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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유대인

기사승인 2020.09.20  01:14:34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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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유대인이 있다. 우리가 아는 유대인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유대인이다. 하나의 경우는 억압당한 슬픈 눈빛의 유대인이고, 다른 경우는 억압자의 입장에 선 유다인이다. 전자는 홀로코스트 영화로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으며, 지금도 역사교육에서 생생하게 반복된다. 후자는 중동 현대사에서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의 억압자로 종종 분쟁의 한복판에 등장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유대인은 매우 친숙한 민족이다. 우리의 경우 서양처럼 반유대주의의 열병을 치룬 적도 없고, 직접 유대인과 맞서서 경쟁할 일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성경에서 처음 유대인을 만났고, 허구한 날 유대인 조상과 역사를 줄줄 꿰며 설교를 듣는 일이 자연스럽다. 나 역시 단 한 사람의 유대인 친구도 사귄 적이 없으니 정작 유대인을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두 가지 유대인은 같은 존재인지, 다른 사람인지 딱 부러지게 말하기도 쉽지 않다.

  인류의 많은 유산은 유대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모세를 비롯해 마르크스, 프로이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종교, 이데올로기, 심리학, 과학 등 오늘의 세계를 자신이 기초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나사렛 출신 젊은 예수는 유대인 중에서 이단아와 같았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대인의 우월감에 대해 어떤 편견도, 혐오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유대인과 우호적인 감정으로 공감해 왔다고 말하는 편이 비교적 옳을 것이다. 그만큼 유대 정신의 우산 아래 오래 머물러 온 까닭이다.

  그런 이유로 두 가지 유대인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왔다. 태극기 집회에서 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면서 낯설게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럴 때 연상되는 유대인의 모습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성지순례 세일즈를 위해서 감리교 본부를 찾아온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안내하면서 역사적 시차를 느낀 적도 있다. 성경 속 이스라엘이 비로소 현실 국가 이스라엘로 느껴진 때문이다.

  1995년 처음으로 성지순례를 하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할 때 ‘엘알’(EL AL)항공의 비행기에는 하늘색 다윗의 별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고, 곁에 ‘1995년은 평화로운 여행의 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뜰 때까지 두 대의 장갑차와 함께 여성을 포함한 특수부대원들이 자동연발소총을 든 채 삼엄하게 경비를 섰다. 아주 낯선 풍경은 이스라엘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4시간 만에 도착한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의 입국장에는 전면에 귀향을 주제로 한 대형그림과 함께 예레미야의 예언이 쓰여 있었다.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17). 그때까지 국가 이스라엘은 현재진행형으로 형성 중에 있었다.
 
  최근 ‘아브라함 협정’ 소식이 들린다. 9월 15일 트럼프의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두 아랍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의 정상들이 모여 관계정상화협정 조인식을 한 것이다. 대선을 얼마 앞두고 성사 당사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은 득의만만하였다. 아랍국가와 정상적 관계수립은 1979년 이집트, 1994년에 요르단 왕국에 이어 무려 26년 만의 일이니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이를 반대해 온 팔레스타인을 두고 민감한 신경전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1977년 11월,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이 처음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는데, 그때 베긴 수상은 이런 말로 답변 연설을 하였다. “우리가 외국 사람들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니,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조국에 돌아왔을 뿐입니다. ... 바로 이곳에서 우리의 예언자들이 성스러운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들려옵니다. 옛날 유대나라 임금님들과 이스라엘 임금님들이 이곳을 통치하셨습니다. ... 시온에의 귀환, 이 땅에서 폭력에 의해 쫓겨나 있던 동안에도 우리는 하루도 이 땅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현대 유대인들의 열망을 솔직히 표현한 것이다. 1894년,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테오도르 헤르츨이 시오니즘(Zionism) 운동을 본격화한 이래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몰려와 키브츠 운동을 전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의 건국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구체적인 비전이었으나,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아라파트 의장은 1974년 11월 유엔총회에서 연설하였다. “나는 한 손에 올리브 가지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자유를 위한 전사의 무기를 들고 여기에 왔습니다. 내 손의 올리브 가지를 던져버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에는 전쟁이 벌어졌지만 그곳에서 평화가 소생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시온주의적 식민주의는 반대하지만 유대교 신앙은 존중할 것입니다... .”

  역시 유대인인 곰브리치는 그의 세계사에서 자기 민족을 이렇게 서술한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는데 이제는 다른 민족들이 점점 이 유대민족을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수 천 년을 고립된 채 살아온 이스라엘이 이웃 아랍 국가들과 평화조약을 맺고 외교관계를 넓혀가는 일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우려는 이스라엘의 행보가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수니파 국가들을 편들면서 이슬람의 양대 세력으로 미국과 적대적인 이란을 대표로 한 시아파와 맞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쟁의 한 가운데에서, 분쟁을 부추킨 까닭에 ‘평화’는 사라지고 정략적인 ‘사업과 연대’만 남은 조약이라는 불편한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라이프 오브 시몬’이란 스웨덴 영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나치의 전화에 휩싸였던 당시 스웨덴 가정에 초대 받은 유대인은 돼지고기도 사양하지 않고 먹었다. 놀란 주인이 “당신은 유대인인데 돼지고기를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 유대인은 “전쟁 중이니 하나님도 양해해 주실 거요”라고 넉살스럽게 대답하였다.

  두 가지 유대인 이해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이스라엘은 평화를 찾으려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위험한 전선을 확대하는 중이다. 그리고 고통 받았던 유대인들은 또 누군가에게 억압자로 군림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유대인 랍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켜 ‘샬롬’이라고 불렀다. 분명한 것은 평화가 결코 두 가지 일 리 없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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