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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할 때

기사승인 2020.11.22  01:14:47

당당뉴스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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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중앙정보부의 인혁당 조작 사건을 폭로해 미국으로 추방되는 등  대한민국 민주화에 헌신했던 오글(한국이름 오명걸) 목사님이 지난 11월 15일 91세의 일기로 소천했습니다. 이 글은 '고난함께' 1994년 여름호(제38호)에 실렸던 조지 오글 목사님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과거를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할 때

 

오명걸 (Rev. George Ogle) /미연합감리회 노동문제 담당 은퇴목사

 

1974년도를 회상하며

20년! 20년이란 긴 세월의 고난과 두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의 끊임없는 용기 ! 엄청난 노동과 생산! 자유와 존엄을 지닌 나라를 만들려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투쟁이 있었던 시절입니다.

20년 전 저는 한국에서 강제 출국 당했습니다. 12월 14일 저는 가택구금 되었고 그날 오후 5시에 경찰봉고차에 실려 곧바로 김포공항으로 끌려갔습니다. 경찰차에서 내리라고 하더니 곧바로 비행기에 태웠습니다. 제가 경찰차에서 내리기 전 차 뒤에 있던 4,5명의 남자들을 돌아보면서, “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없었으니 여러분에게나 작별인사를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법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자동차 문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뒤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곧 돌아오시기를 빕니다.” 저는 그때 큰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행기가 동경에 내렸을 때, 일어나 나가려는데 건장하게 생긴 승무원 남자가 강제로 저를 앉혀놨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명령은 제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비행기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던가 봅니다. 비행기가 동경을 떠나자 그때야 여자 승무원이 저녁을 가지고 왔습니다. 가지고 온 접시 밑에는 편지가 한 장이 있었습니다. 열어서 읽어보니 이런 글입니다. “우리는 왜 당신이 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역시 우리 조국의 민주화와 회복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당신이 빠른 시일에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차에 있던 사람들이나 비행기 스튜디어스들이나 민주화와 정의실현을 진정 바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압제자들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처음 생각은 1960년대와 70년대 인권투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친구들과 사건들을 몇 가지 회상해 볼까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개인 개인들의 기억보다 고난에도 불구하고 억압을 이기기 위해 깊은 신앙으로 일어선 민중들과 공동체가 기억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역사는 인권과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는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지난 20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 ? 우리가 좀 더 지혜로와 졌는가? 지난 20년은 우리에게 미래를 향한 초석이 될 수 있는가?” 이런 것을 염두에 두면서 과거에 대한 회상보다는 지난 20년이란 세월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정부에게 통치하는 권력을 주셨으니 ( ? )

제일 먼저는 정부의 역할입니다. 정부의 우선적 사명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정부는 물론 외부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방어하는 일과,경제발전을 통한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과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제는 독재나 비밀경찰 없이도 가능합니다. 불행하게도, 정부는 때때로 권력을 이용해, 부자를 더 살찌게 해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누릅니다. 사람들에게는 정부의 뜻에 순종하고 절대로 질문 던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정권자들도 있습니다.

김종필씨가 박정희 밑에서 국무총리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김종필씨는 로마서 13장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정부에게 통치하는 권력을 주셨으니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혹독한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권력’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정의실현’에 있다고 봅니다. 정권자들이 부정한 일을 하게 되면 시민들이 고난을 당하게 되고, 이는 결국 정권자 자신에게도 재앙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정부의 책임은 시민들을 위해서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경제집약 정책과 민주주의

두 번째로 70년대와 80년대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이것 입니다. 경제력은 반드시 민주정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력 강화에 중점을 두는 일은 국민의 생활수준을 힝상하는 많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집약 정책에 따르는 문제는 부패와 노동자 권리의 침해와 국가 자원의 잘못된 활용입니다. 자본주의가 가지는 문제 중의 하나가 경제력을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자본가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기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를 부패시키고 노동조합과 같은 집단들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경제정책가들은 그들의 목표설정과 과정에 투자와 소유권을 분산화 그리고 국가 자원을 분배하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는 산업봉건군주주의가 되고 민주주의가 보존되기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인권운동의 큰 과제 중에 하나는 재벌을 통제하는 새로운 방법마련 일것입니다. 특히 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경제집약 문제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북은 관료자 몇 사람의 손에 경제적 결정권이 집중되어 있다 하는데, 남한 역시 재벌 몇 사람과 중앙기획원의 몇 사람이 경제제도를 지배합니다. 통일이 될지라도 경제력 집중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된 후 부딪칠 문제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경제제도를 민주화’시키는 일입니다.

 

군부에 의해 만들어지는 간첩

세 번 째는 군부에 대한 것이다. 군부의 역할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데 있는 것이지 정치하는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군인들도 국가를 위해 기여하는 많은 기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대정신은 정부 운영에 맞지 않습니다. 군대정신은 명령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독재주의는 군대식입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든가 인권, 의견의 차이를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1974년도 9월 저는 체포되어 남산에 끌려갔었습니다. 저는 밤새도록 공산주의자들을 지원했다는 명목으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사실이 아닌 일을 고문에 의해 자백해야 했던 20명의 젊은이들을 위해 공개적으로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혁당’이라고 불리우는 사건입니다.

군복차림을 한 수사관은 제가 공산주의자들을 도왔다고 자백서에 싸인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공산주의자라는 것이 증명된 일이 없다”라고 말하며 거부했습니다. 수사관은 화를 내며, “우리는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이라는 것을 안다. 그거면 충분한 증거다. 네가 뭔데 우리에게 질문하느냐. 우리는 다 안다!”라고 소리질렀습니다. 거기에는 반대 의견이나 질문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인혁당사건과 흡사한 일로 1985년에 구속된 양심수들이 아직도 감옥에 있습니다. 김성만, 양동화, 황대곤 이 세 사람은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잡혀가서 고문당하고 북한 간첩이라고 기소되었습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조사한 바로는 이 사람들이 간첩 활동을 하거나 폭력으로 정치 변동을 시도한 증거는 없었습니다. 결국 국제적 압력 때문에 구정권이 감형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성만과 양동화는 지금도 무기징역을 살고 있고, 황대권은 20년 형을 사는 중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정부가 이 사람들을 석방할 것을 촉구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권리, 민주노조운동

다음은, 이 사회에서 노동자의 위치에 대한 것입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정부와 더 큰 힘을 가진 재벌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에게 결사와 단체협상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기업주들이 깡패나 구사대를 동원해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일이 없어져야 합니다. 산업사회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몇 주 전에 저는 미국 일리노이주 수도인 스프링훨드에서 있었던 노동조합 컨퍼런스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강사로 나온 사람은 서부지역 부두노동자조합의 회장이었습니다. 그의 강연내용에 보면 기업들이 국제화되는 이 때에 노동자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국제적인 기구와 협력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창의적인 노동조합운동으로 1987년도에 생겨난 한국의 노동운동을 그 한 예로 들었습니다. 그는 미국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한국의 민주노동조합운동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력한 노동조합이 없게 되면 권위주의만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강한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면, 1987년에 있었던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더우기 이북과의 통일을 염두에 둘 때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통일된 나라에서는 어떻게 민주노조운동이 발전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북에서 공산당 밑에서 움직이는 근로자들, 그리고 남한에서 모정당과 재벌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노조가 어떻게 ‘자립적인 민주노조’를 건설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인권운동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60년대와 70년대에 큰 회생의 댓가를 치루면서도 자유노동운동의 이상을 살려낸 많은 젊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체포되고 구타당하고 비인간적인 치욕을 당했지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동일방직, 한국모방, 방림, Eygnetics, Y.H. 등등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길고 어려운 세월동안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들어온 그들 여성들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그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눌린 자를 자유케’

마지막 우리가 배운 것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정의구현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선교를 ‘누가복은 4장 18절’ 말씀을 선포함으로 시작했습니다. “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 왔다.”는 예수의 말씀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경제와 정치의 정의구현을 명령하신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이사야 선지자를 인용한 것입니다. 땅을 정당하게 분배하고, 억눌린 노동자들을 해방시키고, 빚을 탕감하고, 가난한 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가축의 종자와 포도주를 주도록 했던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경제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정치를 말씀하셨고 앞으로 이루어질 정의사회를 위한 원칙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에게로 정의의 복욤은 큰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치욕과 공포, 투옥, 고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소망과 힘을 주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증인됨은 1919년 일제하에 항거했던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앞으로도 인권 운동의 할 일은 많다.

지난 수 십년을 통해서 우리가 목격해온 인권유린은 국가안보라는 명분아래 자행했던 것입니다. 민족 분단이 계속되는 한 그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습니다. 최근, 인권상황의 진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 인권이 아직도 유린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한과 북한 국민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이 민족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외국 사람들이 마음대로 결정해서 그 결과가 비극을 가져온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정치적, 군사적 결정이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초래하던가, 그러치 않으면 저해하는 분위기를 만들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북한에 대해서 강압 자세로 나가자”는 단순한 정책을 초월해서 진정한 평화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지지해야 합니다. 한국의 인권운동은 한국 국민과 미국 국민, 그리고 미국 정부에, 이 문제를 제기할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얼마전 소설을 한편 읽었습니다. 그 소설 한 장면에 보면 어머니가 한 밤중에 정신을 잃은 것처럼 방과 방을 다니며 방황하는 것을 아들이 발견합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팔을 붙잡고, “어머니 무슨 일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왜 살고 있는 지를 잃어버렸다.”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 잃어버리기 맙시다. 이제 과거를 뒤로하고 미래를 향할 때에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난을 잊지 맙시다. 기억하고 기억함을 통해 고문과 억압이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는 세상을 건설합시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무거운 짐과 우리를 얼거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히브리서 12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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