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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님

기사승인 2020.10.18  13:03:25

박평일 BPARK7@COX.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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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퀘이커가 되었는가

십자가도 거짓말이더라

아미타불도 빈말이더라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도

공허한 말뿐이더라.

내가 장발장이 되어보고자

기를 바득바득 쓰건만

나타나는 건 미리엘이 아니고

자벨 뿐인 듯이 보이더라

무너진 내 탑은 이제

아까운 생각이 없건만

언덕 높이 우뚝 서있는

돌탑들이 저물어가는

햇빛을 가리워

무서운 생각만 든다.

-함석헌-

이 시는 함석헌 선생님의 시라기보다는  신앙고백자,

인생고백이다. 

함석헌 선생님이 한 여성 제자와의 로맨스관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온 세상으로부터 쏟아지는 미투의 돌팔매를

이기지 못하고  그가 평생 섬기던 장로교를 떠나

퀘이커 교도로 개종하면서 남겼던 짦은 글이다.

나는  이 시를 15(?)여년 전 부활절 새벽에 접했다.

그 감동이 어찌나 컷던지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워 읽어주었을

정도였다. 어떻게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을 것이다. 나는 그 후 시(?)를  내 가슴 깊숙히 숨겨두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은밀하게 꺼내서 읽곤 한다.

함석헌 선생님은 일생 동안 수 많은 시를 쓰셨다. 그가

쓴 시들을 제자들이 모아 '수평선은 너머' 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대충 일벌해 보았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함석헌 선생님은 위대한 사상가이지 뛰어난 시인은 결코 아니었다.몇 편의 시를 제외하곤 ....

참, 제목도 없는 이 시는 그이 시집 '수평선을 너머' 에 실리지 않았다

.

그는 대표적인 저서인  '뜻으로 본 한국역사'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나의 신을 향한 신앙이고, 두번째는 역사의식이며,

세번째는 과학에 대한 신뢰다."  참으로 세계적 지성다운

가치관이고 신념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이해하고 있는 한, 위대한 시인이 되려면

이 세가지도 모두 버려야한다. 참다운 시는 아무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없는 텅빈 가슴 속에서만 흘러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함석헌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시인으로써 한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학창시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단연코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바보새

함석헌 선생님을 꼽고 싶다.

도산이야 책들을 통해서 접했었지만  한석헌 선생님은 직접 만나

뵈올 수 있는 행운이 나에게 주어졌다.

서대문 봉원동 퀘이커 모임에도 여러 차례 참석했었고,

명동에 있는 흥사단 대성빌딩, 잰슨회관에 있었던 장자, 노자,

카바와드 끼타 등 강의에도 여러차례 참석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해 아주 추웠던 신년 일월 일일

원효로 4가에 있는 함 선생님 집으로 새배를 갔던 기억이다.

방 안이 마치 냉장고 안처럼 차가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아직도 좋아하는 영국의 지성 간디, 시인 타골, 칼릴 지브란,

쉘리, 예이츠, 위트만.... 등 시인들도  함석헌 선생님 입을 통해서

소개 받았었다.

내가 지금 퀘이커 모임에 나가고 있는 것도 함석헌 선생님의

영향 탓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 선생님은 수많은 자칭 도덕군자들, 종교인들로부터

여자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 '위선자' 라는 돌팔매질을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나의 입장은 그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그 분의 로멘스 스토리 때문에 나는 인간 함석헌을

인간적으로 더 존경하고 있다.

영국의 도덕군자 버나드 러셀은 기독교 중심 교리인 "원죄론" 를

정면 부인했던 사람이다.  그는 당당하게 이렇게 주장했다.

"내가 평생 기독교 교리에 반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을

모두 모아 영국 실정법에 따라 계산해보면 고작 3년 반 정도

감옥형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예수가 말한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합하면 4년 반 정도..."

나는 레셀같은 도덕군자가 아니다. 그런 도덕군자가 되어보겠다고

노력해 본 적도 없다. 솔직히 나도 기독교의 원죄론을 믿지는

않지만  렛셀과는 달리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 마음 속으로 지은 죄들을 모두 합하면 어림잡아 수 천, 수 만 겁을 감옥 속에서 보내도 부족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예수는 공생을 시작하기 하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며 기도하던 중에 '돈에 대한 유혹', '권력에 대한 유혹',

'기적에 대한 유혹' , 세가지 유혹을 사탄으로부터 받으시고

성공적으로 극복을 하셨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인간들의 가장 큰

근본성인 '성적 욕망' 에 대한 유혹은 받지시지 않으셨다.

이를 두고 분부한 다른 해석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추측은 이렇다.

구약에 나오는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 중에 미투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인은 내가 알고 있는 한 단 한명도 없었다.

성에 대한 욕구는 동물인 인간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성행위만 해도 각종 기교와 방법들을 총

동원해서 동물들보다 훨씬 더 추잡하게 한다. 동물로써 인간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진실하고 아름답다. 이런 사실을 인간 예수는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대신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려고

모여든 위선자들을 향해 " 죄가 없는 놈들이 먼저 나와

돌을 던져라. 이 세상에 죄인이 아닌 선한 존재는 하느님밖에

없다. 천하의 위선자들아!  따지고보면 니네들이 마음 속으로

지은 죄도 모두 죄다" 라고 꾸짖으셨다.

2천년 전 유태인인들을 그래도 양심은 조금 가지고 있었다.

그 말에 슬그머니 뒤걸음을 치며 현장에서 사라져버렸으니까.

오늘날 같은 미투 시대에는 간음한 여인뿐 아니라

그 말을 했던 예수까지 돌무덤에 덮혔을 것이다..

나는 미국에 살아가면서 수많은 신앙인들, 종교 지도자들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자주 있다. 신교, 케토릭, 불교, 힌두교,

모슬람, 유태교, 씨잇, 무신론자.....등.

내가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서 깨달은 사실은  종교가 다른다는

것은 일요일에 어느 종교사원에 나가느냐가 다를뿐 그들의

실제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종교간 차이도 없다.

일요일 날 신교들은 교회에 , 케토릭 신도들은 성당에,

불교도들은 절에, 힌두교도들은 만드리, 모스람 신도들을 모스크,

유태교들은 시나그 ... 등에 나간다.

그러나 돈과 권력, 명예, 쎅스에 대한 욕망에는 별  차이가 없었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자기 이익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면

한 순간에  천사가 악마로 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인간들을 평가할 때,  그들의 말, 생각, 글,

지식, 철학, 이념, 신앙, 학력, 학위, 지위, 직업, 가정배경, 부,

도덕성, 그들이 꾸고 있는 바램에나 꿈... 등으로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금 나에게 풍기는 향기, 냄새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또, 목마른 나에게 물 한 컵을 대접하고, 배고픈 나에게

빵 한 쪼각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나에게는 의인이고

천사들이다.

내가 젊은 시절에  맡았던 함석헌 선생님의 향기는

강렬하고 아주 인간적이었다.

 

10월 11일 아침 함석헌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버지니아 숲 속에서

박평일

박평일 BPARK7@COX.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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