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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국에서 변이된 장례음식의 상징, 육개장

기사승인 2021.03.02  23:51:22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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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아내와 함께 무엇을 먹을까? 이야기 나누다가 교회 가까이 있는 육개장 전문점에 가게 되었다. 메뉴 중에 흔치않은 흰색 육개장이 특이해 보였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매콤한 육개장을 주문했다. 고사리와 숙주, 그리고 대파와 소고기 그리고 다진 양념을 넣고 푹 끓인 육개장의 국물 맛이 칼칼하고 시원했다. 

나는 육개장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매운 음식이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에 더더욱 자주 먹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게 될 때마다 돼지고기 편육과 함께 꼭 등장하는 음식이 육개장이기 때문에 일 년에 꽤 여러 번 먹게 된다. 

결혼식에서 꼭 먹는 음식이 잔치국수나 갈비탕이라면 장례식장에서는 왜 유독 육개장이 나오게 된 것일까? 몇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이유는 육개장의 실용성 때문이다. 육개장에는 고춧가루와 소금이 많이 들어가 있어 쉽게 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질긴 양지나 업진, 우둔, 사태 등을 쓰기 때문에 보통 오래 끓여도 고기가 잘 흐트러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런 소고기 부위들은 오래 끓이지 않으면 맛이 안 나기 때문에 계속 끓이고 밤낮없이 상을 내는 상가에 적합한 음식이다. 또한 다른 음식은 변별력이 높은 반면 육개장은 끓이고 또 끓여도 맛의 변량이 적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쉽게, 빨리, 많이 장만할 수 있는 음식으로 육개장이 요긴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장례식장에서 먹었던 육개장은 늘 맛이 있었다. 전문장례식장 제도가 1990년대 초부터 정착이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례식장 식당들은 20-30년 정도의 육개장을 끓이는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 몇 십 년씩 유지되는 육개장 맛집이 몇이나 되겠는가? 

육개장의 재료는 소고기이다. 하지만 고기의 종류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닭고기로 요리하면 닭개장, 개고기를 넣으면 개장국이 된다, 돼지고기를 넣는 돈개장도 존재한다. 고기 대신 버섯을 넣은 버섯 육개장, 아예 두부와 산나물을 넣어 끓인 채개장도 있다. 

하지만 육개장의 출발은 개장국이다. 된장 푼물에 개고기를 넣고 끓인 것이 개장국이다. 조선시대 주막에서는 개고기를 끓인 국물, 개장국을 내놓았다.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개고기 대신에 쇠고기를 주재료로 사용하여 마치 개장국같이 끓인 육개장이 등장하였다. 쇠고기를 뜻하는 육(肉)과 개장국이 합해진 육개장이 대지주 양반집의 부엌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육개장은 탄생 이후 개장의 이름만 유지했을 뿐 그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육개장의 대중화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가능했다. 그 전에 비해 소를 노동의 도구인 동시에 먹을거리로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육개장이 유명한 도시는 대구이다. 대구에 190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크게 열렸던 큰 우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육개장이 발달했다. 일제강점기에 대구에서 유명한 음식의 이름은 ‘대구탕반(大邱湯飯)’이었다. ‘대구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국밥’이란 뜻의 대구탕반의 정체가 바로 육개장이다. 1929년 12월 1일 잡지 <별건곤>에 “대구의 자랑 대구탕반(大邱湯飯)”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육개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대구탕반은 본명이 육개장이다. 대체로 개고기를 한 별미로 보신지재(補身之材)로 좋아하는 것이 사람들의 통성(通性)이지만, 특히 남도지방에서는 ‘사돈 양반이 오시면 개를 잡는다‘고 개장이 여간 큰 대접이 아니다. 이 개장은 기호성과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정(私情)까지 살피고 요사이 점점 개가 귀해지는 기미를 엿보아 생겨난 것이 곧 육개장이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쇠고기로 개장처럼 만든것인데 시방은 큰 발전을 하여 본토인 대구에서 서울까지 진출을 하였다” 

조선시대 육개장은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았다. 1896년에 만들어진 조리서 <규곤요람>에는 된장 푼 물에 고기를 느리게 익히고 파를 넣고 후추와 기름을 쳐서 육개장을 만든다고 기록되어 있다. <별건곤>에서 밝힌 대구탕반과 조리법과 그 기본은 같다. 다만 후추가루대신 고춧가루를 사용한 것이 다르다. 

육개장의 원형이었던 개장(국)은 근대 이후 점점 ‘미개’의 대명사가 되어 결국 1940년대 이후에 이름도 ‘보신탕’으로 바뀌는 신세가 되다가 현재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육개장은 탄생 비밀을 이름 속에 그대로 간직한 채, 어떤 구박도 받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장국에서 변이된 오늘날의 육개장은 불과 100년 남짓의 역사를 지닌 음식이지만, 장례음식의 상징이자 소중한 한식메뉴로 사랑받고 있다.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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