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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도권과 우리 모두의 ‘비상(飛上)’을 위하여

기사승인 2020.09.12  00:23:26

조진호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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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밤 평소처럼 이른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이어지는 카톡 알림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잠결에 보니 한동안 잠잠하던 대학동기들의 단톡방이 분주해져 있습니다. 비몽사몽 가운데 새벽기도를 위해 애써 무시하고 다음날 확인해 보니 한 편의 동영상이 던진 파장이었습니다.

그 동영상은 하도권이란 예명으로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친구가 ‘불후의 명곡’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부른 노래였습니다. 원래 가수 임재범이 불렀던 그 노래의 제목은 ‘비상(飛上)’이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대중 노래에 문외한인 저로써는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저는 단번에 친구가 이 노래를 고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 노래가 그의 이야기, 아니 그와 같은 시절을 함께 보냈던 우리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명문대 입성이라는 헛된 영광에 도취되어 있느라 우리들은 음악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사실상 곁에 아무도 없는, 관객석이 깜깜하게만 보이는 무대 위에 홀로 던져져 버린 인생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한참 뒤에나 깨달았습니다. 음악계의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 또한 삶으로써의 현실과 음악가로써의 현실을 구분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우리들이 던져져 놓여 있던 무대 자체도 너무나 낯선 곳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예술은 자연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중요시하였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외관의 건물 속에서 관객과 완전히 분리 되어 조명 아래에서 덩그러니 빛나고 있는 무대라는 공간은 기껏해야 5, 60년 전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한국인의 음악적 DNA에는 전혀 없었던 장소였습니다. 전쟁터에 놓여 있는 병사가 인간성과 전쟁을 참상을 묵상하는 순간 더 이상 총을 들 수 없듯이 입시와 경쟁이라는 또 다른 전쟁 속에서 음악을 배운 우리들은 그 전쟁이 끝났음에도 결코 노래를 우리의 무기가 아닌 ‘노래 자체’로 바꾸어 들 수 없었습니다.

무대에서 바라본 객석의 어둠 속에 있는 수많은 시선들이 서로 말 없이 수군대고 있는 느낌은 가히 공포스러웠는데 그 느낌은 무대 위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예술적인 역량 보다 먼저 그 상황을 견뎌 낼 수 있는 멘탈을 탑재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혼란스러웠고 외롭고 두려웠지만 정작 객석의 조명이 다시 켜지면 그 자리가 또 다른 무대가 되었고 우리는 또 다시 무대 위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아무 일 없는 듯, 행복하고 자신 만만한 듯 연기를 해야 했습니다. 교수부터 1학년 학생들까지, 우리 모두가 위대한 개츠비가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파티의 군상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 모두는 음악도로서 자기만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게 되었지만 현실과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때대로 이 노래의 가사처럼, 제자리로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몰라 막막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삶이란 게 무엇이며, 세상은 나에게 어떠한 의미이며,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마저 점점 헷갈리게 되었습니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그땐 왜 몰랐을까요? 그 때 우리 영혼이 진정 부르고 싶었던 노래는 이런 가사의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뜻도 다 모르는 괴테와 하이네와 보들레르의 시를 능숙한 발음으로 외워 불러야만 했고 오페라 무대에서는 최대한 서양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과한 음영을 얼굴에 새겨 가며 그들을 흉내 내야만 했습니다. 시가 승화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아니라 언어가 실릴 틈조차 없는 묵직한 소리들이 마치 차력사의 기합소리처럼 섞이며 기묘한 화음이 음대 언덕을 가득 채웠습니다. 경쟁에서 앞선 몇 명과 필요 이상의 권위를 누리며 피라미드의 정점에 좌정한 교수들을 제외하고는 저마다 특별하며 재능 있는 음악도들이 날개를 움츠리며 살다가 상처를 입기도하고 결국 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살아야만 했습니다. 모두가 전쟁터에 있었고, 모두가 무대에 홀로 서 있었으며, 모두가 어두운 객석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정 우리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무엇인지 조차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입학한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의 친구가 이 노래를 마음껏 불러주니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비록 저는 지금 하나님과의 약속을 붙들고 이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친구가 우리가 그 시절 진정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대신 불러 주니 마치 우리 모두의 무대처럼 느껴졌습니다. 밝은 조명 아래 관객들의 박수 또한 비상을 꿈꾸는 세상의 모든 인생에 박수를 쳐 주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상처받는 것 보단 혼자를 택한 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

친구는 그 누구보다 힘들고 오랜 무명 배우의 시절을 견뎌 냈습니다. 배우 하도권은 외모와 달리 참 여리고 착한 친구입니다. 생일이 저하고 20일도 차이가 나지 않지만 빠른 생일이라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를 형이라고 불러줍니다. 착하고 여린 모습을 남에게 잘 드러낸 적은 없었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마다 저는 모른 채 해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통한 신앙이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 친구만큼은 굳이 여린 마음을 들추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맙게도, 자랑스럽게도, 어머니의 기도와, 그 굳은 신앙과, 끝까지 약해지지 않는 마음과, 삶을 향한 그의 열정이 지금의 배우 하도권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 줄 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더 이상 아무 것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 줄 거야
힘겨웠던 방황은
 
배우 하도권, 아니 내 친구 김용구의 비상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과 우리 모두의 비상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을 끝내 믿는다면, 끝까지 약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끝까지 사랑한다면 우리가 겪었던 움츠림과 방황은 또 다른 비상을 향한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긴 이 칼럼이 이제 끝나는 줄 아셨나요? 저도 속았습니다. 친구의 노래가 끝난 줄 알았는데 제게 너무나 익숙한 바리톤 베이스 목소리가 들리고 더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  나옵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이 친구가 끝내 카운터를 날립니다.

‘비상’만으로도 충분하게 느껴질 노래가 ‘Amazing Grace’로 마무리 되는 이유 또한 저는 알고 있습니다. 2년 전 어느 날 밤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한 카페에서 친구는 이제 기독교신앙을 떠나고 싶다고 조심스레 제게 말을 꺼냈습니다. 예수의 길을 외면하고 본질을 잃어버린 한국 교회에 더 이상 실망조차 하고 싶지도 않다는 체념이 가득했습니다. 자신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답답함도 얼핏 보였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마침 친구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한 교회를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의 마음으로 그 교회에 한번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얼마 후 배우 하도권이 아닌 집사 김용구의 이름으로 군포지방 색동교회의 한 가족이 되어 온 가족이 행복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최근 제가 한 일 중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노라고 이제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닙니다.

인과관계로 우리의 삶을 다 대입할 순 없지만 그 후로 점점 비중 있는 배역들이 들어오고 이제는 명품배우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을 느낍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TV속에서의 모습과 실재의 모습이 다르다고 하던데 날것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비록 이름은 배우 하도권이지만 내가 아는 내 친구 김용구 집사의 모습 그대로 활약하는 모습을 모면서 어쩌면 잠시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의 은혜, ‘Amazing Grace’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의 모습 그대로, 언제나 마음껏 비상하며, 또한 언제나 마음껏 침잠할 수 있는, 그리고 나의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고 다른 이의 노래에도 진심으로 박수쳐줄 수 있는, 우리의 일상, 우리들의 진정한 무대 말입니다.

https://youtu.be/eOLWeZ-0dLw

 

 

조진호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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