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해피엔딩을 위한 행복한 종말론” 스바냐1장10절~18절

기사승인 2021.03.07  22:55:42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해피엔딩을 위한 행복한 종말론” 스바냐1장10절~18절

 

1. 균형 잡힌 종말신앙

 

① (10절~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어문에서는 곡성이, 제 이 구역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막데스 거민들아 너희는 애곡하라 가나안(장사, 무역상)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수운하는 자가 끊어졌음이니라”

▶ 앞에서 스바냐는 징벌의 대상자를 세 부류로 증거 했다. ‘방백들과 왕자들’, ‘이방의 의복을 입은 자들’, ‘문턱을 뛰어넘어서 강포와 궤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이다. 그들은 본분을 망각한 정치지도자, 호의호식하던 부요한 귀족, 불의한 탐관오리를 가리킨다. 한마디로 세상에서 잘 나가던 고위층에 대한 징벌이다. 스바냐는 계속해서 또 다른 징벌의 대상자를 적시한다. ‘어문에서는 곡성이’ 어문은 수산물이 왕래하던 문이다. ‘제 이 구역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제 일 구역이 왕궁을 중심으로 한 행정지역이라면 제 이 구역은 경제활동이 이루지는 상업지역을 가리킨다.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큰 산들은 왕이나 귀족 등의 정치 권력자를 가리키고 작은 산들은 중류층에 해당하는 상인들의 붕괴를 가리킨다. ‘막데스와 가나안(장사, 무역상)’ 상업이나 무역에 종사하던 이들의 거주지다. ‘은을 수운하는 자가 끊어졌음이니라’ 고대의 화폐로 쓰인 은을 통한 거래와 무역의 중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모든 경제활동이 중단될 것을 예고한다. (메시지성경)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아, 통곡 하여라! 돈벌이는 끝났다. 돈의 신은 죽었다’ (눅17:26~30)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 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② (12절)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 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들을 벌하리니”

▶ ‘심중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들’은 세속적인 번영과 성장에 빠져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사는 이들을 가리킨다.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 같이 가라앉아서’ 하나님을 안 믿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들 가운데서 세속적으로 타락한 이들을 솎아 내실 것을 가리킨다. 성경은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고 반드시 끝나는 날이 있다는 종말 신앙을 분명하게 증언한다. 이 땅의 삶을 마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한국교회는 종말신앙의 본래적인 메시지를 상실한 채 양극단적인 종말론에 빠져있다. 한쪽에서는 시한부종말론, 수한부종말론, 세대주의종말론 등 ‘임박한 종말론’으로 혹세무민해서 저세상만 바라보는 ‘피안주의(彼岸主義)’로 미혹한다. 이와 정반대로 다른 한쪽에서는 ‘지연된 종말론’으로 주님이 더디 오시거나 안 오실 것으로 여기며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현세주의(現世主義)’가 만연하고 있다. 이 둘 모두 종말신앙에 대한 극단적인 곡해와 오용의 소치다. 이제 한국교회는 모든 것이 끝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균형 잡힌 종말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③ (13절) “그들이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무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 거하지 못하며 포도원을 심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 (메시지성경) ‘그러나 기다려 보아라. 그들은 가진 것 전부를 잃게 되리라. 돈도 집도 땅도, 다 잃을 것이다. 집을 지어 올려도, 거기 들어가 살지 못할 것이다. 포도원을 만들어도, 거기서 나는 포도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스바냐의 예언은 예수께서 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눅12:16~20)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짖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 오늘날 많은 현대인은 어리석은 부자의 삶을 성공한 인생이라 여기며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그 뒤를 좇아산다. (15절)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물질과 소유는 소중함은 두말할 필요 없지만 두고 가는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썩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탐욕이나 탐심에 이끌려 살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행복의 필수적인 조건은 ‘자족’인데 물질에 대한 소유에는 결코 자족이란 없다. 지옥의 별칭인 무저갱처럼 결코 채울 수 없어서 늘 부족한 까닭이다.

 

 

2.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① (14절)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 (메시지성경) ‘하나님의 큰 심판 날이 코앞에 닥쳤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칠, 육, 오, 사... 내 심판 날은 비탄에 젖은 통공의 날이다. 억센 사내들도 도와 달라고 비명을 지른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날마다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다. (시90:10~12)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인생의 끝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오고 가깝고도 심히 빠름을 빨리 깨닫는 게 지혜다. 그래야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허비하지 않고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눅21:32~3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라는 구절은 문자적인 한 세대가 아니라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예외 없이 ‘그날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성경이 전하는 종말의 날은 중층적이다. 장차 올 이 세상의 종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벌어진 역사적인 국가의 멸망, 개인의 종말인 죽음, 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절망적인 상황을 모두 포함한다.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라는 구절은 개인의 죽음이나 재난처럼 이 땅을 사는 누구나, 모양은 다르지만 예외 없이 겪게 되는 종말론적인 사건을 말한다.

 

② (15절~16절)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며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 (메시지성경) ‘그날은 빚을 갚는 날이다. 내 노를 치르는 날이다. 비통과 격통의 날, 재난과 파멸의 날, 대낮에 흑암이 드리우는 날, 폭풍 구름과 먹구름의 날, 소름끼치는 전쟁의 함성이 들리는 날이다. 요새들이 함락되고 방어진이 허물어진다.’ 스바냐는 종말의 날에 벌어지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스바냐의 최후통첩은 B.C 587년 바벨론제국의 느브갓네살의 침공으로 이스라엘역사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졌다. 예수께서 하신 예루살렘성전파괴에 관한 예언도 A.D 70년 로마제국의 티투스장군의 침공으로 이스라엘역사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에도 과거 역사적인 종말의 날처럼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심판의 날이 온다는 사실을 증거 한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음의 순간에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적인 위기의 순간에 직접 목도하게 될 것이다.

 

③ (17절~18절)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니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찌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

▶ 스바냐가 전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멸망의 예언을 인생을 마치는 날에 우리도 동일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소경 같이’ 이 땅에서 눈을 감는 날, ‘티끌과 분토같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인생의 종말 곧 죽음의 순간이 온다.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인류는 개인적인 종말(죽음)을 예외 없이 경험하게 된다. 크기와 모양은 다르지만 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재난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나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날에 ‘은과 금’이 건지지 못한다. 성경이 전하는 종말은 세상의 종말, 국가의 멸망, 개인의 죽음, 삶에서 만나는 위기 등 그 모양은 다르지만 예외 없이 동일하게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 그렇다면, ‘장차 올 종말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누가복음21장에서 종말에 대처하는 믿음의 자세를 명료하게 가르쳐주셨다.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8절)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날과 그 시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반드시 ‘속히’ 오신다는 것이다. 둘째, (9절) ‘두려워하지 마라’ 환란의 날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도우시고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셋째, (35절)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앞서 살펴본 바대로 어느 시대나 누구도 예외가 없다. 끝으로 넷째, (36절)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최종적인 결론이다.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다.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내일 주님이 오셔도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대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이 전하는 종말론이 전하는 핵심은 알 수 없는 ‘종말의 날’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날이 언제인지가 아니라 그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을 사는 삶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삶을 겸비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을 인생의 종말인 죽음에 적용하면 더 분명해진다.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라’는 메시지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삶이 오히려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기쁨으로 감사하며 자족하며 살아낼 수 있다는 역설(逆說, paradox)이다. 그래서 성경이 전하는 종말신앙의 참된 메시지는 두렵고 무서운 종말이 아니라 유한한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는 ‘해피엔딩을 위한 행복한 종말론’이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