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가을 채비

기사승인 2020.09.23  22:35:44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는가! 음력은 아직 8월 초순인데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기온은 10월 늦가을과 같은 차가운 기운이다. 어느새 방바닥은 두터운 매트를 필요로 한다. 밤마다 걷어차던 이불은 온몸을 감싸줘야 잠이 올 정도다. 내가 느끼는 계절의 변화가 이런데 한데서 거하는 객들은 어떠하겠는가. 물론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나보다 먼저 기온의 변화를 감지하는 생명체이지만, 그래도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올해도 따뜻한 보금자리를 하나 둘씩 만들어 채어가고 있다. 커다란 박스 두 개를 위아래로 합쳐 흐트러지지 않게 테이프로 봉한 뒤 들어갈 만큼의 문을 만들어 놓으면, 천성이 박스를 좋아하는 동물들이라 박스가 놓이는 동시에 폴짝 뛰어 들어간다. 그러면 그 뒤를 이어 크고 작은 녀석들이 하나둘씩 들어가 서보고, 앉아보고, 누워보며 모델하우스 탐색을 한다. 그러다 마음에 들면 바로 계약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폴짝 뛰어나와 옛 집으로 들어간다. 냥이들의 가을 채비는 이런식으로 준비하면 된다.

충견 한라의 가을 채비는 있는 집을 조금 더 보강만 해주면 된다. 허술해진 바람막이를 단단히 묶어주든가, 차가운 바닥에 안쓰는 이불을 깔아주던가 하면 끝이다. 몸집이 큰 동물은 오히려 편하다. 사람도 그렇겠지만 동물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제 몸 건사하는 것은 제법 한다. 한라는 자신만의 단열 공간이 있는데 그것은 땅을 파서 그곳에 들어가 최대한 웅크리고 잠을 청하면 웬만한 추위도 거뜬히 견뎌내는 습성이 있다. 처음에는 그 습성을 몰라서 땅을 헤집을 때마다 엄청 혼을 냈는데 시일이 지나 개들의 습성을 알고 난 뒤부터는 그의 습성을 최대한 존중해준다. 우리 옛 조상들이 땅을 파서 김장독을 묻고, 배추와 무를 묻어 겨울을 났던 것처럼 한라의 DNA도 야생에서 살았던 습성이자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몇 몇 동물들의 사계절 나는 모습을 살펴보면 누구에게나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도록 만들어지고 길들여짐을 확연히 알게 된다. 나의 정성이 가끔은 지나친 오지랖이 되기도 한다.

나도 이제 조금씩 가을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8월의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무너졌던 저온창고와 훈련원 공동체의 집 마당과 내가 쓰는 밭의 비탈은 그 곁을 지날 때마다 손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내내 걱정이었는데, 이후 논현교회와 감리회 미래포럼, 그리고 충북연회에서 수해복구지원으로 귀한 후원금을 보내주어 공사를 해야 할 곳과 이참에 그간 못했던 부분까지 손을 대어 공사가 잘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흐뭇해지면서 감사의 마음을 새긴다. 추석이 지나면 그곳에 뿌리 깊은 나무들을 심어 내년의 비를 대비하려고 한다. 심을 나무는 목련과 벚꽃이다. 아마 삼년 정도 지나면 하얀 목련과 벚꽃을 보며 따뜻한 사월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속에 새겨진 아름다운 마음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선선하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그간 창고에 묵혀 두었던 깨를 꺼내어 말렸다. 한나절 볕을 쬐고 나니 눅눅했던 깨가 바짝 말려졌다. 깨채로 다시 한번 털어낸 뒤 물로 씻어냈다. 두어번 헹구고 나서 넓은 채반에 쏟아 말렸다. 깨 향이 은은하게 코끝을 간지럽힌다. 기분좋은 냄새다. 처음 농사를 시작하여 얻은 참깨와 들깨를 씻을 때였다. 참깨나 들깨나 모두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검불들을 정리하고 깨를 씻으려고 물에 쏟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니 참깨는 밑으로 주욱 가라앉았다. 반면 들깨는 모두 고무다라 표면에 올라왔다. 작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던 때여서 가라앉은 참깨와 들깨를 잘 건져 소쿠리에 담았다. 참깨는 제법 많이 건진 반면 들깨는 건진 것보다 뜬 것이 더 많았다. 수확은 많이 했는데 건진 것이 별로 없는 들깨를 보며 들깨 농사가 참 힘들다고 여겼다. 다음부터 들깨는 짓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중에 농사의 전문가인 교우들과 참깨, 들깨에 대한 나의 경험을 얘기하니 모두가 깔깔거리며 웃으셨다. 알고보니 참깨는 물에 쏟으면 가라앉는 성질이고, 들깨는 뜨는 성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셨다. 농사 중 가장 심고 거두기 쉬운 작물이 들깨라는 것이다. 아, 그것도 모르고 들깨를 책망했으니 이런 때는 정말 아는 것이 힘이었다. 아까운 들깨를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이미 닭들의 뱃속으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깨를 정리할 때마다 생각나는 추억이다.

고구마를 캘 때다. 지난 5월 초순에 정성스럽게 심었던 고구마는 긴 장마 속에 썩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비록 예년에 비해서 자람 속도가 늦기는 했어도 추석을 맞기 전 한고랑 심은 고구마를 캘 예정이다. 어제 이웃집 꼬마가 자신이 심고 키우고 거둔 고구마가 엄청 맛있다고 자랑했다. 내게도 몇 알 주었는데 그 저녁에 삶아 먹으니 정말 달았다. 아이의 자랑이 허풍이 아니었다. 코로나로 옴싹달싹 못하는 때에 이웃의 두 아이를 보면 그 아이들은 참 복받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집안에 갇혀(?) 지내는 꼴인데 그에 비해 농촌 그것도 흙을 밟을 수 있는 지역에 사는 두 아이의 생활은 얼굴에 건강함이 묻어난다. 지난 주일에는 아빠와 같이 밤 따러 산에 올랐다는 얘기도 했다. 얘기를 할 때마다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과 행복함이 느껴진다.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음이 보기 좋았다.

내 밭의 고구마도 이웃집 아이네처럼 달았으면 좋겠다. 설령 그렇지 못하다해도 나도 어서 캐어서 일주일 정도 묵힌 뒤 –고구마는 캐고 나서 일주일 후숙한 뒤 먹어야 제 맛이다- 이웃과 나누고 먹어야겠다. 그리고 10월 중순이 되면 먹을만큼 심은 서리태도 거두고, 누렇게 익어가는 쌀도 수확하고 나면 올해의 봄 농사는 끝이다. 나는 심지 않지만 마늘과 양파를 심고 나면 가을 농사도 마치는 셈이다. 그리고 가을 채비도 끝이다. 10월 말이면 그야말로 겨울로 가는 마차를 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 더 추워지기 전, 가을 채비를 잘 마쳐야겠다. 진정한 바램이다.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