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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

기사승인 2021.10.12  00:20:33

백광흠 한무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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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 마르틴 부버 저, 박홍규 역, 홍성사

마르틴 부버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비인간적인 시대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온전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가 평생 글을 쓰고 가르치며 살았던 세계적인 유대인 종교철학자이다. 히틀러에게 추방된 후 이스라엘로 건너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참된 삶은 서로 대화하며 만남에 있다” 말하곤 했다. 아랍 테러리스트에 대한 사형 선고를 반대하는 인권 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의 사상은 명료했다. 타인과 세상을 물건 취급하여 ‘그것’이라 하지 말고, 오직 존중함으로 ‘당신’이라 여기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것’ 취급하지 말라! 오늘 이 시대, 이보다 더 필요하고 강력하게 요청되는 시대 가치가 있겠는가?

우리는 타인을 세 종류 단어로 부른다. 첫째가 ‘나와 그것’이다. ‘그것’은 타인을 하나의 대상으로, 사물로 바라보는 단어다. 현대 사회가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타인은 내가 경험하거나 이용해야 할 그것이다. 나를 위해 거기 존재한다. 사랑해야 할 존재가 점차 기능에 불과한 그것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사람도 자연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그것이 된다. 인적자원, 핵심인물, 기능장애. 현대 사회가 인간을 신비에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고쳐야 할 문제나 이용해야 할 자원을 뜻하는 의미로 부르는 말들이다. 

타인을 즐겨 부르는 둘째 단어는 ‘우리와 그들’이다. 세상은 우리편과 그들편, 둘로 나뉜다. 이것은 세상이 생각하는 매우 편리한 방식이다. 잘못된 것은 무엇이든지 그들 때문이라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가 얼마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지, 어둠과 빛이 공존해 있으며, 상처도 줄 수 있지만 위로도 줄 수 있고, 서로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말이다. 이 말에서는 ‘우리’처럼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는 사람은 언제라도 위험하고 잘못된 존재가 될 수 있다. 국가, 종교, 인종, 성별, 연령, 정치, 생각이 다른 모두가 ‘그들’이 될 수 있다. 타자를 악마화 시키기 쉬운 ‘우리 그들’ 단어에서 신비나 온전함, 공존 같은 언어는 설 자리를 잃는다. 

마르틴 부버의 말이다. “사람은 '너'를 통하여 진정한 '나'가 됩니다.”

마르틴 부버의 책이 많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그의 생애와 사상을 전반적으로 다룬 책은 드물다. 이 책은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부버의 사상이 ‘나와 당신’의 철학으로 전환하게 되었는지 잘 그려내고 있다. 나와 당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결코 거기 존재하는 그것이 아닌, 나와는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그들도 아닌, 사람은 물론이고 말하지 못하는 동식물과 이 땅까지도 그것이 될 수 없는, 나와 당신! 시대가 절박하게 목말라 하는 단어가 아니었던가? 오늘 하루, 그의 말을 되씹어보며 지내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내가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홀로 고립되어 살 수 없습니다. 관계가 없으면 인간도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와 당신’입니다.”

백광흠 목사(한무리 교회)

백광흠 한무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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