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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유혹을 물리치라

기사승인 2021.02.21  01:15:13

황광민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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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장 12-14절

죄의 유혹을 물리치라

 

가. 신앙생활 중도에 탈락할 수 있다.

12절,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 본문은 신앙생활에서 중도에 탈락할 수 있으므로 죄의 유혹을 적극적으로 물리치라는 권면의 말씀이다. 신앙생활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도식에 맞지 않는다. 신앙생활은 중도에 탈락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에서 떨어질 수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신앙생활이 중도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되...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13:20-22)라는 말씀을 참조하라. 주님은 우리가 열매를 맺기까지 계속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라고 하였다. 중도탈락은 불행한 일이다. 방심하지 말고 계속 성장하자.

 

나. 죄의 유혹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13절,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유혹은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다. 유혹은 죄를 짓게 하고 결국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물론 유혹을 받는 것이 죄는 아니다. 다만 유혹을 받고 이에 동조하여 자신의 의지로 유혹을 따르면 죄가 된다.

*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유혹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누구든지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본문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를 참조하라. 마귀는 가장 위대한 인물인 예수님을 유혹했다. 마귀는 가장 행복한 동산 에덴에 있던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다. 누구나 유혹에 방심하면 안 된다.

* 본문은 유혹에 넘어가서 완고하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여기서 ‘완고하다’(스클레뉘노)는 마음이 굳어지고, 완악하게 되고, 거칠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바로의 강퍅함과 같은 것이다. 바로가 고집불통이 되고,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지고, 결국 잔인해졌던 것과 같다. 유혹은 초장에 물리쳐라.

 

다. 초지일관으로 신앙의 본질을 지켜라.

14절a,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 신앙생활 중도에 탈락하지 않으려면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초지일관으로 신앙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 본문은 신앙의 본질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시작’(아르케)은 ‘근본’ 또는 ‘기본원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리고 ‘확신’(휘포스타시스)도 ‘본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는 흔들리지 말고 신앙의 본질을 지키라는 말씀이다. 신앙의 본질을 떠나면 이단이 되거나 사이비종교로 변질된다.

*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신앙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천사보다도, 모세보다도, 대제사장보다도 더 위대한 분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라는 말씀으로 본문을 시작했다.

* 현대의 종교다원주의는 예수님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말씀의 절대적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선생이나 모범으로는 인정하지만 구세주나 대속자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것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잘못이다. 본질을 지켜야 한다.

 

라. 신앙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인도한다.

14절b,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 본문은 그리스도와 뜻을 같이 하고 온전히 따른 사람들은 그와 영광을 함께 한다고 약속한다. 이 말씀은 “하늘에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1절)에게 주신 말씀이다. 여기서 ‘받은’(메타코스, 형)은 ‘참여한’이라는 뜻이다. 이는 14절의 ‘함께 참여한 자’(메타코스, 명)와 맥을 같이 한다. 즉 부르심을 받은 상태가 아니라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 그리고 본문에서 ‘함께 참여한 자’(메타코스)는 ‘동무’ 또는 ‘형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의 동무요 형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5). 신앙의 본질인 그리스도와 삶을 함께 하는 것이 영원히 복된 길이다.

* 바울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3:1-4)라고 한 말씀을 참조하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라. 그의 삶에 참여하라. 그리하면 그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황광민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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