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아, 그대 수마여!

기사승인 2020.08.05  00:20:39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올 여름은 백만년 만의 불볕더위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오십 평생 없던 에어컨을 큰 맘 먹고 동생을 어르고 달래서 중고로 설치했다. 올해는 이 에어컨 바람으로 나도 천국을 맛보겠거니 하는 기대가, 웬걸? 아직도 견딜만하다. 견딜 뿐이겠는가. 가끔은 비오는 날 습한 기운을 막는다고 전기료 저렴한 선풍기를 틀면 찬기를 느낄 정도니 에궁! 아무래도 에어컨은 남의 집 살림이 되겠구나. 가뜩이나 에어컨 바람을 싫어한 나였는데 무슨 바람이 들어 동생의 주머니를 털었을고! 가끔 동생이 묻는다. "에어컨 시원해?" 그러면 난 "응, 덕분에 잘 써" 하얀 거짓말은 이때 잘 써 먹는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어인 일인가! 지금 며칠째 비가 오고 있다. 아무리 이름 따라 간다지만 이번 비는 길어도 너무 길다. 비만 내린다면야 장마 기간이니 좀 견디어 보겠는데 올 장마는 남부에서 중부, 아랫녘에서 윗녘을 오고가며 생채기를 내고 있으니 어쩜 이리도 야속하더냐. 크고 작은 물난리로 사람들이 힘겨워 하는데 그중에 부산과 대전의 물난리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안타깝게 하였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직장에 취업한 딸이 간만에 부모님을 만나러 왔는데 하필이면 비가 억수같이 내린 때였을까. 차오른 물속에서 손을 꽉 잡고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던 모녀, 구조되는 순간 엄마는 딸의 손을 놓쳤고 딸은 익사하여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아! 살아남은 엄마가 어떻게 살게 될지 그 심정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껴졌다. 뭐라 위로할 수 있으랴!

나도 이번에 비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음성에 비가 온다는 예보는 알았지만 그리 내릴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말이다. 새벽 1시 경, 이날은 잠도 안왔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가 천둥 번개와 벼락을 동반한 비가 갑작스럽게 하늘이 뚫려 양동이로 내리붓는듯 싶었다. 마침 헤라가 외출을 한 상태여서 뒤안 창문을 열고 헤라를 부르려는데 배수로의 물이 빠지지 않고 찰랑찰랑 넘으려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7년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음성에 내려와 처음 맞은 여름, 그해도 비가 많이 왔다. 주방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여 열심히 퍼담고 닦아냈다. 뒤안을 살피니 배수로가 꽉 막혀 물이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밤중이었다. 우산도 번거로워 비를 맞으며 삽으로 물길을 텄다. 그제야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 이튿날 건재상에 가서 디귿자형 배수로판 5개를 구입하여 나름대로 배수로 작업을 했다. 그리고 지붕을 보니 동전만한 구멍이 주방 쪽에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는 일급 발암물질 스레트 지붕이었는데 그 지붕을 기어올라가 구멍난 곳을 시멘트를 개어 보수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역시 인생은 모르는게 약이 될 수도 있고, 무식해서 가능한 일도 있는거였다.

그 악몽을 다시 재연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도 한밤중에 삽을 들고 나갔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막힌 배수로를 열었다. 물길을 잘못 터서 지대가 낮은 사무실 주방쪽으로 빗물이 빠지길래 새로운 물길을 터느라 한바탕 끙끙거렸다. 그런데 이번 비는 7년 전의 비와 달랐다. 더 굵고 더 세찼고 양이 훨씬 많았다. 양동이가 아니라 하늘에서 폭포수가 내려오는거 같았다. 대문으로 나섰다. 집 앞 도로가 온통 물바다였다. 경사진 도로는 흐르는 흙탕물로 강을 이루는 듯 했다. 거침없이 흘러내려갔다. 물살이 얼마나 거센지 크고 작은 돌들도 소리내어 힘없이 떠내려갔다. 퍼붓는 비의 무서운 위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저절로 기도가 나왔을까.

비가 그친 아침이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우리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단다. 아랫집은 축대가 내려앉았고, 반장네 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빗물에 휩쓸려 계곡이 되었으며, 어젯밤 콸콸 넘쳤던 배수구는 산에서 내려온 나뭇가지와 돌로 꽉 채워져 맨홀뚜껑이 저 아랫집까지 떠내려갔다. 맞은편 마을의 집엔 토사가 덮쳐 집이 무너졌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처음인데,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내가 빌려 쓰는 밭이 엄청나게 쓸려서 그 토사가 도로와 이웃집 콩밭을 지나 커다란 저온창고를 덮쳐 벽을 무너뜨렸다. 훈련원 공동체의 집도 마당이 쓸려내려가 위험천만한 낭떠러지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인명 피해는 없어 감사한 일이지만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를 복구하려 하니 벌써부터 아득했다.

읍에서 장비지원으로 포크레인이 와서 임시방편 복구를 해주었지만 이후 처리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올 한해 농사를 짓지 않아 체력을 키우나 했더니 결국은 수해 복구로 또이또이가 된 셈이다. 비가 개이면 무릎까지 자란 풀을 예초도 해야 하고, 무너진 자리도 세워야 하고... 할 일은 많은데 이제는 옛날 같이 뭣도 모르고 무식하지 않으니 어이하랴!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하늘이 참 얄궂을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다. 찬란한 햇살속에 바람이 살랑거린다. 어젯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싶다. 자연이 하는 일을 누가 알랴! 수해 소식을 페이스 북에 올렸더니 많은 지인들이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그 위로가 쓸려간 마음을 보듬어준다. 고마웠다.

앞으로 비소식이 더 있단다. 엎친대 덮친 격이 되려는가. 더 이상의 피해는 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아, 그대 수마여! 이젠 멈추어다오.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