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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끝낼까 해》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2020)

기사승인 2020.10.13  00:17:32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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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이제 그만 끝낼까 해》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2020)

 

“나는 내게 일어난 사건의 총합이 아니라 내가 내린 결정의 총합이다.” 우연히 마주친 이 인상적인 글은 이 말이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의 말이라고 출처를 밝히고 있었다. 그러니까 융의 말대로라면 나는 우연히 내게 일어난 모든 사건들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내가 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의식적으로 내린 결정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 셈이다. 이런 종류의 생각을 촉발시키는 좋은 말이나 글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인용의 정확성을 확인해보는 습관이 있다. 직업적인 결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말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야 할 경우라면 가능한 한 오류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찾은 원 글은 영문으로 다음과 같았다. “I am not what has happened to me, I am what I choose to become.” 거칠게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일어난 것이 내가 아니라, 내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나다.” 융의 말처럼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 지나쳐온 시간들이 쌓여 내가 된 것이 아닐 것이다. 지금 현재의 나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내가 내려온 모든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로 만들어진 것이리라.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애버리는 이 결론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인생은 분명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모든 선택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인생에는 성공하지 못한 선택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결정에 대한 미련 역시 피할 도리가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노래했던 어느 시인의 탄식처럼, 선택하지 않았거나 선택하지 못했던 결정은 삶에 더욱 짙은 미련과 회한의 그림자를 남기는 법이다. 인생이 깊어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잘못된 선택은 시간에 비례하여 쌓여만 가고, 이때 생겨나는 후회와 미련은 점점 더 마음속 깊은 지하실 비밀의 방에 켜켜이 쌓이게 된다. 오늘의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마침내는 삶을 무너뜨리는 이 마음속 비밀 방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혼동과 당혹의 연속이었다. 영화는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이며 어떻게 진행될 것이고 어떤 결론이 날 것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이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것도 몰랐고, 그 어떤 줄거리나 예고편도 보지 않은 채 영화를 감상했던 나는 감정이입의 대상부터 실패했었다. 즉, 주인공을 여자로 잘못 알고 내내 영화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함께 영화를 본 아내는 나와는 다르게 영화의 정체를 빠르게 파악했다. 그리하여 아내는 지금까지 이 영화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영화는 시시한 삶의 끝이 가져다주는 실존적인 공포를 눈앞에 들이민다. 결국 모든 인간의 삶은 시시하게 끝나지 않는가, 거창한 야심도 엄청난 재능도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서는 별것 아닌 한 줌 먼지로 남아버리지 않는가, 더 이상 극적인 변화와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오십을 넘어선 나이에 이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아내가 영화를 통하여 자신의 삶 안에서 보았던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공포였다.

놀랍게도 영화의 장르는 공포영화로도 분류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공포영화들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그 어떤 장치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영화는 과연 공포영화가 맞았다. 시시한 삶이 의미하는, 전혀 다른 의미의 공포. 문득, 이 영화는 전도서의 전도자가 처음으로 꺼냈던 말의 2시간 14분짜리 드라마버전이라고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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