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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에 맞서 싸우겠습니까?

기사승인 2020.08.18  12:38:03

김준우 honestjes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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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에 맞서 싸우겠습니까?

 — 성소수자들 문제는 섹스 문제가 아니라 생존 문제입니다 —

 

장로님, 무더위 속에 가족 모두 평안하신지요?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매우 큰 고통을 겪는 시절에 교회가 또 다시 방역 문제로 인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신천지에 이어 사랑제일교회가 집단 감염의 본거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리교의 이동환 목사가 작년에 동성애자들을 축복했다는 것 때문에 30년 만에 또 다시 종교재판이 벌어지고, 신학대학 교수들 3백여 명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은 모두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직결된 문제로서, 역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위협당하는 때에 한국 교회에 대한 이런 지탄은 매우 안타까울 뿐 아니라 교회의 뼈아픈 반성을 요구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장로님께서는 제가 3년 전에 “무지개신학연구소”를 세워 성소수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던 이유를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하셨으니, 제 평소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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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속담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웃으시게 만들고 싶다면, 너의 계획(your plans)을 그분께 말하라! 그러나 하나님을 더욱 크게 웃으시게 만들려면, 그분의 계획(His plans)이 무엇인지를 그분께 말하라!” 그분의 계획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말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말이 하나님을 더욱 크게 웃으시도록 만들지는 않을지 항상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합니다. 인간이 결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는 신묘막측하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교리와 정통신학은 흔히 “절대 불변의 진리”를 주장하지만,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우리의 한계와 무지함을 인정하고 겸손하라는 경고라고 이해합니다.

애당초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당시 막강한 제국의 중심부를 떠나 변두리로 가도록 이끄신 하나님의 전혀 뜻밖의 계획, 모세로 하여금 고대세계 최강대국의 노예생활을 탈출하도록 이끄신 놀라운 계획, 그렇게 선택하신 백성들에게 율법까지 주심으로써 정말로 주변부에서 짓밟히고 신음하는 사람들까지 기쁨과 정의를 누리는 민족을 만드셔서 인간 세상의 본보기가 되고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계획하셨지만, 통일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에는 오히려 서로 죽일 듯 미워하며 전쟁을 일삼았던 어처구니없는 역사를 통해서 유대인들은 이런 통절한 지혜를 배운 것이 아닐까요? 단 하나의 민족을 통해서 만이라도 모두가 정의를 누리는 공평한 세상을 만드시려는 그분의 계획은 인간의 눈에는 결코 불가능한 터무니없는 계획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이런 혁명적이며 우주적인 계획과, 백성의 정치종교 지배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인간들의 계획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되풀이해서 뼈저리게 경험했던 때문일 것입니다. 나사렛이라는 깡촌 출신의 예수님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주변부의 짓밟히는 사람들이 중심부까지 구원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도 아픈 손가락에 자꾸만 신경이 가듯이, 하나님의 눈길은 항상 세상의 주변부 밑바닥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있지만, 정치종교 당국자들은 항상 중심부 기득권자들의 이해관계를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주장하는 역설과 허위를 유대인 민중들이 간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최선은 어떤 확신도 결여하고 있지만, 최악은 강렬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지요. 이것은 인간의 절대적인 “확신”과 “강렬한 열정”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수많은 정치종교적 열광주의자들을 낳았으며, 또한 그들로 인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비롯해서 얼마나 끔찍한 잔혹행위들이 초래되었는지를 꿰뚫어 본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이해한 하나님의 계획이란 하나님을 더욱 크게 웃으시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을 탄식하시다 못해 대성통곡하시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지요.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차별과 폭력과 죽임이 더욱 만연해질수록,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어떤 명분으로든 차별과 폭력과 죽임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기본적 명령이라고 제가 이해하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특히 종교 내부의 모순이 여실히 드러날수록 그 결속력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적이나 사탄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타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역사적 사명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들은 한국 교회 안에서 “빨갱이들(종북 세력)”을 제거 대상으로 삼다가 더 이상 효과가 없자 최근에는 “반동성애” 운동에 몰입하면서 온갖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데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기 전까지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관세음보살 신앙으로 삶의 온갖 아픔과 고난의 역사를 헤쳐 나갔지요. 관세음(觀世音), “세상의 슬픈 소리를 보는” 보살은 인도에서는 남성 보살이었지만, 중국과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성 보살로 그 젠더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생명을 낳아 키워내고 살려내는 극진한 모성과 여성성을 통해, 가부장적인 종교들이 초래한 차별과 폭력과 죽임의 질서를 극복하려는 마음을 우주적인 원리로 본 대항문화적 통찰력과 종교성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가부장적인 세상의 차별과 폭력과 죽임을 확대시키면서 사람들의 심성마저 더욱 모질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세상의 온갖 슬픔과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아 치유함으로써 상처받은 심성을 부드럽게 회복시키고 있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온갖 차별과 조롱을 겪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축복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종교재판을 벌이며 신학대학 교수들 수백 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한국 교회가 역사상 수많은 침략과 전쟁, 반란을 통해 온통 피로 물들었던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그 기나긴 고난으로 점철된 눈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관세음 신앙처럼 슬픔과 아픔을 온몸으로 품어 안는 어머니의 바다 같이 넓은 품을 내팽개치고,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사막종교의 막장 칼부림 버릇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여 안타깝습니다. 작금의 교회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외면한 채 예언자들을 죽이던 예루살렘의 종교 당국자들을 향해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들을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태 23:37)라고 탄식하신 예수님을 새삼 기억하게 되는 것은 어인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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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제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크게 웃으시도록 만드는 생각인지, 아니면 탄식하시도록 만드는 생각인지는 장로님께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전쟁 전에 태어난 저희들 세대가 어느덧 인생의 끝자락이 내려다보이는 고개에 올라서고 보니, 저희들 세대는 이 땅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면전 없이 살아온 것만도 참 감사하지만,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 세대를 생각하면 우리가 “불타는 집”을 물려주면서도 아무런 효과적인 정치경제적 대책들과 신앙적 대비책을 세우지 못한 것 때문에 저는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인류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생태계 파괴로 인한 인류문명의 붕괴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마존, 시베리아, 캘리포니아를 비롯해서 세계 곳곳에서 무섭게 타오르는 산불은 “하나님의 몸”인 지구 생태계 전체가 얼마나 빠르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요. 그래서 십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채 8년도 남지 않은 마지막 탄소예산의 대책을 요구하며 큰 소리로 울부짖고 있는 절박한 시대입니다. 조만간 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동시다발적인 식량폭동뿐 아니라 대멸종을 초래할 대파국의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이 지구 생명계 자체가 평화롭게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시장전체주의자들과 제국주의자들, 그리고 탈레반과 같은 종교적 원리주의자들의 “혐오와 배제와 죽임의 정치”를 극복하고,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생태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문명전환의 혁명적 방법들을 시급하게 모색하고 함께 연대해서 행동해야 할 절박할 시점입니다. 침몰하는 배가 어느 시점을 지나면 복원력을 상실하고 급속하게 침몰하는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과 손주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생태계 비상사태가 나날이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절박한 시대적 관점에서 볼 때, 36개 신학대학 교수들 376명이 서명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성명”(8월 11일)은 하나님을 탄식하시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의 모든 저자들과 신학자들은 “시대를 분별하는 일”이 신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지만, 그 성명서는 이처럼 빠르게 파괴되고 있는 “하나님의 몸” 전체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오히려 시장전체주의와 제국주의와 종교적 원리주의의 하수인들처럼 “혐오와 배제와 죽임의 정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요구한 것으로 보여서, 하나님을 탄식하시도록 만든 것일 뿐 아니라 지금 절박하게 울부짖고 있는 우리들의 다음 세대들 앞에서 매우 민망하게 만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특히 우리 기독교인 이성애자들이 갖는 혐오감, 무의식적인 우월감, 그리고 그들을 “죄인들”로 낙인찍고, 또한 그들이 회개하여 성소수자라는 정체성과 행동을 버리고 우리와 똑같은 이성애자들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그들 모두 “지옥불 속에 떨어져야 마땅하다”고 외치는 기독교인들의 저주는 성소수자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 경험의 한계를 드러낼 뿐 아니라, 우리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억압된 히스테리,” 그 바리새파적인 자기 의로움과 강력한 분노라는 “종교적 방어기제”가 표출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논쟁을 통해 바뀌기보다는 먼저 이 세상에서 그들 성소수자들이 겪는 “숨 막히는 고통과 슬픔”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만 바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장로님이나 저처럼 자녀들이나 손주들 가운데 다행히 아직까진 성소수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남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함부로 저주해서 더욱 상처를 주는 것은 인간적으로 매우 잔인한 짓일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에 나오는 “목이 곧은” 요나처럼, 인간의 협소한 잣대로 하나님의 우주적인 뜻과 보편적인 사랑을 정반대로 왜곡하는 짓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마음 문을 열지 않는 한,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처럼, 성경 문자에 대한 절대적인 집착과 잘못된 해석은 그 확신과 열정이 넘칠수록 그리스도까지 살해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내노라 하던 예루살렘 성전 대제사장들과 신학자들이 달려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을 공모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매우 큰 역설이며, 이런 비극적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적 확신과 강렬한 열정이 때로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큰 역설의 뿌리는 우리의 에고 중심적인 잣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판단하면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신비를 외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준우 honestjes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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