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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설교 하지 마라!” 미가2장 6절~13절

기사승인 2020.09.21  00:36:45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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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설교 하지 마라!” 미가2장 6절~13절

 

1. 예언하지 말라

 

① (6절)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어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 도다”

▶ 미가서는 예언자 미가가 행한 세 편의 설교다. 밭들과 집들에 대한 탐심을 책망하는 미가의 예언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다. ‘너희는’ 동 시대의 예언자 4인방 이사야, 호세아, 아모스, 미가를 적시한다. ‘예언하지 말라 예언할 것이 아니어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한마디로 부동산 투기는 예언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나님이 관여할 바가 아니기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예언은 성전에서 제사지내는 일에만 해당될 뿐 일상의 삶은 예언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겼다.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에 국한 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 곧 삶의 전 영역에 해당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만 보시지 않고 우리의 삶을 감찰하신다. 신앙의 목적은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는, 믿음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신앙의 생활화’다.

 

② (7절) “너희 야곱의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신이 편급하시다 하겠느냐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나의 말이 행위 정직한 자에게 유익되지 아니하냐”

▶ ‘너희 야곱의 족속아’ 미가는 ‘청중들을 향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정체성을 상기시킨다. ‘여호와의 신이 편급하시다 하겠느냐’ 편급은 한쪽으로 치우치고 성급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인자가 한이 없으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공의롭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탓하는 적반하장의 완악함을 고발한다. 예언자의 책망에 귀 기울여 자신을 성찰하기보다 타인을 넘어 하나님까지 비난하는 완고함이다. ‘나의 말이 행위 정직한 자에게 유익되지 아니하냐’ 책망의 목적은 비난(저주, 죽음, 멸망)이 아니라 유익(축복, 생명, 지속)에 있다. 책망은 귀로 듣기에는 불편하지만 중심으로 받아들이면(영접, 수용)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책망을 잘 받아들이면 삶의 유익이 된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책망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다.

▶ (메시지성경) “그런 설교하지 마라. 우리에게 그런 나쁜 일이 일어날 리 없다. 어떻게 야곱 가문에게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하나님이 화를 터뜨리신다니? 그분이 그러실 분이냐?” 오늘날의 청중들도 부동산 투기 같은 듣기 거북한 소리를 싫어한다. 축복과 번영, 성공과 건강에 관한 설교 듣기를 좋아한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징계)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핵심은 ‘모든 성경’이다. 모든 성경에는 책망과 징계도 포함된다. 쉽고 편한 말씀만 편식하는 요절신앙을 극복해야 된다. 어렵고 불편한 강해주석을 병행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의 문제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징계)’가 사라지고 ‘젖먹이 신앙(고전3:1)’에 안주하는 데 있다. 그 결과 성도들이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하고 교회가 온전한 일을 감당치 못한다.

 

 

2. 난민배척, 여성차별, 아동학대의 죄악

 

① (8절~9절) “근래에 내 백성이 대적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 중 겉옷을 벗기며 내 백성의 부녀들을 너희가 그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영히 빼앗는 도다”

▶ 부동산 투기에 이은 또 하나의 구체적인 죄악을 폭로한다. ‘근래에 내 백성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한 삶을 가리킨다. 도움이 필요한 피난민(난민)의 외투를 갈취하고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유린하는 죄악을 저질렀다. 대한민국은 직장 내 여성 차별 최고, OECD 유리천장 지수 꼴찌다. 아동학대는 안타깝고 슬픈 자화상이다. ‘고아와 과부, 나그네’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삶이 기반을 잃어버린 사회적인 약자를 통칭한다. 그들을 선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고 그들을 박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는 일임을 증거한다. (잠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한 관계다. (마25:45)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② (10절) “이것이 너희의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찌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 (메시지성경) ‘여기서 나가라, 너희 떼거리여, 여기는 너희 있을 곳이 아니다! 너희는 이곳을 오염시켰고, 이제 너희가 오염되었다. 몰락했다!’ 택하신 선민을 예루살렘성전에서 쫓아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백성을 약속의 땅에서 내어 쫓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본래적인 사명을 잃어버리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선용하라고 맡긴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둔 청지기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이와 달리 주님이 맡긴 사명을 잘 감당했던 신실한 청지기의 또 다른 운명을 전한다. (마25:23)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마지막 날 심판의 기준은 위대한 사명을 맡았느냐가 아니라 보잘것없이 작은 일이지만 위임받은 ‘청지기의 사명’로서의 사명을 잘 완수했는지에 대해 물으신다.

 

③ (11절) “사람이 만일 허망히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

▶ (메시지성경) ‘너희는, 미소 띤 얼굴과 기름칠한 혀를 가진 자가 나타나서, 아침부터 밤까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 더 많은 돈과 최고의 포도주를 하나님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법을 설교해 주겠다고 하면, 너희는 그 자리에서 그를 설교자로 고용한다!’ 포도주는 즐거움을, 독주는 쾌락을 가리키는 은유다. 한마디로 듣기 좋은, 듣고 싶은 예언을 해주는 거짓선지자의 행태다. 남 유다가 멸망한 진짜 이유는 참된 예언자를 배척 당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자신에게 더 유익한지 분별력이 없었다. 본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아니라 내 멋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령을 좇아 말씀대로가 아니라 탐심을 좇아 욕심대로 사는 것이 죄다.

 

 

3.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

 

① (12절)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앙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 남 유다가 범한 죄악의 실체는 ‘땅과 이웃’, 곧 ‘부동산과 사회적인 약자’에게 행한 죄다. 그 죄로 인한 결과가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성전의 파괴, 남 유다의 멸망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에 있었다.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이다. (마25:1~33)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드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 편에, 염소는 그 왼편에 두리라’ 그날에 두 부류로 구분하신다. 첫 번째 부류는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땅과 이웃’에게 죄악을 저지른 염소 같은 무리들이다.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보스라는 모압의 대표적인 성읍인데 하나님을 거역한 모압의 교만을 은유적으로 가리킨다. (렘48:24, 29) ‘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에로다 모압의 뿔이 찍혔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 자고와 오만과 자긍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두 번째 부류는 ‘정녕히 이스라엘에 남은 자를 모으고’ 극심한 심판 중에도 다니엘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그루터기 같이 남겨 두신다. 남은 자들을 통해서 무너진 나라와 무너진 성전을 다시 회복시키신다.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극심한 환란 중에서 ‘남은 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출해내신다. 재난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재난 중에도 자신의 백성을 하나도 남김없이 지켜내신다.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인지 모래위에 지은 집인지 판가름하는 시금석이다.

② (13절)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

▶ 구원과 회복의 역사적인 장면을 기록한다. ‘길을 여는 자’는 예언자들을 가리킨다. 세례요한처럼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스룹바벨은 총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했다. ‘스룹바벨’은 ‘바벨론 출생’이란 뜻인데 유다 왕 여호야긴의 손자로 유다 왕위 계승자였다(대상 3:17~19). 왕족으로 포로귀환과 성전재건을 이끈 스룹바벨은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메시아, 왕)를 예표 한다.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 심판과 멸망이 끝이 아니라 마침내 구원과 회복을 이루신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친히 앞장서서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을 통해 절망이지만 끝이 아니다. 재난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 마침내 남은 자들을 통해서 온 세상과 교회를 새롭게 회복시키길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와 재난 자체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은 과연 ‘반석 위에 지은 집’인지 ‘모래 위에 지은 집’인지,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나 자신을 성찰하고 돌이켜 회개하는 지혜가 요구될 뿐이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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