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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오고 사람은 가고 없고...

기사승인 2021.01.14  00:27:23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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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니 눈발이 날린다. 이번 눈은 솜털처럼 가볍다. 차 보닛에 살짝 쌓인 눈을 쓸어내리니 보기에는 솜털과 같았는데 실상은 좀 무거웠다. 습을 먹은 것이라 그런지 살얼음까지 끼었다. 빗자루에 엉겨붙은 눈이 떨어지지 않아 힘껏 내리치자 겨우 떨어져 나갔다. 이제는 눈이 내리면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겁지 않다. 이 저녁에도 내리는 눈을 보며 나온 첫마디가 “한라야, 또 눈이 오네?”였다. 그렇다. 농촌 특히 구불구불 좁은 비탈길을 끼고 사는 나의 마을에서는 눈은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으면 좋을 일이다.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도심의 출퇴근 시간이 거의 마비가 되었다고 했다. 그처럼 우리 마을도 눈이 내리면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저 눈을 언제 치우지?”와 “눈이 밤새 얼면 내일 아침 어떻게 내려가지?”이다. 눈이 올 때마다 습관처럼 떠오르는 생각이다.   

눈이 많이 오면 큰 도로나 읍내는 공공기관에서 일찍이 제설차량을 운행하여 사람들의 출퇴근을 돕는다. 그러나 도로를 벗어난 마을은 그 마을 사람들이 직접 눈을 치우는 수고를 해야 한다. 우리 마을의 경우는 큰길에서 거의 1킬로 정도 떨어져 있고 전체적으로 비탈진 곳이라 그 1킬로를 고스란히 우리가 치워야 한다. 음성에 내려와 맞은 첫 겨울도 눈이 많이 왔다. 이웃에 사는 반장님이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으니 집집마다 모두 나와 눈을 치우자고 방송을 했다. 넉가래를 들고 나가니 남자들은 벌써 저 밑까지 눈을 쓸고 내려가고 있었다. 나도 그 사이에 껴서 눈을 치웠다. 한참을 하고 나면 추위는 저만치 달아나고 어느새 두꺼운 잠바 속에 땀이 찼다. 그렇게 마을 입구까지 눈을 쓰는 시간은 거의 두 시간 정도 되었다. 

사람이 많았던 때였다. 벌써 9년 전의 일이니 그래도 사람들이 젊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내 일이라 여기고 모두 나와 눈을 쓸었다. 삼삼오오 조를 짜서 눈을 치우면 금새 치우곤 했었다. 마을 입구까지 내려갔다가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만난 사람과는 일종의 동지애가 무럭무럭 자랐다. 어쩌다 한번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때만큼은 모두 대동단결로 뭉쳤다. 헤어지는 인사도 마치 매일 볼 것만 같이 우렁찼다. 그렇게 눈이 오면 마을은 하나가 되었다. 그랬던 마을의 분위기가 어느 해부터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겨울 시작부터 많은 눈이 내렸다. 처음 내렸던 눈은 거의 10센티 정도 소복히 쌓였다. 그리고 지난주에도 많은 눈이 내렸다. 넉가래를 들고 눈을 쓸러 나갔으나 이젠 마을의 눈을 쓸자고 방송하는 반장님도 없고, 너도나도 내 일처럼 나와 눈을 쓰는 사람도 없었다. 마을 맨 위에 사시는 목사님과 사모님, 아랫집의 집사님 외에는 눈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손이 모자랐기 때문에 서너 명이 경사가 아주 심한 곳이나 그늘진 곳을 집중적으로 치우고, 급한대로 염화칼슘을 뿌려놓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람이 없이 눈을 치우니 피로는 금새 찾아왔다. 내 집 앞 치우는 것만으로도 나의 체력은 어느덧 나이를 실감하게 하였다. 며칠 동안 근육통에 시달렸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동단결을 불태우고 삼삼오오 조를 짜며 눈을 치웠던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5~6년 전만 해도 마을 회의나 마을에 일이 있으면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였다. 자신의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모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겼었다. 특히 마을 어른들이 모이는 것에 힘썼기에 젊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모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른들이 안 계신다. 10년 사이에 마을의 어른으로 계셨던 분들이 하나둘씩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내려왔을 때 이웃에 사셨던 할아버지는 지팡이 하나 의지하고 마을을 돌아다니시며 동네방네 참견하시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으셨다. 나와도 간간이 만나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젊은 처자가 이곳까지 와서 고생한다고 걱정하시면서도 한편으론 좋아하셨다. 그렇게 집집마다 한두 명씩 계셨던 어르신들은 본향으로 가시고, 마을에 살았던 몇몇 젊은 사람들은 자녀들이 커가면서 읍내로 이사를 나갔다. 그리고 40대 초반이었던 나도 50대 초반이 되었으니 나보다 먼저 와 살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의 나이 또한 나만큼 먹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마을은 조용히 고령화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나와서 눈을 쓸자고 방송을 하기엔 그분들의 체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다. 

농촌 마을의 소멸화가 점차 심해질거란 전망이다. 수년 전부터 농촌 지자체마다 별의별 정책을 내놓고 인구 유입을 논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태어난 해만 해도 나를 포함해 신생아가 120만 정도였다. 한 반에 70명 정도의 급우들이 있었고, 오전반 오후반으로 공부를 한 세대였는데 지금은 신생아가 30만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정말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난다. 그래도 우리 마을은 그나마 낫다. 마을 입구의 마을은 지난번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빙판 그대로다. 그 마을은 큰 길가와 바로 붙어 있고 평지지만 우리 마을보다 더 고령화가 되어 눈이 오면 아예 외출 자제다. 농촌의 현실이다. 

겨울은 아직 남아있다. 남아있는 동안 눈은 얼마나 내릴까. 너무 따뜻했던 작년 겨울을 생각하면 농사를 위해 차라리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이 낫겠다 싶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고, 그래야 그해에 병충해를 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올해처럼 추우면 과수는 얼 수 있으니 뭐든 이래나저래나 과유불급이다. 여하튼 이 겨울, 눈이 내리면 사람은 없어도 난 넉가래를 들고 나갈 채비는 단단히 해야 하리. <끝>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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