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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기사승인 2021.02.17  23:41:28

정유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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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허블, 2019년

언제부터인가 과학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신학을 전공하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분야의 책들만 편협하게 읽어왔던 터였다. 거기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오랫동안 해왔고 분명히 큰 동력이 되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어떤 회의감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이따금 받았다. 내가 했던 공부와 노력이 과연 이 세상에 티끌이라도 도움이 되는 걸까, 왜 계속 세상은 나빠지고만 있는 걸까 하는 그런 종류의 생각들.

그럴 때 과학은 도움이 됐다. 전문 서적을 읽을 만큼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어서 짧고 쉽게 설명해주는 유튜브 영상들이 퍽 좋았다. 과학은 내가 익숙한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했는데, 뭐랄까, 보다 ‘실제적’이고 ‘물질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과학적 난제가 풀리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류는 경험이 확장되거나 질병을 치료하는 등 ‘실제적인’ 도움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런 걸 보다보면 붕 떠있던 발이 비로소 땅을 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아졌다.

아주 오랜만에 소설책을 손에 잡았다. 한동안 내 삶에서 ‘실제적인’ 무언가가 부재하다는 생각에 소설을 멀리한 지 오래였다. 머리를 좀 식히고 싶어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베스트셀러 칸에 올라와 있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서정적인 제목의 책을 집었다.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별 기대 없이 펼쳐보았는데, 예상과 달리 장르가 ‘SF(science fiction)’다. 이 책은 총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소재는 다르지만 모두 엄청난 과학적 진보가 이루어진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우주 정거장을 통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외계의 존재를 만나 소통하기도 한다. 사람은 데이터가 되어 영원히 보관될 수도 있고 그것이 현재의 납골당을 대신하는 세상이다. 그뿐인가. 감정은 더 이상 마음속에 머무르지 않고 물건에 담겨 팔리기도 한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흥미롭고 즐겁다. 그런데 소설의 중심은 그 세계를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다. 외계의 존재들에 맞서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투가 벌어진다거나 핵심적인 과학기술의 발견으로 인류를 구원하게 되는 진취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에 압도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황폐화된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마치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자연스레 그것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가까운 미래에 변화된 세상을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곱 편의 소설에 담겨있다. 

미래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과학기술이 발전했으니 인류의 경험은 확장되었을 테고 코로나19 바이러스 따위는 통제하고도 남았으리라. 그만큼 세상은 진보하고 삶은 더 윤택해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이 소설이 그리는 세계에서도 여성, 이주민,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고 정상성을 획득하지 못한 존재들은 기록의 저편으로 사라지며 자본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가치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야 만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 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중략)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하나인 ‘안나’의 입을 통해, 우리는 멀고 먼 어떤 시대에도 ‘남겨진 자들’이 있다는 것, ‘외로움’이 있다는 것을 듣는다. 어떤 시대, 그것은 과학이 발전한 시대일 수도 종교가 발달한 시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세상이든지 남겨지고, 떨어지고, 삭제되어버리는 이들이 생겨나게 된다면 사람들의 모든 추구와 열정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소외된 사람들의 곁에서, 쉽게 지워지는 이들을 붙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해야 할 일이라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소설 속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데이지, 희진과 루이, 류드밀라와 그들, 안나, 정하, 김은하, 최재경을 통해. 그것이야말로 붕 떠있던 발을 땅에 단단히 딛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과학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다시금 다리에 힘을 얻었다.

“언젠가 우리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렇게 먼 미래에도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하며 닿기를 갈망할 것이다.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 ‘작가의 말’ 중

정유은 목사(라오스평화선교사, 꿈이있는교회)

정유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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