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성소수자 관련 연회재판에 대한 소견

기사승인 2020.08.04  01:07:40

이수기 목사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가말리엘의 지혜를 따라
 성소수자 관련 연회재판에 대한 소견

아무도 원하지 않는,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관련하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일에 나서본 바도 없으며, 게다가 이동환목사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터에 내 생각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논문도 변론도 아닌 선교적 관점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니 지금껏 무탈하게 산 것은 중요한 문제들에 적당히 무관심하고 나 좋은 것만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토론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적당히 피해 다니며 양반 흉내나 내고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여러 가지 사역으로 육체적 피로가 과중한 터에 복잡한 문제에 얽혀 건강을 잃을까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여느 목사와 다를 바 없이 새벽이면 예배당에서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교회 주변 거리 청소와 정원 풀뽑기로 이어지고, 빵 만들기 농사 등 노동과 찾아오시는 분들을 맞아들이고 전도하는 일에 전력하고 저녁에야 설교준비를 하고 대략 12시쯤 몸을 눕힙니다. 성적으로는 평범한 이성애자이고 성소수자를 옹호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특별히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지도 않은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로 살아온 햇수를 뒤로 헤아려보니 30입니다. 큰 족적을 남긴 것 없지만, 무슨 일이든 어떤 곳이든 주님의 부르심대로 살았습니다. 바다나 강이나 깊은 산중이든 평탄하든 지진에 흔들리고 무너진 곳이든 내 마음을 이끄시는 대로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나누었고 병들고 상처 입은 이들을 고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재주도 능력도 없는 터에 뭐든 거절하거나 회피하지 않겠노라 하고 보니, 힘에 부쳐서 더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성소수자 관련한 교회재판 언론기사를 읽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받은 기독교인의 대처에 의문과 미흡함을 느끼던 차에, 교회재판까지 열린 것은 향후 선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은 고대로부터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나 숨겨진 문제였으며, 대부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나 이제는 우리 삶 속에 드러나고 전세계적 전교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외면하거나 분리한다고 없어지는 문제가 아닐뿐더러, 반드시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의도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가벼이 여기거나 특정인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따라가야 할 신앙의 길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또한 향후 기독교의 존속과 발전에 책임감을 가진 목회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바를 적고자 합니다.

 * 과거 교회의 오류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지식이 성숙하지 않은 시대에는 교회의 가르침에도 오류가 많았습니다.  전염병이 아닌데도 격리 그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인정한다 하여도 이제는 복음에 기초하여 좀 더 사려 깊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선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원인과 치료법을 모르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정죄하고 차별하였습니다, 남녀차별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성매매의 경우 여성만 가혹하게 처벌하였고, 오랜 세월 노예제도 또한 교회의 용인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마녀사냥의 기독교역사를 기억하십시오. 히틀러나 기타 독재자에 협력했던 교회를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짧고 용기는 얼마나 부족하였는가?
 2차 세계대전 히틀러의 만행에 우리 모두 큰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독일인의 애국심이 히틀러를 환호하였고, 수천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당시 독일국민 대부분이 매주일 예배드리던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편협함과 과다한 확신으로 한 행동들이 어떻게 사람을 이성 없는 짐승으로 만드는지 기독교역사가 가르쳐줍니다.

* 율법의 조문과 감리교교리와 장정만을 들고 재판한다면
 예수님도 율법과 교리로는 유죄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으로 예수님도 정죄 받았습니다. 창녀를 옹호하였으며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율법에 금한 나병환자들을 접촉하였으며 거룩한 안식일의 규정을 어겼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동성애자에 대해 비난하신 기록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수님께 시비를 걸겠습니까? 현재의 교리로 재판을 받으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유죄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아내를 버리고, 죽음의 위험이 있는 광야에 가족을 버렸으며, 후사 이삭을 얻은 후에도 첩들을 두었습니다.
 율법으로 금한 것을 오늘날 우리가 다 지켜 금해야 한다면, 음식정결례나 안식일을 어기면 재판을 열어 처벌해야 합니까? 또한 노예를 사고팔며, 근친혼을 허용하고, 첩을 두는 등 율법으로 처벌하지 않은 것들은 오늘날에도 다 허용해야 합니까?
 신중하게 더 신중하게 연구와 토론을 하고 교리로 만들어야 하며, 그 이후에도 교리로 재판을 하는 것은 더 신중해야 합니다.(제가 무지하여 성소수자와 관련된 교리가 감리교에 확정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에 기초한 법인지 예수님이나 믿음의 선조들이 통과할 수 있는 법인지 함께 읽어보았으면 합니다.(교리와 장정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 향후 복음전파를 위해 성숙한 태도와 방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는 눈들에 의해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며 어떻게 판결이 나든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우리의 주장이 비수가 되어 복음이 막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스스로 불러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슈화되는 것이 극단적 지지자들에게는 기쁨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전도에 장벽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눈으로 모든 사람들을 구분하고 율법이나 교리를 들어 적대시한다면, 결국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멀어지도록 할 것입니다.

* 더 신중한 연구와 토론을 선행해야 합니다.
 퀴어 축제의 단면을 본 저도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동청소년들을 고려하지 않은 일부 표현의 일탈은 비난받기에 충분합니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이 이미지에 갇혀버린 것이 아닌지 돌아봅니다. 더 나아가 성소수자와 그들 중 그릇된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동일시하고, N번방 성범죄 사건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모두가 죄인일 뿐이나 또한 존귀한 존재인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 에이즈감염과 사회적 비용의 측면을 기초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성소수자 중 얼마나 선천성이고 후천성인지,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대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지? 동성애와 매스 미디어 중에 어떤 것이 더 악하며, 복음전파에 해악이 큰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목회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성소수자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방법에 있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비껴나 보입니다.
 우리의 아들 딸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탕에 빠지는 것이 너무나 염려되어 무엇인가 해야 한다면 결사대를 조직하여 술집을 폭파하고, 세속문화를 전하는 텔레비전 방송국과 영화관이나 스포츠센터를 부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 십자가 앞에서 숙고해주십시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이지 십자가를 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세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불똥이 떨어질까 염려하여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서 침묵의 동조는 더 이상 무죄일 수 없습니다. 법정에 세워 심판하는 방식은 선교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사탄의 먹잇감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교리로 재판하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 말고 십자가 앞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일에 다가가 주십시오.

* 나오는 말씀, 가말리엘에게 배웁시다(사도행전 5:33-42)
 나라가 없는 백성들이 지켜온 유대교가 지금까지 존속하게 된 힘은 어디 있을까? 나는 가말리엘 같은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엄혹한 역사적 고난 속에서도, 완고하게 대립하며 정죄하는 길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유대교를 위협한다고 여겨 처단하려는 공회원 앞에서 가말리엘이 한 말을 기억해주십시오. 혹 우리의 열정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교회를 파괴하고 복음을 막는 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주십시오.

 세상은 복잡해졌고,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은 터에 누군가에게 내 지식을 전하는 것에 부담이 있습니다. 내 삶과 생각을 열어 보이는 것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부디 함께 이 피하고 싶은 무거움을 함께 숙고하고 나누어 주십시오. 한 젊은 목사의 목사직에 대한 변호가 아니라, 이 사건 처리 향방에 따라 이 땅에서 복음이 확장될지 아니면 교회의 종말을 앞당기게 될지에 대한 통찰을 촉구하기 위해서 감히 몇 자 적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너그러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재판에 변호인으로 나서주실 목사님이 부족하다면 저라도 조력할까 합니다. 저와 교제가 있으신 분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위 견해에 대하여 동의 동조 협력 어떤 모양으로든 함께해주시길 요청 드립니다.

   2020. 8. 3  이수기목사 (경기연회 동탄지방 평화교회)

이수기 목사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