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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여름밤》 (2019)

기사승인 2021.01.19  00:21:56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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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남매의 여름밤》 (2019)

 

굵직한 줄거리를 전개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으로 관객을 끌고 가는 영화가 있는 반면, 비상한 줄거리 없이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감정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2019년에 제작되었고 2020년 여름에 개봉한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당연히 후자에 속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만큼 줄거리라 할 것은 지극히 간단하다. 이혼 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중년의 가장은 남매인 자녀를 데리고 잠시 자신의 아버지 집에 얹혀살기로 작정한다. 때마침 부부 문제로 집을 나온 가장의 여동생 역시 아버지의 집에 들어와 지낸다. 그렇게 여름 한두 달을 아버지 남매와 자녀 남매가 할아버지 집에서 보내게 되는 이야기, 이것이 줄거리의 다다.

영화는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되었을 누나의 시선을 중심에 두고 진행된다. 철없는 초등학생 남동생이 아무 거리낌도 없이 아빠와 이혼한 엄마를 만나 선물을 받아올 때 아직까지도 엄마에 대한 섭섭함과 그리움, 미움과 사랑의 감정을 구별해낼 방법을 찾지 못해 동생에게 화를 내기만 하는 누나 옥주는 할아버지, 아버지, 고모, 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짧은 여름날을 지낸다. 그리고 짧은 여름을 거치며 옥주는 자란다.

어른 남매와 어린 남매는 서로 닮아 있다. 어른 남매는 어렸을 때 분명 저 어린 남매와 같았을 터이고, 어린 남매는 커서 저 어른 남매와 비슷한 모습을 지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병든 노인으로서의 할아버지가 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영화는 ‘가족’이라는 단어로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들을 보여준다. 아니, 보여준다기보다는 고스란히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 맞겠다. 영화 속 가족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고스란히 지금 내 안에 있는 감정들, 혹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이니 말이다. 때론 비겁하기도 하고, 때론 이기적이기도 하고, 때론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역시 때론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론 조건 없는 애정을 받기도 하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애증.

할아버지를 닮은 할아버지의 이층 양옥집은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조용하나 든든한 안온함과 평온함을 선사해준다. 70년대 지어졌을 이 양옥집을 감독은 인천 어디쯤에서 기어이 찾아냈다고 한다. 그 시절을 살았을 사람들이라면 ‘아, 우리 집도 꼭 저랬는데’ 싶은 이층 양옥집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이 영화 속의 집은 저 옛날 ‘할아버지네 집’, ‘할머니네 집’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었던, 잊고 있었던 그 안온함과 평온함을 불현듯 불러일으킨다. 별 사건도 없이 잔잔히 감정만을 따라가는 이 영화를 유수한 평론가들이 올해 개봉한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는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고모, 누나, 동생. 영화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묘하게도 영화 속 가족은 모두 같은 성씨를 가진 구성원들이다. 다른 성을 지니고 이후에 새로이 추가된 가족구성원인 엄마와 고모부는 최소한 영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함께인, 일부가 아니라 전체의 삶을 공유한 가족의 모습만을 한정적으로 보여준다. 전 삶을 함께 공유했다는 사실이 지닌 감정의 파장은 또 얼마나 큰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그 호칭을 가르쳐주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한 아버지의 자녀로서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남매의 호칭으로 부른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라는 한 성씨를 지닌 형제, 자매, 남매인 셈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남매라는 가족의 경험으로 그리스도인들 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본다면 이 또한 색다른 묵상의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음악 이야기. 가족과 관련된 가장 큰 감정 중 하나는 그리움과 미련이 아닐까? 영화는 가족들 사이를 이어주고 감정의 내면을 보여주는 노래로 신중현의 <미련>을 골라 들려준다. 그것도 임아영, 장현, 김추자의 세 가지 버전으로. 추억을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 좋은 선택도 없지 싶은 화룡점정의 선곡이다.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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