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우리의 기억은 공정한가

기사승인 2021.02.21  23:38:43

김민호 목사

공유
default_news_ad1
   
 

우리의 기억은 공정한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 베트남과 전쟁의 기억>, 비엣 타인 응우옌, 더봄, 2019년)

“기억은 수집되거나 집단적인 것일 뿐 아니라, 기업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것이다. 기억은 징후이며 권력의 산물이고, 권력에 봉사한다.”(29) 

2019년 11월 기준으로, 19만 명이 넘는 베트남 사람이 대한민국에 체류 중이다. 222만 명의 외국인 중 중국에 이어서 베트남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략적으로 외국인노동자의 10%, 결혼이주여성의 30%가 베트남 국적이다. GDP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오른 한국이기에, ‘코리안 드림’을 품고 이주했을 것이다. 가장 위험하고 고된 노동을 그들이 감당해주는 까닭에 한국경제가 지탱되는지도 모른다. 몰염치하게도,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을 홀대하는 경향이 크다. 착취하고, 폭행하기까지 이르는 사건들이 그치질 않는다. 그들의 복지를 위해 애쓰는 고용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는 것이다. 허점투성이에, 논리비약임에 분명하지만, 베트남전쟁에서의 민간인학살과 묘하게 겹친다. 

산문집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소설 <동조자>로 미국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미국인 비엣 타인 응우옌(Viet Thanh Nguyen)의 글을 모은 것이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비평, 미술관과 전쟁기념관 등 전시회 후기, 오락게임에 대한 단상 등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지만, 그 내용의 결은 다 엇비슷하다. ‘기억의 불평등성’이라고 하면 느낌이 올까. 단적인 예로, 한국의 퇴역 군인들은 하미에 기념비를 세울 수 있었지만, 베트남은 한국에서 스스로 기억할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본문 속 바비 젤리저의 말을 재인용하는 게 낫겠다. “모든 이들이 기억의 생산에 참여하지만, 동등하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29) 

문화제국주의 앞에서 약소국들은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다. 오늘날 남의 땅을 침략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일은 문화매체를 통해 이뤄진다. ‘소독된 기억’을 심으며 역사마저 찬탈하고 있다. 기억 관련 산업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가진 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전 세계의 영화관으로, 집 텔레비전으로 배급되니 기억투쟁에서 그들은 패배할 수가 없다. 막대한 제작비가 소요되는 전쟁 소재의 할리우드 영화가 좋은 실례다. 기억에는 윤리적 감각이 필요하고, 탈식민주의 담론이 유효한 이유다.

전쟁의 비극성, 희생정신과 인류애, 애국심과 민족주의 등 어떤 숭고미를 노래하기도 하지만, 국력과시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선동하는 도구(‘무기화된 기억’)로 전락하기도 하는 게 전쟁영화다. 그 경계선은 어쩌면 종이 한 장의 두께인지도 모른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어떨까. 백인의 잔혹성을 폭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저자는 영화 속에서 타자화되는 이들을 주목한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그리고 위협적인 야만인이거나 얼굴 없는 피해자로 묘사되는 이들을 말이다. 그들은 추상적 개념이 되어 사라지거나, 주인공들이 죄책감을 느낄 때 스치듯 등장할 뿐이다. 

‘가진 자’들의 부채감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에 봉사하는 영화, 저격수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학살에 참여하게 만드는 비디오 게임, 교묘한 속임수로 망각을 유도하는 박물관. 연금술 같다. 전쟁이라는 공포를 오락으로 제련해 내다니. 그 결과, 감정이입, 공감능력이라는 미덕은 파괴되고, 윤리적 마비상태에 이른다.

2018년 4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을 통해 대한민국은 유죄선고를 받은 바 있다. 구속력이 전혀 없는 모의재판이었지만, 공정한 기억은 가능한가는 물음에 풀뿌리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응답한 결과다. 또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독자들의 반응이 선취된 것이기도 하다. 용산 전쟁기념관, <하얀 전쟁>과 <국제시장> 등 베트남전쟁 소재의 한국영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라는 노랫말 등등을 해석하는 저자의 읊조림에 한없이 부끄러워했을.
 
그밖에, 영화 <그랜 토리노>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었고, 마라이 학살을 배경으로 한 남 레(Nam Le)의 소설 서평도 흥미로웠다. 궁금한가. 직접 확인하시라.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

김민호 목사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