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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어디서 누구와 살고 계십니까

기사승인 2020.09.11  00:05:45

박효숙 hyosook05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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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각자의 집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계절은 변함없이 우리들의 마음을 노크합니다.

가을이 낙엽편지를 보내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봄의 향연과 여름의 싱그러움을 담은 편지 한 장 한 장에 사랑의 글들이 가득 적혀 있습니다.

참 눈부신 계절입니다.

우리들은 제 각각의 눈으로 편지를 읽습니다. 슬픈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슬픈 눈으로, 기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기쁜 눈으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은 가슴 벅찬 따뜻함으로 편지를 읽어내려 갈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문제를 바라보는 자기만의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눈을 통해 각각의 “자기식” 해석을 해냅니다. 때때로 이러한 자기식 해석은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에서는 그 장애물을 ‘유년기의 상처’, ‘심리적 갈등’, ‘마음속의 아이’ 라고 하며, 내적 치유를 하는 사람들은 ‘쓴 뿌리’라고도 합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자기 안의 장애물을 이해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진정한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사람들과 인사할 때 ‘어떻게 지내십니까? (How are you?)’ 라고 묻는 것보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Where are you?)’ 라고 묻는 것이 더 좋은 질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어디에’는 공간적 장소가 아니라, 심리적 장소를 말합니다.

심리상태를 지적한 말인데 어디서 누구랑 살고 있는지를 묻는 말이기도 합니다. 누구랑 어디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서 문제를 해석하는 안경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상담현장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은 대부분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 (Inner Child)와의 갈등이 가장 큰 이슈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난 아이와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무의식에 살고 있는 성난 아이는 자기 분노를 두 방향으로 터트립니다. 밖으로 폭발하기도 하고, 안으로 폭발하기도 하는데, 안으로 폭발하는 분노는 자기 자신에게 터트리면 수치심으로 인해 중독에 빠지기도 하며, 심인성 질환을 일으킵니다. 밖으로 터트리면 엉뚱한 외부 대상을 공격하게 되는데 대체로 남편이나 아내, 아이들 같이 만만한 대상이나 직장의 부하가 그 공격의 대상이 되며, 분노 정도에 따라 난폭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분노 처리는 우리 모두의 큰 숙제인데, 자기성찰이나 자기분석을 통해서 자기 안에 살고 있는 성난 아이를 발견하고 치료해야 합니다.

사실, 마음속의 아이는 유년기에 만들어진 허상이며, 마음의 상처를 받고 생겨나 무의식에서 살아왔던 아이일 뿐입니다. 현재 성인이 된 자신이 허상인 마음속의 아이에 의해 지배당하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통찰(insight)인데, 일단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치료하고자 하는 의지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편 분노의 심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있습니다. 자신이 작아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어른이 된 성숙한 자신이 마음속의 성난 아이를 만나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동안의 힘듦을 토닥 토닥 위로해주면, 멈추었던 성장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성장은 화나게 한 사람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계속 성장하기 위해, 대단한 일을 성취하거나 많은 돈과 명예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즉 자신에 대해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몫이 있고, 자신의 몫의 삶을 당당히 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하는 든든한 정체성이 성장을 이끌어 가는 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 비교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 만드시고 “보기에 참 좋았다”라고 하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허락된 역할과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며 살고 있는지를 늘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누구나 자기가 왕자와 공주라고 믿는 시기가 있습니다. 보통 세 살 이하의 시기입니다. 그때 보통 엄마들은 아이를 왕자와 공주처럼 대우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시기에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를 돌보아주는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가치를 정합니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아이는 자신을 과장되게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않는 원만한 성격으로 자라납니다. 하지만 이 욕구가 채워지지 못했을 경우 그 배고픔이 무의식에 남게 됩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도 남의 인정과 칭찬을 받아 그 공허한 자리를 메우려 합니다. 모든 특권을 누려 보아도 마음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우울하게 되고 점점 더 외로워지고 나이 들어 힘이 없어지면 위기에 빠집니다.

위기가 오기 전에 마음속에서 공주인 채 왕자인 채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해야 합니다. 과장하고 포장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투하는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지나치게 경쟁의식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상담학에서 이를 ‘형제 간의 경쟁(sibling rivalry)’이라고 부릅니다. 성난 아이와 마찬가지로 질투하는 아이도 무의식에 살고 있습니다. 질투하는 아이는 다른 형제보다 부모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데, 인정받지 못해서 생겨납니다. 즉 비교의식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질투하는 아이와 이별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존재이유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인 것만으로도 존재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내 생각과 다른 사람도 있다”는 ‘창조적 회의(creative curiosity)’를 갖고,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다” 라고 깨달아 지면 치료가 시작됩니다.

“의존적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매사에 징징거리며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고 보챕니다. 의존적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꼭 어린아이 같습니다. 매번 요구만 하고,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책임질 줄 모릅니다.

상담학의 용어를 빌린다면 ‘쾌락 원칙(pleasure principle)’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인터넷 중독,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 심지어 성 중독(sexual addiction)에 빠지기도 합니다. 중독 뒤에 숨어서 살아갑니다. 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잠깐 동안이지만 통제권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다고 하는 불합리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에 몰두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립니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안심하는 의존적인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현실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유년시절 부모(주 양육자)의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가 부모의 보살핌이 부족해 느꼈던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일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작은 집중이 일중독이나 게임중독, 음식중독, 관계중독 등에 빠지게 합니다. 중독은 차차 관계를 해치고, 일상을 파괴합니다.  만약, 무엇엔가 중독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욕구를 영원히 채워 줄 수 없는 부질없는 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중독 뒤에 숨어서 떨고 있는 아이를 직면하고, 빛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늪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의심 많은 아이” 와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의심 많은 아이는 어린 시절, 필요를 채워줘야 할 부모(주양육자)가 부재했거나 적절하게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한 상처를 가진 아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흔히 ‘나는 흠이 많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 라는 자아상을 갖고 자라게 됩니다. 따라서 무의식 속에 있는 ‘의심 많은 아이’는 ‘세상은 위험한 곳이고, 세상 사람들은 나를 불행하게 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 고 믿게 되며, 평생을 의심의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대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믿을 대상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믿을 사람을 만나면 치유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믿을 대상은 친구가 될 수도, 선생님이 될 수도, 배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대상은, 이들을 곁에 허락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가장 단시간에 치료가 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 곁에 허락하신 주변사람을 통해 우리들의 고통의 문제를 치유하시고, 다루어 가십니다.  그들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속에(in) 빛(sight)이 들어가면, 단번에 “아하!” 하는 통찰(insight)과 함께 성장해 있는 마음 속의 아이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서, 누구랑 살고 계십니까?

최적의 심리적 장소는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장소가 아니라 정상적인 결핍이 존재하며, 적절한 좌절 경험을 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말합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심리적 장소는 각자 색깔과 모양은 다르지만, 거의 모두 다 Good Enough 한 장소입니다.  마음 속의 살고 있는 아이의 건강상태는 성숙한 자신이 돌봐야 합니다. 마음 속의 아이가 행복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는 장소를 불우한 환경이라고 자기식 해석을 하기 때문에 낮은 자존감과 수치심으로 인해 불행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을바람에 물들기 시작한 가로수 낙엽들이 손을 흔들어 환영하듯 우수수 나부낍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도 험하지만 그동안의 수고를 지지하는 것처럼 느껴져 감사한 마음이 되어 또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사랑합니다.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낙엽 한 장 또르르 낙엽편지를 보내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부쳐진 사랑의 편지에 오늘은 맘에 담아두었던 답장을 꼭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박효숙 목사/청암크리스챤아카데미/ 목회상담학박사

박효숙 hyosook05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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