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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마세요

기사승인 2020.10.23  23:13:47

조진호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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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미국 예일대 출신 성악천재가 나타났다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최근 트로트로 전향한 한 젊은 테너도 성악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하여 관심 있게 찾아보았습니다. 그들이 노래한 영상을 여러 편 본 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본인들 입장에서는 참 민망하겠다...’

그 성악가들의 실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다만, 요즘 같이 시청률 경쟁이 심한 시대에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그런 표현을 썼을 것이라 이해하지만, 한때 그들과 같은 성악가의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런 부담스런 평가를 받은 젊은 테너들의 오그라드는 마음을 제 맘처럼 느꼈을 뿐입니다.

서양 클래식 성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위대한 성악가들이 있었으며 벨칸토 스승들의 발성법들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한 채 사라져 가고 대중음악과 전자 음향의 득세로 그 위대한 계보가 점점 끊어져 가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아실 것입니다. 성악은 원래 화려한 고음과 묵직하고 큰 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관한 음악예술입니다. 그래서 서양 클래식 성악 발성을 이탈리아 말로 벨칸토(Bell canto/아름다운 목소리)라고 일컫습니다. 만일 스테레오 녹음 기술이 100년만 일찍 발명되었다면 과거 월드컵 때 마다 유명세를 떨쳤던 세계 ‘3대 테너’(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들은 ‘세계 100대 테너’의 리스트에도 그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악을 진지하게 제대로 공부했다면 그 젊은 테너들도 그 사실을 잘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민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오지랖 넓게 괜한 걱정을 해 보았습니다.

한 음악가의 음악은 음악가에 대한 외부적 평가나 그가 어느 학교를 나와 어느 무대에 섰었느냐와 같은 프로필이나 혹은 어떤 인생 스토리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가 지금 들려주고 있는 그 음악으로 평가 받아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전 지식과 듣는 귀가 필요합니다. 내게 좋은 음악이 좋은 음악이고 내가 듣기 싫다면 나쁜 음악이라는 것은 지당한 말이지만 음악에 대한 이해력과 듣는 귀가 갖춰진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성악에서는 남들 보다 재능이 조금 더 있을 순 있어도 천재가 나올 수 없습니다. 성악은 모든 음악 중에서 연주자에게 있어 피지컬적인 트레이닝과 섬세함이 가장 크게 요구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악에 있어서는 천재성 보다 나쁜 버릇이 없는 깨끗한 목소리와 어느 정도의 음악성,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들어 주고 제대로 된 발성 기법을 전수해 줄 수 있는 좋은 스승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악 예술은 작곡이나 기악과는 달리 천재성과 관련된 음악이라기보다는 겸손한 수련과 사제관계 그리고 구도자적 자세를 통해 대가의 반열에 오른 음악가들과 관련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성악 천재로 만드셨기 때문에 특정한 몇몇 사람을 성악 천재로 꼽는 것도 넌센스입니다. 갓 태어난 아가들의 울음소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맑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저는 아가들의 울음소리와 꺄르르 웃음소리를 들을 때 마다 그 완벽한 발성에 늘 경탄하곤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의 멋들어진 노래 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발견하여 최대한 자유롭고, 최대한 아름답고, 최대한 정성스럽게 부르는 노래를 더욱 좋아하십니다.

글을 쓰다 보니 ‘레코딩 역사상 최고의 성악의 대가’라고 불러도 피차간 전혀 민망하지 않을 몇몇 성악가들의 노래가 듣고 싶어집니다. 섬세한 소리부터 빛나는 고음 까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꽉 찬 소리를 낸 엔리코 카루소나 섬세한 호흡 컨트롤의 대가인 티토 스키파의 노래도 좋겠지만 이 가을날에는 왠지 페루치오 탈리아비니(Ferruccio Tagliavini, 1913~1995)의 노래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나를 잊지 마세요/Non ti scordar di me’라는 가사가 마치 성악 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애원으로 들립니다.

 

https://youtu.be/aiLcI5_w7Qo

 

조진호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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