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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숭배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길” 나훔3장1절~19절

기사승인 2020.12.22  21:21:23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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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숭배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길” 나훔3장1절~19절

 

1. 사리사욕(私利私慾)

 

① (1절) “화 있을찐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을 통해서 남유다를 향해 타산지석의 지혜를 촉구한다. 또한 오늘 우리에게 인생의 끝나는 날, 곧 죽음을 성찰하는 지혜를 요청하고 있다. 국가의 멸망은 개인의 사망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피 성이여’ 대제국 앗수르의 실상은 피로 쌓은 성(城,castle), 곧 타인의 고혈 위에 세운 나라다. 앗수르의 부요는 남의 소유를 빼앗은 수탈이고 앗수르의 영토는 남의 땅을 빼앗은 강탈이다. ‘화 있을찐저’ 타인(약자)을 희생시켜 자기유익을 취하는 폭력적인 치부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심판의 대상이다. ‘그 속에서는’ 겉모습 속에 숨겨진 중심, 곧 동기와 목적이다. 사람은 외적인 웅장함이나 위대함을 보지만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꿰뚫어 보신다. 앗수르 제국의 실상은 ‘궤휼과 강포, 늑탈’이다. 약육강식, 무한경쟁, 승자독신의 삶의 방식은 제 아무리 화려해도 한낱 야수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구원은 ‘야수 같은 삶’의 방식에서 ‘예수 같은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② (2절~3절) “휙휙하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살육 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 앗수르제국의 폭력적인 통치방식을 묘사한다. ‘큰 무더기 주검’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인 ‘5.18 광주민주항쟁’의 참상을 떠오르게 한다. 제5공화국은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한 군사쿠데타다. 광주시민을 무참히 학살하고 탈취한 부당한 권력이다. 전두환씨는 그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 목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서 사자명예훼손으로 기소되었다. 지난 11월30일 1심 선고공판 사자명예훼손으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그는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반란수괴, 반란모의, 불법지휘, 상관살해, 내란목적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 뇌물죄 등으로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세상법정의 심판을 모면하고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하나님의 심판대를 피할 수 없다. 이와 달리, 지난 6월 노태우전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는 5.18민주묘역에 참배하며 ‘백번이고 천번이고 사과하겠다’며 머리 숙여 사죄했다.

 

③ (4절) “이는 마술의 주인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을 인함이라 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그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 나훔은 앗수르의 영토 확장을 ‘음행과 마술’로 폄훼한다. ‘음행’은 정상적이지 않고 불공정한 행위, 부정부패를 가리키며 ‘마술’은 매직(magic), 곧 일반이나 상식의 순리가 아니라 타인의 눈을 속여 먹는 ‘사기’에 불과하다. 땀 흘리는 수고 없이 거두는 불로소득, 공부하지 않고 좋은 점수를 받는 커닝, 하나를 넣었는데 열배를 거두는 대박신화는 비정상이며 몰상식이다. 이와 같은 음행과 마술의 대박신화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타인을 희생시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성공신화는 과정보다 결과만 따지는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선전한다. 오늘날에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결과중심의 사고방식이 만연하다.

 

 

2. 이장폐천(以掌蔽天)

 

① (5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치마를 걷어쳐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열국에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열방에 보일 것이요”

▶ (메시지성경) ‘창녀 니느웨야, 나는 네 원수다. 나 만군의 하나님이 너를 대적한다! 세상을 호리는 너희 그 비단옷을 벗겨 온 세상 앞에서 발가벗길 것이다. 모든 민족이 네 적나라한 실체를 보게 할 것이다. 네 정체가 무엇이며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게 할 것이다’ 니느웨를 비루한 창기에 비유한다. 감리교회 최고지도자인 감독회장선거에서 금품을 살포한 금권선거에 대한 소송이 또 제기되었다. 거룩한 보라색 감독가운을 얻기 위해 돈을 표를 매수한 추악한 실체가 또 드러났다. 김영란법은 ‘청탁금지법’ 금품수수 금지, 부정청탁금지 등 공직자, 언론인, 교직원 등 1회 100만원 이상, 농축산물 10만원, 경조사비 5만원 이상을 제공하면 처벌대상이다. 사회에서도 통하지 않는 일이 거룩한 교회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② (6절)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로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 (메시지성경) ‘네게 개똥을 퍼부은 다음, 모두가 볼 수 있게 전시대에 올려놓고 이렇게 써 붙일 것이다. 창녀 전시 중’ 감리교회의 감독회장이나 감독이 되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문제는 염치가 없어 도무지 부끄러운 줄조차 모른다. 이제 모든 소송을 중단하고 미래로 나가자며 ‘감리교회에 드리는 글’이라는 성명서를 뻔뻔하게 내고 있다. 실로 ‘방귀뀐 놈이 성 내는 격’이다. ‘이장폐천’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말로 얕은 수로 잘못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음을 이른다. 추악한 금권선거를 꼼수를 써서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대형로펌의 힘을 빌어 세상법정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하나님의 재판정을 피할 순 없다.

 

③ (7절) “그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여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무하였도다 누가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시도다”

▶ (메시지성경) ‘너를 보는 자들이 모두 역겨워하며 말할 것이다. 니느웨, 저 돼지우리. 저렇게 더러울 줄이야. 두 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다. 추하다. 추해’ 니느웨를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얼빠진 이들에게 추악한 민낯과 더러운 치부를 폭로하신다. ‘너를 위해 애곡하며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너를 따르던 자들이 돌아서고 너를 편들 사람이 하나도 없다. 지난 주 ‘국민의힘 김종인대표’가 대국민사과를 했다. 권력형 비리로 수감 중인 이명박근혜전대통령에 대한 사죄다. 남 얘기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우리의 숨겨진 죄악도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지금 회개하면 주홍같이 붉은 죄도 눈과 같이 용서받겠지만 지금 회개치 않으면 그날엔 용서받을 길이 없다.

 

3. 물질만능(物質萬能 : Mammonism, 물신숭배, 배금주의)

 

① (8절~11절)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렀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성벽이 되었으며 구스와 애굽이 그 힘이 되어 한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의 돕는 자가 되었으나 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 어린 아이들은 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서졌으며 그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 모든 대인은 사슬에 결박되었나니 너도 취한바 되어 숨으리라 너도대적을 인하여 피난처를 찾아보리라”

▶ 노아몬은 애굽의 고대도시 테베다.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인 천예의 요새였다. 오바댜가 산악지형을 의지했던 에돔의 멸망을 예언한 것처럼 나훔은 티그리스강을 의지하던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한다. 강력한 동맹국도 지켜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의지하던 환경은 무용지물이고 의지하던 사람은 속수무책이다. 테베가 앗수르에 멸망해서 포로가 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처럼 ‘너도’ 동일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행 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의 순간. 의지하던 물질이나 의지하던 가족이나 친구, 그 누구도 지켜주지 못한다.

 

② (12절~13절) “너의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너의 중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너의 땅의 성문들은 너의 대적 앞에 넓게 열리고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

▶ 모든 산성(Castle, Palace), 힘센 장정, 성문, 빗장 등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며 과시하던 부동산도 ‘너를’ 지켜주지 못한다. 모든 만물, 모든 나라, 모든 인생의 동일한 숙명이다.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꽃과 같다. 헛된 것만 추구하지 말고 하루하루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지혜를 촉구한다.

 

③ (14절~17절)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예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케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늣의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찌어다 네가 네 상고를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황충이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너의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대장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 물과 벽돌을 쌓고, 다수의 대군을 모으고, 하늘의 별보다 많은 상고(재산), 방백과 대장(부하와 수하)이 속수무책일 뿐이다. 인간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다. 죽음의 순간,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누구도 죽음을 당할 자 없다. ‘앗수르 왕이여’ 나훔은 천하를 호령하며 왕 노릇하며 사는 모든 인생들에게 예언하고 있다. 중국대륙의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운 진시황은 불노초로 불로장생을 추구했지만 50세에 병사했다. 병마용으로 사후세계를 준비했지만 박물관 유물이 되었다. 아방궁은 이름만 남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대한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족의 침략을 막으려했지만 내란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진시황의 길을 좇는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입술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손과 발은 진시황을 좇는다. 끝은 동일하다.

 

⓸ (19절) “너의 다친 것은 고칠 수 없고 네 상처는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인하여 손뼉을 치나니 이는 네 악행을 늘 받지 않은 자가 없음이 아니냐”

▶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이다. 앗수르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구원’이다. 인생의 죽음은 ‘영벌’과 ‘영생’의 갈림길이다.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은 숨은 공력과 진가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날이다. 오늘 우리는 ‘물질’이 왕 노릇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전지전능한 돈이 다스리는 물신숭배의 세상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물질주의가 낳은 쌍둥이다. 자본주의는 행복을 물질의 소유와 축적에서 찾고, 공산주의는 행복을 물질의 공유와 분배에서 찾는 방식만 다를 뿐 ‘물질만능주의’라는 본질은 같다. 나훔은 대제국 앗수르에 대한 멸망을 예언하면서 물질만능주의를 추구하는 삶의 비참한 최후를 증거 한다. 멸망(사망, 죽음)이다. ‘욕심~죄~사망’이라는 삶의 방식에서 ‘말씀~의~생명(Life)’이라는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이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구원의 길’다. 이러한 삶의 전환점이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삶’, 곧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대를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삶’에 대한 각성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이나 감독, 목사, 장로 등의 직분자가 아니다.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돈이 그리스도, 힘이 그리스도, 사람이 머릿수가 그리스도처럼 주름 잡는 세상 속에서도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섬기는 사람이다. 물신숭배(mammonism)의 세상에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섬기는 길 뿐이다. 다른 길은 없다. 감리교회가 금권선거소송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교회에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에게 결정권을 돌려드리는 ‘제비뽑기’외에 다른 길은 없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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