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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베기

기사승인 2020.10.22  10:57:15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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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밭의 작물은 90일이 되면 열매를 맺는다. 3월 중하순의 감자는 6월 하지를 전후로 캐어 먹는다. 4월에 심은 대부분의 먹거리는 6월부터 부지런히 먹을 수 있다. 고구마도 추석 전후로 하여 겨우내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구황작물이다. 들깨와 콩도 6월 하순을 넘지 않으면 이맘때,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하순에 벤 뒤 가을볕에 잘 말려 털어내면 들깨는 고소한 기름이나 거피를 내어 각종 나물과 국에 넣어 먹을 수 있고, 콩은 메주를 쑤거나 밥에 넣어 먹으면 된다. 검은 서리태는 이름답게 서리를 맞아도 거뜬할 정도여서 대략 11월까지 밭에 놓아두기도 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작물들은 심은 뒤 석달 뒤 바지런만 떨고, 판매 목적이 아니라면 자급자족으로 충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감사한 일이다.

대부분 90일의 알찬 시간 속에 맺어지는 작물들과 달리 벼는 4월 초 볍씨 소독부터 파종을 한 뒤 5월 중하순에 모내기를 마치고, 중간에 몇 가지 손이 가면 10월까지 무난하다고 볼 수 있다. 올해는 우여곡절이 좀 있었다. 그것은 비가 와도 너무 왔다는 것이다. 가뭄에 물을 대느라 고생하지 않는 안도가 있었지만 50일 이상 여름 내내 내린 비는 벼가 수정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그래서 추석 이후까지 시퍼런 벼이삭과 잎사귀를 보면서 속이 조금 끓여지는 부분도 있었다. 게다가 너무 많이 내린 비로 예초 작업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우렁이가 대부분 물에 쓸려내려가 논에 피가 가득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기도 했다. 보통 모를 심고 한 달 정도 되어 피를 뽑는 경우가 있는 것은 봤는데, 이번처럼 성인 남자의 키만큼 훌쩍 자란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논의 가장자리에 있으면 뽑기 편했을텐데, 왜 대부분의 잡초들은 사람의 손과 발이 닿지 않는 곳에 서식하여 곤혹을 치르게 하는지 모르겠다.

눈에 가시처럼 보이는 피를 없애기 위해 9월 초 어느 날, 이틀 정도 꼬박 허리를 굽혀 낫으로 일일이 피 베는 수고를 했다. 신기한 것은 늦장마에 벼가 쓰러지는 경우는 피가 벼 곁에 기생하고 있을 때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벼 자체로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벼는 무겁고, 피는 가볍기 때문에 가벼운 피가 무거운 벼에 기대면서 비와 바람에 쏠려 넘어지는 것이란다. 그래서 피의 밑둥까지 싹둑 잘라내는 수고를 더했다. 그런 수고와 인내가 더하여 얻어지는 양식인데, 수확철이 다가와도 여전히 푸르댕댕한 모습을 보여주는 벼는 농부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논에 두면 벼이삭이 무거워 저절로 떨어지기 때문에 마음은 심란해도 수확은 해야 한다. 뭐든지 때가 되면 낫을 대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작년이 그랬다. 6월 6일에 심었던 벼가 10월이 되어도 여문 느낌이 안들어 10월 하순에 수확을 했는데 낟알이 거의 3분의 1 정도가 논에 떨어져 같이 농사짓는 공동체 식구들에게 분배된 양은 겨우 세 자루 밖에 되지 않았다. 이때도 속이 많이 상했다. 우리가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헛고생이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 시행착오 덕에 올해는 일찌감치 단도리를 했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에게 또다른 시련으로 다가왔다. 농사짓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닫게 하였다. 이것도 비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본래 벼를 베려면 논의 물을 빼서 어느 정도 말려놔야 한다. 하지만 이번 논은 물은 쉬이 빠지지 않았다. 물이 채워진 논에 콤바인이 들어갔는데 입구부터 막혔다. 곤죽이 된 논바닥이 콤바인 운전을 방해했다. 엔진 소리만 요란했지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콤바인 바퀴가 마치 뻘에 빠진 것처럼 계속 헛돌았다. 급기야는 엔진 쪽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콤바인이 앞으로 나가고 후진을 할 수 있도록 콤바인 근처의 벼를 베야만 했다. 부지런히 벼를 벴다. 이것만 베면 괜찮아지려니 하면서. 그런데 웬걸? 겨우 겨우 논밖으로 나온 콤바인을 보면서 처음 시작한 논은 콤바인으로 수확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장님 왈, 교회 식구들과 날을 잡아서 베라는 것이다. 한마지기 반 정도의 면적, 거의 300평이 되는 논이다.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 많은 것을 무슨 수로 벨 수 있단 말인가.

처음 논은 안되니 다른 논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곳은 아무일 없이 수확이 됐다. 두마지기 반 정도였는데 시간 안에 마쳤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오전에 시작하여 점심시간 전에 마치고, 점심을 맛있게 먹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역시 인생은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음이여! 그러나 어쩌랴! 넋놓고 한탄만 할 수 없으니 정신을 가다듬고 계획을 수정하는 수밖에 없다. 우선 점심을 먹었다. 년초 동네에 중국집이 생겨 읍내까지 나가지 않아도 되니 이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탕수육 한 접시에 짜장면과 짬뽕으로 시름을 날려보냈다. 뭐든 배가 불러야 힘이 나는 법이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서 다시 낫을 들고 벼베기에 돌입했다. 8년 차의 논농사이지만 벼를 직접 베어보다니, 타작기계만 있다면 김홍도의 타작 그림이 나올 법도 하다.

시간을 정했다. 무작정 하면 지루해서 중간에 포기할 것 같아 요이땅을 했다. 2시부터 5시까지로 했다. 나와 전도사님, 소속교회 목사님과 집사님 모두 넷이며 여자 둘과 남자 둘이었다. 처음에는 가장자리부터, 물이 덜 빠지는 곳부터 시작했다. 쉬(물이 깊은 곳)가 있는 곳은 집사님이 너른 판자를 가지고 와서 그 위에서 벼를 벴다. 해도해도 끝이 보이지 않아보였다. 1시간 정도 지나니 입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허리도 끊어질 듯 했다. 손목도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아, 인해전술이 필요한 때였다. 이앙기와 콤바인이 생기기 전, 품앗이로 논농사를 했었을 우리 선조들의 수고와 지혜와 고생이 저절로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작전 타임을 가졌다. 차 한 잔 마시면서 남은 시간을 쟀다. 1시간 정도다. 이 안에 끝내기로 합의했다. 그렇지 않으면 즐거운 토요일을 반납해야 하니까 말이다. 1시간 동안 정말 미친 듯이 속도를 냈다. 300평 가득했던 누런 벼들이 찰랑찰랑 물만 보이는 논으로 변하고 있었다. 희열이 느껴졌다. 마지막 벼이삭이 베어지는 순간, 우리는 모두 환호를 질렀다. 야호! 끝났다.

학교 다닐 때 귀에 딱지가 않을 정도로 들은 소리가 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그런데 공부만이 아니다. 농사에는 왕도가 없음을 깨달았다. 수고와 노력과 인내없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은 공부만이 아니라 농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농사는 사람의 수고와 노력과 인내에 하늘의 도움 없이는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는 깊은 깨달음이다. 벼는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숙이는데, 그 겸손한 마음을 올해도 어김없이 작물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 속에 다시 깨닫는다. 가을의 깊이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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