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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낯선 여행으로 초대

기사승인 2021.04.03  23:16:36

신현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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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낯선 여행으로 초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세계사, 2020)  

10년 전 작고한 작가 자신의 바램(박완서,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대로 한국 문학에서 박완서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간결 담백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나는 어느새 개풍군 박적골 어느 집 마당에 서있다. 해방 후, 서울 현저동 꼭대기 허술한 초가집 문간방에서 밤새 바느질품을 팔며 가만가만 이야기하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있다. 일제 강점기 교실에 앉아있는 듯 한 착각마저 든다. 섬세하고 또렷하게 술회하는 기억의 장면들을 곱씹고 상상하게 만든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문학 비평의 시각으로 평하지 않더라도, 그냥 읽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이야기에 작가의 삶을 이루는 크고 작은 줄기가 연결되어 있었고 소재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었다. 소용돌이 같은 시대의 인력(引力) 속에 있었겠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의 한국 현대사도 어찌할 수 없는 작가의 내면과 감정, 모녀간의 대화, 식탁과 복식, 가족사의 면면이 박완서 식 산문의 총화를 이룬다. 작가의 경험과 표현으로 특별할 것 없는 살림살이와 평범한 사물은 새로운 빛으로 반짝거린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해외여행을 탈출구로 삼기 시작했나. 지긋지긋한 일상을 벗어난 자유와 행복이 거기에 있다는 도식을 순진하게 믿고 살았다. 매출과 시청률 결과가 분명하기에 제품 광고나 방송계의 촬영은 언제나 해외를 선호해왔다.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과 거기에서 느낀 감상들에 역사와 문화 예술의 깊이를 가미하면 수많은 구독자들의 환호를 받기도 한다. 행복 없는 행복 추구의 역설처럼 일상과 동떨어진 무언가에 가치를 부여하는 통속이 매일의 삶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럴 즈음에 세상이 달라졌다. 새로운 일상 속, 해외여행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공항 이용자는 현격히 줄었다. 이민, 출장, 장기 체류와 유학 아닌 이상 큰돈을 들이는데, 오며 가며 한 달을 자가 격리에 쏟아버리면서까지 여행을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을 감수한다 해도 목적지가 되는 국가의 입국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변화는 일어났다. 타국의 풍경과 군상을 주시하며 렌즈로 탐색하고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여행은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새롭게 발견하는 ‘생활 속 다시 보기’로 대체되었다. 감염확산 속 요리와 집안 꾸미기에 열심인 이들이 부쩍 많아진 이유다. 늘 먹던 음식과 생활공간이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리라.

작가가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다면 지금의 새로운 일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상경과 이사 경험을 2주 해외여행 보다 더 실감나게 써내려갔던 박완서의 펜은 분명 두꺼운 현실의 껍데기 이면에 있는 삶과 죽음의 속살과 진실을 거침없이 표현해 냈을 것이다. 글로 남은 고인에 대한 깊은 감사가 밀려온다. 박완서의 글은 오늘도 마주하는 현실과 반복되는 일과의 한 순간에 우리를 멈추어 자세히 살피게 만드는 부드러운 이끌림이다.

<잃어버린 여행가방>과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의 한 대목을 소개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가장 두려워 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 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고 눈가림도 안 통할 테니 도리어 걱정이 안 된다. 걱정이란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할 때 생기는 법이다. 이게 저의 전부입니다. 나를 숨겨준 여행 가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시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
-“잃어버린 여행가방” 247쪽. 

그러나 아직도 죽음은 나에게 희망이다. 그 못할 노릇을 겪고 나서 한참 힘들 때, 특히 아침나절이 고통스러웠다. 하루를 살아낼 일이 아득하여 숨이 찼다. 그러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하루를 살아낸 만큼 내 아들과 가까워졌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저만치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죽음과 내 아들과의 동일시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면 요새도 가슴이 설렌다.
(...중략...)
사람이 나이 순서대로 죽게 되어 있다면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을까도 싶지만, 그렇게 되면 산다는 것이 죽음 앞에 늘어선 무력하고 긴 줄서기하고 무엇이 다를까. 오늘 살줄만 알고 내일 죽을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성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때로는 죽음이 희망이 된다” 261-264쪽.

신현희 목사 (안산나눔교회)

신현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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