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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화교류로 탄생한 역사적 작품 햄버거

기사승인 2020.11.24  22:04:35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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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천에 몇 개의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곳은 역시 맥도날드다. 내가 맥도날드를 이용하는 이유는 주차장이 넓고 드라이브인 방식으로 구입이 가능한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언맨의 주인공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좋아한다는 치즈버거를 사먹기 위해서다. 치즈버거 외에도 오전 10시 20분 이전에는 에그 맥머핀과 커피로 구성된 콤보메뉴를 29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머핀의 졸깃한 식감이 딱 내 스타일이다.

사람들은 햄버거를 도대체 얼마나 먹을까? 2013년 기준으로 미국에서만 한 해에 500억 개가 소비된다고 한다. 이렇게 따지면 미국인들은 1주일에 햄버거를 적어도 세 개씩 먹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에서만 1년에 소비되는 햄버거들을 일렬로 줄 세우면 지구를 32바퀴나 돌수 있다고 한다.

햄버거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몽골에는 많은 유목민족이 살고 있었다. 이 중에는 말을 타고 다니는 기마 민족, 타타르족이 있었다. 타타르인들은 말 여러 마리를 데리고 다니다가 말의 피를 받아서 먹었고, 말고기를 잘게 썰어 안장 밑에 두었다가 체중으로 충분히 다져져서 부드러워진 고기를 양념과 섞어 육회처럼 먹었다. 이렇게 하면 전쟁 중에 요리할 시간을 줄여 남들보다 짧은 시간 더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이 음식 이름이 바로 ‘타타르 스테이크’이다.

13세기 러시아와 유럽을 침략한 칭기즈칸의 몽골 군대 안에도 타타르 족이 있었다. 서양인들 사이에서 이들은 매우 잔인하고 신출귀몰하다고 알려졌다. 유럽인들은 이 무시무시한 몽골인들을 ‘타타르’라고 불렀다. 13세기 중반부터 15세기 후반까지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를 받는데 이 무렵 러시아에는 타타르 스테이크(Tatare Streak)가 전수된다. 러시아 사람들은 소고기를 곱게 다져 만든 타타르 스테이크에 양파와 후추를 뿌리고 날계란과 함께 먹었다. 지금도 유럽에는 우리나라 육회처럼 날고기로 만드는 식의 타타르 스테이크라는 것이 있다.

러시아에 전해진 타타르 스테이크가 독일로 전해진 것은 17세기였다. 독일의 함부르크는 러시아와 교역하는 주요항구들 중 하나였다. 때문에 타타르 스테이크를 비롯한 러시아의 문화들이 함부르크로 흘러들었다. 함부르크인들은 타타르 스테이크를 하크스테이크(Hack Steak)라고 불렀다. 독일어로 하크(Hack)는 ‘다진 고기’라는 뜻이다. 다진 고기에 양파, 빵가루를 섞어 보다 부드럽게 만들었고 날것 그대로 먹기도 했지만 구워 먹기도 했다.

이 하크 스테이크(Hack Steak)는 19세기에 미국으로 전해졌다. 당시 세계적인 선진 공업국으로 떠오르는 미국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주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함부르크와 뉴욕을 연결하는 배편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갈 때 자주 이용되는 경로였다. 미국에 도착한 독일 이민자들은 하크 스테이크를 소개했고 미국인들은 이것을 햄버그스테이크(Hamburg Steak)라고 불렀다. 햄버그는 ‘함부르크’라는 뜻이다. 햄버그가 아니라 ‘햄버거 스테이크’라고도 불렀는데 햄버거는 ‘함부르크 사람’이라는 뜻이다. 19세기에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함부르크 지방에서 먹던 스테이크를 샌드위치 형식으로 개량해 현대식 햄버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사실 1880년대에 지금의 햄버거가 등장하긴 했지만 당시에 햄버거는 별 볼일 없는 음식이었다. 햄버거가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미국의 공이 컸다. 미국에서 햄버거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텍사스 출신의 ‘플레쳐 데이비스’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월드페어에서 사람들에게 햄버거를 팔았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이 음식을 신기하게 생각했고, 햄버거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이때부터 햄버거가 미국 내에서 유명해졌고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1910년대의 햄버거는 잠시 ‘리버티 샌드위치’라는 이름을 갖는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독일과의 전쟁을 결정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독일 문화를 배척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때문에 독일 도시 함부르크를 연상시키는 햄버거라는 이름대신 미국의 건국정신인 ‘자유’ 즉 ‘리버티(Liberty)'를 붙여 ’리버티 샌드위치‘라고 했다. 하지만 1918년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돌아가고 독일에 대한 적대감이 해소되면서 햄버거라는 이름이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

1921년에는 미국 최초의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화이트 캐슬’이 캔자스에서 문을 연다. 화이트캐슬이 이룬 주요한 혁신은 햄버거 조리를 철저하게 분업화한 것이었다. 마치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것처럼 생산라인을 구축하여 누가 만들던 똑같은 햄버거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주문 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확 단축되었고 이것은 화이트 캐슬의 경쟁력이 되었다.

화이트캐슬의 성공은 수많은 추종자들을 탄생시켰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맥도날드’였다. 1948년 캘리포니아에 문을 연 맥도날드는 1953년 화이트 캐슬의 생산 라인을 개량해 주문 후 30초 만에 햄버거를 만들어내는 ‘스피디 시스템’을 완성한다. 당시 미국의 일반적인 햄버거 체인점들은 드라이브-인(Drive-in)방식이어서 손님이 차를 타고 매장에 들어오면 직원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었는데 맥도날드는 서빙을 하는 직원을 없앴고 손님이 매장 안으로 들어와서 직접 주문을 하도록 했다. 이렇게 절감한 인력으로 분업화를 고도화했다.

동네 맛집이던 맥도날드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은 ‘레이먼드 크록’이다. 훗날 맥도날드의 오너가 되는 인물이다. 크록은 1954년 맥도날드가맹점 사업권을 따내고 이듬해인 1955년 일리노이에 첫 번째 지점을 연다. 그리고 탁월한 경영과 마케팅으로 패스트푸드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갔다. 1959년 맥도날드 지점 수는 4년만에 100개를 넘어섰다. 1967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했고 1988년 한국, 냉전이 해소된 1990년대에는 러시아로도 진출했다. 그 결과 오늘날 맥도날드는 전세계 120여개국에 3만5천개가 넘는 지점을 둔 글로벌기업이 되었다.

몽골병사들의 전투식량인 생고기가 유럽에 전해져 타타르 스테이크(Tatare Streak)가 되었고, 이후 타타르 스테이크를 익힌 요리는 미국에 전해져 ‘함부르크 스테이크’라는 뜻을 가진 ‘햄버그 스테이크’로 불리다가 빵사이에 끼워져 ‘햄버거’가 되었다. 이것을 전 세계에 퍼뜨린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이렇게 우리가 먹는 햄버거는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하면서 탄생한 역사적 작품인 것이다.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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