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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설교

기사승인 2020.10.23  15:05:41

신성남 sungnam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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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약으로 위장된 항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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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어느 더운 날 세기의 전도자라던 빌리그레함 목사가 여의도에서 소위 100만 군중 전도집회를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의 설교를 직접 듣고 싶어서 거기에 참석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그의 설교에서 아무런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새로운 가르침이나 심오한 신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교회 고등부 학생들조차 잘 알고 있던 아주 쉬운 내용이었다. 그는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거듭 강변했다.


본문 나열식 설교

어린 마음에 나는 매우 실망이 컸다. 이거 들으려고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 바닥에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그건 단순한 본문 나열의 반복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매주 듣던 우리 교회 전도사님의 설교가 훨씬 더 좋았다.  

나는 빌리그레함의 설교를 폄훼하려는 게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새신자나 비신자를 모아 놓고 그가 무슨 다른 설교를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당시 빌리그레함의 간결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충분히 지지한다.

다만 그 이후로 늘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왜 그 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새로운 내용도 없었고, 뛰어난 언변도 없었고, 재미있는 유머도 없었고, 그리고 놀라운 이적도 없었다. 아마 상당수는 전국의 교회들에서 동원을 했고 나머지는 유명 목사란 이름에 의해 모였을 것이다.

사실 요즘도 유명 목사들을 따라서 몰려다니는 철새 신도들을 자주 본다. 온라인에서도 유명 목사들의 설교 조회수가 아주 압도적이다.

그래서 여러 대형 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수 년 동안 차분히 분석해보았다. 하지만 분석이라고 할 만한 건덕지도 별로 없었다.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거의 다 빤한 형식과 내용의 설교였다. 제목만 봐도 그 나머지 내용이 빤했고 불행히도 그게 대부분 적중했다.


제목만 봐도 빤한 설교

서당개보다 나은 웬만한 중견 교인이라면 그 정도 설교는 신학을 전공 안 해도 다 할 수 있다. 목사 안수를 사칭한 강남 어느 대형교회 목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신학을 겉핥기로 마친 6개월짜리 속성 목사들도 설교만은 그런대로 청산유수다.

성경 구절을 하나 골라 놓고, 누구나 아는 내용을 간략히 다시 설명하고, 적당한 예화로 기름칠을 좀 하고, 혹시 주석이나 설교집에 멋진 말이 좀 있으면 얻어다가 살 좀 붙이고, 그리고 결론은 거의 같다. "복 받아라, 사랑하자, 헌신하자, 나누자, 충성하자, 아니면 돈 바쳐라!" 대부분 듣기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항상 이런 식이다.

이래도 어째 예배 분위기가 다소 뻘쭘하다고 생각되면 부족한 설교 약발을 뜨거운 찬양으로 메꾼다. 순진한 청년들을 강단에 동원하여 소위 은혜롭다는(?) 찬양으로 몇 바퀴 돌린다. 그래서 손바닥이 어느 정도 따끈따끈해지면 모두들 은혜 많이 받았다고 좋아하며 예배당 문을 나선다. 이게 주마다 반복된다.       

도대체 무슨 은혜를 그리 받았는지는 자기 자신도 잘 모른다. 수 십년 동안 그렇게 교회당을 열심히 왕복해도 인간은 그리 쉽게 잘 안 변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 예전 우리 교회 고등부의 두 분 전도사님보다 더 뛰어난 설교를 그다지 많이 못 보았다. 웬만한 신학교 교수들의 설교나 유명 목사들의 설교나 결국 다 거기서 거기였다. 하물며 웃기는 짜장의 막장 설교는 아예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건 거의 잡배 수준이다.

나는 설교 무용론자는 아니다. 설교의 부작용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바른 설교는 교회에 매우 유익하다고 믿고 있다. 다만 설교에 너무 기대지 말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설교는 시간 낭비가 많다. 성경 한 구절 읽어 놓고 빤한 잡설을 듣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성경을 직접 몇 장 읽는 게 더 좋을 때가 많다. 


거품 설교는 종교적 항생제

요즘 대다수 설교를 신학자 또는 언어학 전문가들에게 분석을 의뢰한다면 아마 가관일 거다. 그저 진부한 본문 나열과 빈약한 논리 전개와 당연한 결론과 용감무식한 반복이 난무한다. 왕년에 젊은이들의 우상이던 전아무개 목사가 그 좋은 예다.

한 시간 내내 "하나님께 모두 맡기십시요!"만 애절하게 반복한다. 이거 동네 교회학교 중학생들도 다 아는 말인데 그 구체적인 방법은 설교자 자신도 잘 모르고 자기도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마냥 공허하게 외친다. 정말 하나님께 모두 맡긴 자가 자기 교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할 리는 없는 것이다.

소위 고등교육까지 받았다면서 그 시간에 거기 앉아 아멘을 연발하는 신도들이 더 불쌍하다. 그냥 자기 집 안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곱게 살면 되지 뭐하러 먼 예배당까지 가서 그 지루하고 당연한 말을 명설교라고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어떤 설교로 큰 은혜를 받겠다는 그 의욕부터 다소 위험하다. 은혜는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지 인간의 말씀이 주는 게 아니다. 인간의 언변이나 재간이 주는 감동은 은혜로 위장된 종교적 거품이다.

이제 더 이상 거품 설교에 속지 말자. 설교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도구다. 설교 자체는 하나님말씀이 아니고 인간의 말이다. 거기엔 항상 인간의 논리와 인간의 해석과 그리고 인간의 오류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씀'을 구별할 역량이 부족한 사람에겐 영약인 줄 알고 듣는 설교가 오히려 독약이 될 수도 있다. 또는 강력한 항생제나 강장제처럼 장기 복용을 할수록 그 부작용이 더 커진다. 이게 오늘날 맹신교회와 맹신도가 증가하는 슬픈 이유다.

성경을 읽고 싶게 만드는 설교는 좋은 설교이지만 설교만 의존하게 만드는 설교는 나쁜 설교다.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신성남 sungnam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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