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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장정 속 혐오와 차별, 왜 문제인가?

기사승인 2021.02.04  21:51:10

박경양 kmpeac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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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장정 속 혐오와 차별, 왜 문제인가?

 

박경양 목사 (평화의교회 담임)

 

1. 혐오와 차별

혐오는 보호돼야 할 특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격앙되고 불합리한 비난, 적의, 증오의 감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차별적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편견과는 다르다. 또 ‘혐오’는 어떤 감정 상태나 견해를 나타내는 것으로, 실제로 표출되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또 표현은 내면적인 어떤 견해나 생각을 외부에 전달하는 모든 것이다.

1920년대부터 미국에서 인종차별 표현에 명예훼손죄가 적용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1960년대 흑인민권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 성 소수자 권리 운동이 확산하면서 성별, 성적지향, 종교, 나이, 신체적·정신적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이나 감정을 담은 용어로 사용하게 됐다. 이후 1980년대 중반 뉴욕시에서 인종적 동기로 이뤄진 살인사건들이 사회 문제화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표현인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인의 번역어가 ‘혐오표현’이다.

혐오표현이란 인종, 종교, 성적 지향성, 정치적 지향성, 국적, 민족, 피부색, 성별 등을 이유로 이들을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혐오표현 대상은 대개 편견과 조롱의 대상으로 여겨져 온 사회적 소수자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핍박을 받은 경험이 있는 집단이다. 어떤 사회든지 열등하게 취급을 당하거나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고 그들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소외되는 소수자이자 사회적 약자다. 그런 점에서 모든 혐오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혐오표현은 표적 집단에 대한 차별의식을 확산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인종, 이름, 나이, 성, 정치관, 능력, 외모 등을 기준으로 사람을 구별하고 구별 당하는 모습을 우리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일상적으로 목격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구별 중 허용되는 구별은 어떤 경우이고, 허용되지 않는 구별은 어떤 경우인가를 기준으로 허용되는 정당한 구별과 허용되지 않는 부당한 차별은 구분된다. <차별이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데버러 헬먼은 사람의 동등한 도덕적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 부당한 차별이라고 말한다. 부당한 차별은 사람을 구별하는 행위를 통해서 누군가를 비하할 때 발생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혐오’와 ‘차별’은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2. 차별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

성서는 명백하게 차별을 반대하고 있다. 창세기 1:27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인간에 대한 차별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약성서 곳곳에서 예수와 사도들은 차별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복음서 7:1에서 예수는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11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하는가 하면, 사도행전 15:9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라고 전하고, 에베소서 6:9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라고 강조한다. 또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2:1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2:9에서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3. 차별과 감리회 <교리>

교리는 체계화된 종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을 뜻하는 것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근거와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공한다. 요한 웨슬리는 성공회의 39개 조 신앙신조 중 칼빈의 예정론과 출교정신이 포함된 17조와 33조 등 14개 항을 삭제한 25개 조를 감리회 종교강령으로 발표했다. 또 요한 웨슬리는 < 연합신도회 총칙>에 감리회 신자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신앙생활 지침을 담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1930년 미국연합감리회로부터 독립하면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차원의 독자적인 교리의 핵심을 <교리적선언>과 <사회신경>에 담아 발표했다. 당시 감리회는 <교리적선언> 서문에서 “우리 교회의 회원이 되어 우리와 단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교리적 시험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그의 품격과 행위가 참된 경건과 부합되기만 하면 개인 신자의 충분한 신앙 자유를 옳게 인정한다. ”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감리회 교리는 차별과 관련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교리와 장정>은 제1편 제1장 제2절에서 1930년 12월 2일 창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는 “한국 감리교회는 그 설립 취지로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감리교회’ ‘조선적 교회’의 3대 원칙을 선포하였으며 신앙 및 신학 원리로 8개 조 <교리적 선언>과 16개 조 <사회신경>을 채택하였다”고 전한다. 또 해당 총회에서 웰치 감독은 “진정 감리교회는 진보적이므로 생명이 있는 이의 특색을 가졌으니 곧 그 시대와 지방을 따라 자라기도 하며 변하기도 할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감리회는 진보적인 교회라는 것이고 시대와 지방을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적인 교회를 천명한 감리회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극우세력과 입장을 같이하며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감리회의 기초가 된 연합신도회는 <연합신도회의 총칙> 서문에서 “이 회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 가지 조건뿐이니 곧 ‘장래의 노하심을 피하고 자기들이 죄에서 구원함을 얻고자 하는 소원’이다.”라고 적고 있고,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제1회 총회에서 발표한 <교리적 선언> 서문에서 “우리 교회의 회원이 되어 우리와 단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교리적 시험을 강요하지 않는다.”며 “웨슬리 선생이 연합신도회 총칙에 요구한 바와 같이 우리의 입회조건은 신학적보다 도덕적이요, 신령적이다. 누구든지 그의 품격과 행위가 참된 경건과 부합되기만 하면 개인 신자의 충분한 신앙자유를 옳게 인정한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한국교회가 문제 삼는 동성애의 경우 매우 민감한 신학적 문제이자 교리적인 문제다. 따라서 ‘교리적 시험’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는 감리회에서 매우 민감한 교리적 문제를 이유로 차별과 혐오에 앞장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1930년에 발표한 <사회신경>에서 인종과 상관없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의 부여, 인종과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철폐, 정조 문제에 있어 남녀 간 차별이 없어야 함을 고백하고 있고, 1997년에 발표된 <사회신경>에서는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기 때문에 성별, 연령, 계급, 지역, 인종 등의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배격하며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 건설에 헌신한다.”고 고백한다.

감리회는 사회신경에서 차별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차별의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또 반대하거나 철폐해야 할 차별에 제한도 없다. 이토록 차별 반대와 철폐를 신앙적 과제로 삼고 있는 감리회에서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는 것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4. 감리회 <교리>에 반하는 <장정> 속 차별

장정(章程)은 본래 ‘여러 조목으로 나누어 마련한 규정’을 의미한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법과 규칙인 ‘The Book of Discipline’을 ‘장정’으로 번역한 것이다. 미국 연합감리교회가 법과 규정을 정한 책을 ‘헌법’이라 부르지 않고 ‘Discipline’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요한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이 신자들에게 규칙적인 신앙 ‘훈련’을 위해 정한 규율을 ‘Discipline’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Discipline’이 한국에서 ‘장정’이라고 번역된 이유는 감리회 선교 초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조직체의 회칙이나 규칙, 또는 조례나 세칙을 ‘장정’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리회 ‘장정’의 다른 말은 ‘교회법’인 셈이다. 교회법은 교회의 고유한 조직과 운영, 그리고 신자들이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제정한 법을 말한다. 교회법은 기독교인의 신앙과 행위의 기준을 의미하는 교리 또는 신경에 기초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미국연합감리회의 ‘The Book of Discipline’을 ‘장정’이라고 번역한 후 지금은 ‘교리’와 ‘장정’으로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감리회가 추구하는 신앙의 기본인 ‘교리’와 이 ‘교리’에 기초한 세부규정을 구분하기 위해서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세부 법규에 해당하는 ‘장정’이 ‘교리’에 반하거나 ‘교리’를 넘어서서 규정하는 것이 있다면 이는 ‘교리’를 위반한 것으로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위헌’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리회 ‘장정’ 속 차별은 왜 문제인가?

명확성 원칙에 반하는 자격 제한 : 조직과 행정법 제43조(감리회 교역자의 공통자격 및 제한) 제2항 제3호는 “음주, 흡연, 마약, 도박, 동성연애(결혼) 등을 하거나 부도덕한 생활을 한 이”는 감리회 교역자로 파송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80조 제6항 제3호 역시 “음주, 흡연, 마약, 도박, 동성연애(결혼) 등을 하거나 부도덕한 생활을 한 이”에게는 정회원 허입자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떤 행위가 ‘동성연애(결혼)’ ‘부도덕한 생활’에 해당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법 집행자의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을 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이동환 목사의 재판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법조문의 자의적 해석은 금지된다는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재판법 : 재판법 제3조(범과의 종류)는 제8항에서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와 제13항에서 “부적절한 결혼 또는 부적절한 성관계(동성 간의 성관계와 결혼을 포함)를 하거나 간음”을 범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찬성’이나 ‘동조’ 또는 ‘부적절’이라는 표현은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개인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 역시 이동환 목사의 재판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차별적 자격제한 : 조직과 행정법 제50조 제②항‌“입교인 100인 이하의 교회에는 부담임자를 파송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95조 제3항과 제106조 제②항, 제137조 제②항은 “최근 2년간 자립교회의 담임자”에 한하여 감리사, 감독, 감독회장의 자격을 교회의 규모에 따라 차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 규정은 감리회 내 직책 중 유일하게 교회의 규모를 기준으로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 또 평신도의 경우 그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만약 국가가 국민이 소유한 재산의 규모를 기준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 부여를 결정한다고 생각해 보라.

 

5. 감리회 <교회법> 속 차별, 왜 문제인가?

감리회 <장정>에 담겨있는 차별은 성서의 가르침에 반한다. 차별은 성서의 가르침에 명백히 반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에 대한 차별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성서의 가르침에 반한다는 점에서 교회의 신앙에 배치된다. 또 차별은 상대방에 관한 판단 즉 심판의 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에도 반하는 것이다.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고, 사도 야고보 또한 사람에 대한 차별은 죄라며 지속적으로 차별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리회 장정 속 차별 행위는 비판받아야 한다.

감리회 <장정>에 담겨있는 차별은 감리회의 교리에 반한다. 1930년 12월 2일 ’기독교조선감리회’ 창립총회에서 웰치 감독은 “진정 감리교회는 진보적이므로 생명이 있는 이의 특색을 가졌다.”라고 설명한 데서 보듯 감리회는 진보적인 교회다. 때문에 여성 장로와 여성 목사제도를 창립 초기부터 시행했다. 또 감리교회의 기초인 <연합신도회의 총칙>은 감리회 회원의 조건을 오직 한 가지 “죄에서 구원함을 얻고자 하는 소원”이라고 적고 있고, 1930년 제1회 총회에서 발표한 <교리적 선언> 서문 역시 감리회는 “사람들에게 아무 교리적 시험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차별금지법 특히 최근 기독교계가 문제 삼고 있는 ‘성적지향’문제는 성서의 해석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하지만 감리회는 이토록 중요한 문제를 개인의 감정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이 문제와 관련한 합리적인 토론도 연구도 없이 마치 인민재판을 하듯 덤벼드는 행태가 신앙적이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차별과 혐오에 대한 감리회 내 일부 세력의 태도는 감리회 신자의 사회생활에 기본적인 태도이자 지침이라 할 수 있는 <사회신경>에도 반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1930년 제1회 총회에서 발표한 <사회신경>에서 인종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와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고백하고, 인종과 국적 그리고 성별과 관련한 차별이 없어야 함을 고백하고 있고, 1997년에 발표된 <사회신경> 역시 “성별, 연령, 계급, 지역, 인종 등의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같이 감리회는 사회신경에서도 차별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교리와 신조의 하위 규칙인 법률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차별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일반의 상식과 보편주의에 반한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7년에 한국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정부가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그리고 통합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의원입법으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이로 인해 2016년에 한국이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에 오른 후에는 다른 이사국들로부터 적지 않은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2017년 10월 9일 한국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특히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차별금지 사유를 둘러싼 공감대 형성에 한국정부가 적극적이고 효과적 조치를 충분하게 취하지 않은 것을 우려한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긴급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정부는 유엔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권고에 반하는 조치를 취해왔다고 시민사회는 비판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기독교계의 반발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을 이미 제정했고, 인권위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선 성인 10명 중 9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고 있다. 이렇듯 국제기구인 유엔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력히 권하고,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일컬어지는 OECD 회원국 대부분이 이미 법 제정을 완료했고, 국민의 열 중 아홉이 찬성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교회가 반대에 앞장서는 것은 교회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입법 배경과 절차가 비정상적이다. 감리회 <장정>에 동성애와 관련한 조항이 처음 포함된 시기가 2015년이다. 당시 감리회가 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해 1년 반 정도 활동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교리와 장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 명의 장정개정위원이 동성애 관련 조항을 <교리>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고, 이것이 여의치 않자 교역자의 자격에 넣을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과 조직과 행정법 등을 다루는 분과위원회에서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입법의회 차원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성명형식의 입장을 발표하는 것으로 정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감리회 견해를 담은 성명에는 감리회는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것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담기로 했다. 하지만 입법의회가 끝난 후에야 동성애 관련 조항이 재판법을 다룬 분과위원회에서 범과에 포함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정>에서 대표적인 차별조항인 동성애 관련 조항은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매우 중요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공론화 과정은 물론 합리적인 연구나 토론조차 없이 졸속으로 입법되었다.

조직과 행정법 제43조(감리회 교역자의 공통자격 및 제한) 제2항 제3호는 “음주, 흡연, 마약, 도박, 동성연애(결혼) 등을 하거나 부도덕한 생활을 한 이”는 감리회 교역자로 파송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80조 제6항 제3호 역시 “음주, 흡연, 마약, 도박, 동성연애(결혼) 등을 하거나 부도덕한 생활을 한 이”에게는 정회원 허입자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죄형법정주의 원칙 중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또 재판법 제3조(범과의 종류) 제8항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와 제13항 “부적절한 결혼 또는 부적절한 성관계(동성 간의 성관계와 결혼을 포함)를 하거나 간음”이라는 규정은 죄형법정주의 원칙 중 법조문의 자의적 해석은 금지된다는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기본원칙조차 충족하지 못한 규정이다.

차별적 자격제한 : 조직과 행정법 제50조 제②항‌“입교인 100인 이하의 교회에는 부담임자를 파송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95조 제3항과 제106조 제②항, 제137조 제②항은 “최근 2년간 자립교회의 담임자”에 한하여 감리사, 감독, 감독회장의 자격을 교회의 규모에 따라 차별적으로 하용하고 있다. 이 규정은 감리회 내 직책 중 유일하게 교회의 규모를 기준으로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 또 평신도의 경우 그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특히 교회에서 돈의 많고 적음을 자격부여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감리회를 넘어서 기독교 역사의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비신앙적이고 몰상식한 규정이 아무런 문제 제기도 없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6. 차별금지법에 대한 각 종교계의 입장

개신교의 경우

급진진보파 : 동성애 행위 일반은 죄악은 아니며, 동성 강간, 강제추행, 난교, 매춘 등만이 죄악이다. 동성애 자체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류의 자연스러운 특성이기에 정죄될 수 없다. 따라서 동성결혼 역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받을 일이다. 물론 동성애 커밍아웃을 한 인물이 목사안수를 받는 것도 허용될 수 있다.

온건진보파 : 원론적으로는 동성애 행위는 죄악이긴 하지만, 동성애 문제에 신경 쓰기보다 전쟁, 경제적 양극화와 같은 더 큰 죄악에 신경을 써야 한다. 동성애자들을 '정죄' 하면서 우리가 마치 의인인 그것처럼 구는 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다. 동성결혼에 대한 교회법적 용인 및 정결 서약을 하지 않은 동성애자의 목사 안수 인정 여부는 더 많은 신학적 논의가 필요하다. 별개로 세속정부의 동성결혼 입법화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온건보수파 : 우리는 모두 죄인이므로 교회 공동체는 동성애자들을 단죄하기보다는 품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성애 성향 자체는 죄라고 할 수 없지만, 동성애 행위는 성경에서 분명히 금하고 있는 죄악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동성애 행위를 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세속정부의 동성결혼 입법화는 교회와 사회에 부정적인 일이지만, 말세의 징조로만 이해하되 직접 거부운동의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강경보수파 : 동성애는 다른 죄악보다도 특별하게 큰 죄악이며, 동성결혼이 허용된 국가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할 것이다. 동성애 성향도 죄악이므로 탈동성애를 하지 않는 이상 교회에 들어가서도 안 된다. 동성애에 대한 형사처벌은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한다. 세속정부에 의한 동성결혼 입법화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가능하다면 시민단체나 정당 등의 형태로 세속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동성결혼 입법화를 저지해야 한다.

가톨릭교회의 경우

<가톨릭교회 교리서> 2357은 “교회는 전통적으로 “동성애 행위는 그 자체로 무질서”라고 천명해 왔다. 동성애는 자연법에도 어긋난다. 동성애는 성행위를 생명 전달로부터 격리시킨다. 그 행위들은 애정과 성의 진정한 상호 보완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성의 성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 교리서> 2358은 “상당수의 남녀가 깊이 뿌리박힌 동성애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경우는 스스로 동성연애자의 처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무질서인 이 성향은 그들 대부분에게는 시련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으며,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들의 처지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을 주님의 십자가 희생과 결합시키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교리서> 2359는 “동성애자들은 정결을 지키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내적 자유를 가르치는 자제의 덕으로, 때로는 사심 없는 우정의 도움을 받아서, 또한 기도와 성사의 은총으로, 그들은 점차 그리고 단호하게 그리스도교적 완덕에 다가설 수 있고 또 다가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그리스도 안의 한 지체인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포괄적 평등법은 그 누구도 주님의 은혜로부터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우리 시대의 포괄적 복음”이라는 기독교계 성명에 동참했고,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도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에 동참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7월에 동성애에 대한 질문에 “만약 게이인 사람이 주님을 찾고 하느님의 바른 뜻을 구한다면,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심판하겠습니까?”하고 답했고, 2020년 10월 21일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의 인터뷰에서 “동성애자들도 주님의 자녀들이며 하나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갖고 있다”면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불행해져선 안 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결합법(Civil union law)이다. 이는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이 길을 나는 지지한다"고 밝혔다.

정교회의 경우

정교회는 성경과 교부들의 일관된 가르침 반한다는 이유로 성 소수자가 교회의 신자로 들어올 순 있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라 생각하고 끊임없는 기도와 성사생활, 유혹을 이겨내 하느님과 교회와 일치되는 생활을 유지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정교회는 인간 구원을 사람이 하느님을 닮고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신화(Theosis)에의 지향이라고 보기 때문에 인간성(Sexuality)의 목적에 어긋난 동성애를 비롯한 성 소수자 성을 인간 본성의 왜곡이자 회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스계 정교회 등 서구권 정교회에서는 동성애 문제를 부드럽게 다루고 사목에서도 융통성을 취하는 편이지만, 보수적인 러시아 정교회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단죄한다. 하지만 보수적인 러시아 정교회조차도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거나 교회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는 동유럽과 러시아의 정교회와 서구권 정교회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불교의 경우

불교계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지지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부처님께서는 2500년 전에 계급타파를 주장하셨고 지금도 인간만이 아니고 만물이 평등하다고 했다”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해 찬성을 뜻을 밝혔고,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작은 풀, 큰 나무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내리는 모습이 모두가 지향해야 할 세상”이라며 국회에 법안 통과를 주문한 성명을 발표했으며,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매주 목요일마다 광화문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조계종은 차별 행위에 관한 벌칙조항을 삭제하고 종교를 차별 예외조항에 추가한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의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은 국가인권위원회 안에서 크게 후퇴한 것은 물론 종교 간 갈등과 증오 범죄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안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교회의 경우

미국 개신교 중 비교적 규모가 큰 남침례교와 연합감리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동성혼에 열린 태도를 보여주고 있고, 2014년 통계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 사는 종교인 중 "동성애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불교 신자는 88%, 유대교 신자는 81%), 힌두교 신자는 71%, 가톨릭 신자는 70%, 개신교 신자는 66%, 정교회 신자는 62%가 ‘예’라고 답했다. 반면 이슬람 신자는 45%,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는 36%, 모르몬교 신자는 36%, 여호와의증인 신자는 16%였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경우는 오랜 토론의 시간을 거쳐 동성애 문제를 정리하고 있다. 1971년 진 레겟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후, 남텍사스연회는 그의 목사 자격을 박탈하자, 1972년 애틀란타 총회에서 사회생활원칙 연구특별위원회는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거룩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로 받아들이며, 그들을 교회 일원으로 환영한다. 더 나아가 사회는 그들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라는 위원회의 결정을 발표했다. 레겟 목사는 총회에 발의된 사회생활원칙을 더 발전시킨 다음 통과를 호소했고, ’비록 동성애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성서의 가르침에도 위배되는 것이지만’이라는 문장이 첨가한 후 통과되었다. 이것으로 인해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동성애에 관한 공개 토론이 시작되었고, 이후 동성애 문제는 총회 때마다 등장하는 논쟁의 단골 주제였다. 그 후 50년 동안 계속돼 온 토론의 결과 <결별을 통한 화해와 은혜의 의정서>를 기초로 동성애 지지와 반대를 중심으로 결별하기로 했다.

독일, 영국, 캐나다 교회의 경우

독일 개신교 연합기구인 EKD는 수년간의 토론 거친 후 1996년에 성 소수자를 인정하는 합의 문서를 발표했고, 영국 감리교회는 1993년에 “총회는 레즈비언과 게이 남자들의 교회 참여와 교회를 인정하고, 긍정하고, 축하한다. 총회는 감리교인들이 억압과 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신앙의 순례를 시작하고, 정의와 인권을 위해 일하며, 그들의 성별이 무엇이든 사람들에게 존엄성과 가치를 줄 것을 요구한다.”는 합의서를 발표했다. 캐나다 장로교회는 1994년에 보수적이지만 신학적 고민이 묻어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했고, 2017년 총회는, ‘역사적으로 교회가 동성애자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포용하며 함께 죄인임을 고백하기보다는 소외시키고 무시하고 업신여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자’는 동의안을 채택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에 동의했다. 또 성경은 간음, 강간, 근친상간, 혼음, 동성 관계를 하나님의 창조 패턴에 대한 성적 왜곡의 증거로 보지만, ‘동성 관계’를 간음, 강간, 근친상간, 혼음과 같은 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성경은 이성애적 행동이나 동성애적 행동을 불문하고 간음, 강간, 근친상간, 혼음을 매우 분명히 거부한다는 것에 우리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7. 이야기를 마치며

<차별금지법> 문제는 향후 한국교회의 미래를 좌우할 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이 우리사회의 극우세력이고 그 전면에 기독교 내 극우세력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경우 그 책임의 대부분은 한국교회가 지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교회가 우리사회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차별과 혐오를 보호하고 또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는커녕 극우 기독교 세력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전 국민 복음화와 교회성장은 꿈에라도 꿀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1년간 한국교회는 이웃의 생명권 존중은커녕 하잘것없는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이웃을 죽음의 위험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을 서슴지 않는 세력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에 한국교회는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문제를 두고 또다시 사회를 시끄럽게 할 것이다. 문제는 차별금지법은 OECD 국가 중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이미 제정되었고, 유엔이 세계의 모든 나라에 제정을 권고하고 있으며, 국민의 열 중 하나는 제정에 찬성하는 주제라는 점이다. 또 동성애에 대해 세계교회는 반대에서 찬성으로 차츰 변화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신앙에 하자가 있거나 누군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생각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문제에 목숨을 건듯 달려드는 것은 미련한 짓이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짓이다. 그것은 신앙을 지키는 일도 아니거니와 교회를 위한 일도 아니다.

성 어거스틴이 말했다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격언처럼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 ‘진보적인 교회’를 자임하며 “진정 감리교회는 진보적이므로 생명이 있는 이의 특색을 가졌으니 곧 그 시대와 지방을 따라 자라기도 하며 변하기도 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던 감리회가 서게 해야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교회는 어느 날인가 세상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고, 흐르지 않는 물은 썩듯이 미래가 아닌 오늘의 미숙한 생각을 고집하는 한 한국교회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박경양 kmpeac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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