일 92세 일기로 별세

 

   
 

박철 pakchol@empal.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