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실수로 만들어진 전국구 인천 음식 쫄면

기사승인 2020.11.17  23:19:39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서울태생인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장성하여 결혼하기 전까지 인천에서 살았다. 그래서 인천은 내겐 고향 같은 곳이다. 1980년대 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학교앞 분식집에서 자주 먹던 메뉴는 김밥과 떡볶이 그리고 쫄면이었다. 그 중에서 쫄면이 인천의 음식인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다.

얼마 전 소개한 밀면은 6.25전쟁 때 들어온 미국 밀가루로 부산에서 탄생한 면요리라면 쫄면은 1970년 대규모 밀가루 공장이 있었던 인천에서 탄생한 면요리이다. 지금도 대표적인 밀가루 브랜드인 곰표밀가루공장이 인천항 근처에 있다. 쫄면은 밀면에 비교하자면 좀 더 전국적인 음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국 대부분의 분식집에서 맛볼 수 있고 어딜 가나 비슷한 맛의 전국구 요리니 말이다.

도대체 쫄면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쫄면은 실수를 계기로 탄생한 음식이다. 1970년 인천 중구 경동 96번지, 배다리 사거리에 위치한 광신제면이라는 냉면공장에서 일하던 한 직원이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실수로 냉면을 뽑아내는 사출기의 체(구멍)을 잘못 끼워 놓았다. 냉면을 뽑으려면 가느다란 구멍의 사출기의 체를 썼어야 했는데 실수로 우동을 뽑을 때 쓰는 큰 구멍의 사출기의 체를 잘못 끼워서 굵은 냉면을 뽑아내고 만 것이다.

이 면을 폐기처분하려다가 공장 앞 분식집인 만나당 분식집에 공짜로 가져다주었고, 맛나당 주방장으로 일했던 노승희씨가 이 면에다가 고추장 양념을 버무려서 쫄면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했는데 값이 싸고 쫄깃한 맛이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맛나당에서 시작한 쫄면은 인근의 또 다른 유명 분식집인 만복당으로 퍼졌고, 점차 인천시내 분식집들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때까지 투박한 미완성작이었던 쫄면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당시 인천 신포동시장에서 '우리 집'이란 분식집을 운영한 박기남씨 덕분이다. 박기남씨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양념장은 매우면서도 새콤달콤하게, 국수는 특징을 살려 더욱 쫄깃하게, 쫄깃한 면발에 뒤지지 않는 씹는 야채 맛이 살아있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냈다. 아삭한 양배추와 콩나물, 그리고 당근채와 오이채를 얹은 지금의 대중적인 쫄면이 탄생한 것이다.

1971년 신포시장에 문을 연 ‘우리집’이라는 박기남씨의 가게는 3평짜리 만두 가게였다. 고기만두로 유명한 이 가게에 쫄면이 메뉴로 추가되면서 전국적이고 대중적인 음식이 된 것이다. 현재 박기남씨의 신포동 ‘우리집’ 분식집은 ‘신포우리만두’라는 전국적인 분식체인점이 되었다. 아쉽게도 맛나당과 만복당은 현재 모두 사라졌기에 현존하는 원조급 쫄면집은 신포동 우리만두 본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일본 신주쿠 백화점에서 열린 ‘월드컵맞이 한국문화페스티벌’때 전주비빔밥, 부산 동래파전과 함께 인천 쫄면이 한국 대표 음식으로 꼽히기도 했다. 실수로 만들어진 면이 몇 사람의 노력을 거쳐 전국적인 음식이 된 것이다.

때때로 실수할 때가 있다. 실수로 일이 잘못되었을 때 너무 실망하진 말자. 실수가 계기가 되어 삶의 진보를 이룬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잇이나 인슐린, 페니실린, 티백, 전자레인지 등 실수가 계기가 되어 대박이 난 제품들이다. 실수할 때 낙심말고 긍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적용해 본다면 전화위복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