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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칼국수 이야기

기사승인 2021.04.05  23:44:07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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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부산의 시장을 다시 뽑는 선거로 연일 시끌하다. 이런 선거철에 정치인들은 꼭 서민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시장에 가서 오뎅과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국밥도 선거에 이용되었던 음식 중에 하나다. 무엇보다도 정치인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음식 중의 하나는 칼국수다. 박정희와 김영삼이 대표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오늘의 칼국수의 대중화가 있게 한 사람이다. 1969년 박정희 정부는 혼분식 장려정책을 적극 펼쳤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로 강제로 정해 전국의 모든 식당에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분식을 팔게 했다. 학생들이 싸가는 도시락도 혼분식을 했는지 점검했었다. 이때 서민들에게 대중적인 수제비 대신 박정희가 내민 혼분식 음식이 칼국수였다. 당시 언론은 박정희가 육영수가 해 주는 칼국수를 먹는다고 수시로 보도를 하였다. 또 신문에서는 칼국수 조리법이 수시로 실렸고 식품영양학자들이 나서서 칼국수는 건강에 좋고 전통적이며 맛있는 음식이라는 관념을 국민의 머리에 각인시켰다. 

김영삼 대통령의 별명은 칼국수 대통령이었다. 그가 좋아했던 칼국수는 안동식 칼국수로 사골과 양지머리로 낸 국물에 국수면발도 두툼하게 썰지 않고 야들야들하게 썰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1969년 문을 연 성북동의 안동국시 전문점인 ‘국시집’ 칼국수를 좋아했다. 대통령 시절 청와대 주 메뉴로 칼국수가 올라왔고 국무회의나 각종 회담 자리에 칼국수를 내놓았다. 청와대 초청 귀빈 인사들은 거의 반강제적으로 칼국수를 먹어야 했다. 심지어 빌 클린턴 전 미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군사정권 이후 처음 들어선 문민정부에서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칼국수가 청와대의 단골 메뉴가 되면서 화제가 되었지만, 임기 말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책임자로 거론되면서 김영삼의 칼국수 정치도 막을 내렸다. 

칼국수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반대기를 지은 후 돌돌 말아 칼로 썰어 만든 면을 끓인 국수이다. 면을 만드는 방식을 음식 이름으로 따온 것이다. 칼국수 식으로 면을 만드는 방법, 즉 절면법(切麵法)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중국에는 없는 조리법이다.

밀가루가 흔했던 중국은 중국집 수타면 뽑는 방식, 즉 납면법(拉麵法)으로 면을 만들었다. 밀가루를 반죽하면 길게 늘일 수 있고, 밀가루 반죽의 양 끝을 잡고 늘이는 방식이 중국면의 기본이 되었다.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밀보다 메밀이 흔했고 메밀가루 반죽으로는 양끝을 잡아서 길게 늘일 수가 없기 때문에 반죽을 얇게 펴 돌돌 말아 칼로 써는 절면법(切麵法)을 이용하였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에만 있는 방식이 압착법(壓搾法)이다. 메밀 반죽을 국수틀에 넣고 누르는 방법으로 냉면이나 막국수를 이 방식으로 만드는데 일본에는 이 방식이 없다.

칼국수를 끓이는 방식으로 분류하자면, 면을 국물에 넣고 끓이면 제물칼국수, 면을 삶은 후 찬물에 헹구었다가 뜨거운 국물을 부으면 건진칼국수라고 한다. 제물칼국수는 면에 간이 배는 장점이 있는 반면 면의 겉이 거칠어지고 면의 겉에 붙어 있는 밀가루가 국물에 풀어져 탁해지고 생밀가루 냄새가 나는 것이 단점이다, 건진칼국수는 면의 표면이 깨끗하고 쫄깃한 촉감이 좋아지는 반면 제물칼국수에 비해 간이 심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건진칼국수는 경상도식이고 제물칼국수는 충청도식이다. 

칼국수는 크게 사골국물, 닭국물, 해물국물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이 국물에 따라 면의 굵기가 달라진다. 사골칼국수의 면이 가장 가늘고 닭칼국수는 중간이며 해물칼국수는 굵은 편이다. 이런 차이는 국물 맛의 강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가는 면의 사골칼국수는 씹지 않고 후루룩 넘기면서 목넘김의 쾌감을 즐기고, 굵은 면의 해물칼국수는 오물오물 씹으면서 쫀득한 면의 식감을 즐기는 게 요령이다.

1969년 성북동과 명동에 지금의 서울 칼국수집의 상징이 된 성북동의 ‘국시집’과 명동의 ‘명동칼국수’집이 생겼다. 두 집은 국물과 끓이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성북동의 칼국수는 쇠고기국물에 건진국수 방식을 썼고, 명동칼국수는 닭고기국물에 제물국수 전통을 따랐다.

1970년대까지 쌀이 부족하니 하루 한두 끼는 수제비 아니면 칼국수로 때우는 나날이 이어졌다. 1980년대에 들자 재래시장에서 칼국수는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 소형칼국수 기계가 등장하고 멸치, 북어 등 값싼 육수 재료가 공급되면서 칼국수가 번져나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즈음에 지역마다 개성 있는 칼국수가 등장하였다. 서울에서는 가는 면발의 제물칼국수가, 충청도 지역에서는 닭고기 국물에 중간 면발의 건진칼국수가, 해안 지역에서는 해산물국물에 굵은 면발의 건진칼국수가 생겼다. 강원도에서는 된장이나 고추장을 넣은 장 칼국수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꿩과 메밀을 이용한 칼국수를, 전라도에는 시장마다 팥칼국수를, 경북 및 대구와 대전 같은 내륙에서는 멸치 육수에 우린 칼국수를 주로 먹는다. 

내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최고의 칼국수는 20년 전 춘천에서 전도사로 생활할 때 먹었던 칼칼하고 걸쭉한 국물에 쫄깃하고 굵은 면발의 장칼국수였다. 강원도를 떠난 이후로 다른 곳에서는 그런 장칼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다. 그 집이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있다면 꼭 한번 다시 먹어보고 싶다.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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