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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침묵

기사승인 2021.01.10  23:03:32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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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침묵

(<나의 기억을 보라>, 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쌤앤파커스, 2020년)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엘리 위젤을 모르는 설교자는 드물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엘리 위젤이 호출되는 맥락은 소설 <흑야night>의 저자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기보다는 함께 고초 당하시는 하나님 이미지를 소개하는 순간이다. <흑야>의 극중 배경은 홀로코스트의 한복판, 한 포로수용소다. 부조리한 고통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질문한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호기심이 발동해 물은 것이 아니다. 항변하기 위해서다. 왜 우리한테 이런 굴욕과 수모를, 무의미한 고난을 주느냐고. 그 때, 소설 속 화자의 마음속에 들리는 소리는 이것이었다. “어디 있느냐고? 그분은 여기에 있어. 여기 교수대 위에 목이 매달려 있어.” 

신학자들은 여러 용어를 동원해 설명한다. 신죽음의 신학, 신의 일식, 신의 부재, 신 없이 신 앞에, 영혼의 어두운 밤 등등. 여러 층의 신학적 고찰을 전부 교우들에게 소개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고난 당하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의 고통에는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주목적이었을 테니까. 엘리 위젤을 소비하는 한국교회의 얄팍함은 퍽 아쉽다. 그렇게 인용되기엔 엘리 위젤의 영혼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을 보라>는 아리엘 버거와 엘리 위젤이 함께 쓴 책으로 소개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온전히 아리엘 버거의 글이다. 한 해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저자란에 엘리 위젤을 찾아볼 수 없더라. 아마 마케팅 차원에서 국내에 번역출간한 출판사가 엘리 위젤을 공저자로 집어넣은 듯하다. 아리엘 버거는 엘리 위젤의 제자다. 조교로, 동료 학자로 오랫동안 곁을 지킨 이였다. 그의 시선에서 엘리 위젤은 어떠했을까.

한 사람의 생애를 그리는 방식은 어떠해야할까. 정답은 없겠지만, <나의 기억을 보라>는  좋은 본보기임에 분명하다. 일대기를 오롯이 묘사하기보다, 저자가 직접 겪은 일화들을 중심으로 그 인물에 대한 논평을 덧붙이는 형식 말이다. 마치 예수의 어록을 수집하고 복음서를 기술한 초대교회공동체들처럼, 저자는 엘리 위젤과 관련된 편린들을 모아 재구성해내었다. 그 현장에 소환된 것처럼 역동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나의 기억을 보라>에는 엘리 위젤의 강의, 학생들과의 토론 등 공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을 비롯해 사석에서 주고받은 이야기 또한 기록되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엘리 위젤의 기호식품이 초콜릿이라는 것이 스치듯 언급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수업을 통해 엘리 위젤을 만난 수강생들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자기들의 미래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던가.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과거를 일깨워 미래를 위한 보호막으로 삼는 것입니다.”(50)
한 개인의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기억’ 덕분에 가능하다. 기억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섬뜩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지난날들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당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기억조차 공유하기 때문에 연애도, 우정도 가능한 것이다. 공동체적으로 겪는 사건, 그 공동의 기억 덕분에 오늘의 ‘너’와 ‘내’가 존재할 수 있다. 기록을 남기고, 누군가의 증언을 경청하고, 목격자가 되는 일, 연대가 중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홀로코스트는 어떠할까?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겪었던 참혹한 비극, 그것도 그러할까? 저자에 의하면, 엘리 위젤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학생을 만나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가혹한 처사 같다.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고, 증언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테니 말이다. 그것이 “누군가가 더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고통을 다리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이 그 다리를 밟고 지나가며 고통을 덜 느끼게 해주어야만” 한다고 엘리 위젤은 역설한 바 있다.(48) 야만의 역사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바로 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나의 기억을 보라.’ 그렇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있다. 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내게 <나의 기억을 보라>의 열쇠낱말은 ‘기억’과 ‘침묵’이다. 모순적인 두 단어일 수 있지만, 말과 글로 전달해내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일에 직면하곤 하는 인간에게 ‘기억’과 ‘침묵’은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말미에 기록된 이야기가 사무치게 다가온다. 랍비 심카 부님에게 그의 제자 하녹이 묻는다. “저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까?” 랍비 심카 부님은 답한다. “나도 평생 매일같이 그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 우선 나랑 같이 저녁밥부터 먹자꾸나.”(356-7)

김민호 목사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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