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수다스러움! 그 촐싹거리는 진리

기사승인 2021.01.18  01:09:12

이관택 목사

공유
default_news_ad1
   
 

수다스러움! 그 촐싹거리는 진리

(<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세계사, 2009년)

“하나님은 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소설 <오두막>은 이 한탄 섞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소위 ‘신정론’이라 불리는 오래된 질문에서 출발하여 고통의 문제를 치유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 전적으로 개입하고 함께하는 신의 모습이 그려진다.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했던 것인지, 소설 <오두막>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7년에 출간하여, 책이 나온 지 이미 13년이나 지났고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이제는 다소 식상하다 여겨지기까지 하지만, 다시 이 책을 꺼내 든 것은 ‘하나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기 때문이다.

<오두막>에서 주인공 맥이 만난 하나님의 세 위격은 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거칠고 투박하게 생긴 ‘예수’, 이웃집 아주머니의 형상을 한 하나님 ‘파파’, 살랑살랑하고 싱그러운 느낌의 성령 ‘사라유’의 모습이 그렇다. 모습에서뿐 아니라 그들이 나누는 대화 혹은 수다도 신에 대해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허물어뜨린다. 음식 짓는 냄새로 분주하기만 할 것 같은 공간인 부엌이 세 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 논하는 장이며, 언제라도 그 식탁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초대하고, 맛있는 것을 나누며 서로의 아픔에 공감한다. 등산을 하고 호수 길을 걷고 고개를 들어 별을 보는 낭만적인 하나님(들). 그 낭만적인 모습 아래에는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함께 아파하며, 한 사람의 고통에 민감히 반응하는 태도가 자리한다.

마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이야기했던 삼위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사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몰트만은 그 이전의 군주론적인 삼위일체론에 반대하며 삼위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귐을 강조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최고 실체 혹은 절대주체로서가 아니라 정열적인 사랑으로 세계와 ‘관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삼위 하나님의 사귐의 세계에서는 율법과 법이 아닌 ‘과정 자체’가 ‘현재’를 구성한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우리도 ‘현재’를 살게 되는 것이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혹은 누군가가 형성해 놓은 법과 제도에 의해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수다스레 대화하고, 변화를 위해 무모하리만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현재형’의 삶의 태도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먼 길을 ‘기대감’을 가지고 걸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이처럼 유쾌하고, 분주하며, 세밀하기 때문에 그렇다.

저자는 ‘기대감’과는 달리 ‘기대’라는 단어는 책임성을 강조하고 틀에 맞추려는 듯한 느낌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항상 어떤 산의 정상에 당도하려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발을 부르트게 하고, 빨리 정상에 오를 생각에 현재를 간과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조차 과거에 있었던 것, 또는 미래의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라는 이분법 속 가두어 놓고 정작 지금 현재에는 부재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우리는 하나님 없는 현재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상에는 하늘나라로 가득 차 있다. / 모든 평범한 나무들이 하나님과 함께 불타오른다. / 그러나 볼 줄 아는 자만이 신발을 벗으며, / 다른 이들은 나무 주변에 몰려 앉아 검은 딸기나 줍는다.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오두막>, 409쪽)

전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각자의 집에서 핸드폰 화면을 보며 예배를 드리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또 성실히 일하던 사람들이 생계의 위협에 내몰리고, 어려운 이의 손을 잡고 위로하기는커녕,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모이지도, 함께 밥을 먹지도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홀로 고립된 것만 같고 허기짐과 불안이 더해지는 지금, 우리는 더없이 간절하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를 묻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미처 건드리지 못했던 어둡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각자의 마음 깊은 곳, 오두막과 같은 곳에 이미 하나님은 따듯한 불을 피워놓고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는지.

<오두막>에서 주인공 ‘맥’을 기다리고 있었던 하나님(들)은 참 수다스럽고 분주했다. 오두막에서의 그 시간을 통해 ‘맥’은 깊은 어둠을 뚫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신앙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촐싹거리고 바보스런 웃음을 짓는 것 같아도, 그 속에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고, 고통에 대한 공감이 있고, 삶에 대한 진실성이 있다면 그것이 삶을 치유하며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삶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수다스러움으로 나의 일상을 함께 하실 하나님! 그리고 나의 고통에 그 누구보다도 촐싹거리며, 눈물 흘리실 하나님 생각에 뭔가 설레는 맘과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고, 앞치마도 하고 싶다. 파파와 함께!

 

이관택 목사(라오스평화선교사)

이관택 목사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