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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율법의 폐기인가, 완성인가.

기사승인 2021.10.12  21:02:59

정승환 한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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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율법의 폐기인가, 완성인가.

<죽음의 세력과 싸우는 예수>, 매튜 티센 지음, 이형일 옮김, 새물결플러스

복음서를 해석할 때,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그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구약 성경에 있는 정결의식 체계를 반대하고, 그 모든 체계를 깨뜨리려는 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접근에 반대한다. 이는 현대의 시각으로 1세기의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예수님을 현대의 시각에 맞춰 해석하려는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이 제사장 전통의 정결의식체계를 깨드리려 했던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예수님은 1세기 유대인이라는 배경 속에 오셔서 제사장들의 정결의식체계를 인정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독특함은 당시 유대체계를 깨뜨리려고 했던 부분이 아니라 그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죽음의 세력을 제압하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셨다는 부분이었다. 예수님은 구약의 정결의식체계가 감당하지 못했던 일들을 완성하시는 분이었다. 이는 그 분의 메시아적 특성이었다. 저자는 이를 구약의 다양한 전통, 고대근동의 글, 그리스-로마의 글, 제2 성전기의 글들을 배경에 두고, 신약에서 죽음의 세력을 파하시고 구약을 완성시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경에 표현된 제사장들의 정결의식체계는 거룩함과 속됨, 정함과 부정함의 범주로 나뉜다. 거룩함과 속됨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로 구분이 된다. 영역의 구분이다. 이것은 정함, 부정함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정함과 부정함은 상태의 구분이다. 예를 들자면, 거룩한 영역에도 정함, 부정함이 있을 수 있고, 속된 영역에도 정함, 부정함이 있을 수 있다. 단, 속된 영역에서는 부정함이 존재할 수 있지만, 거룩한 영역에서는 부정함은 문제가 된다. 

거룩한 영역을 정함, 부정함의 범주와 연관해서 살펴보면, 부정한 것은 거룩한 곳으로 나아갈 수 없다. 부정함이 해결되어야 거룩한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정함에 관해서는 의식적 부정함과 도덕적 부정함으로 나뉜다. 의식적 부정함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비의도적인 부정함과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책에서 소개하는 “레프라(나병)”, 유출병, 시체 등이다. 이는 인간 안에 드리워진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죄로 여겨지지 않고, 단지 정결하게 해주는 의식을 거치면, 거룩한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면에 도덕적 부정함은 책임을 요구한다. 죄의 문제이고, 속죄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이러한 정결의식 체계를 해체하고자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정결의식 체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자신의 사역을 전개해나갔다. 이 책은 의식적 부정함에 처한 사람을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만드는 예수님을 소개한다. 의식적 부정함은 죽음을 상징하며, 거룩한 영역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거룩한 힘으로 의식적 부정함을 일으키는 죽음의 근원을 멸하고,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만드는 구원자이다. 

책에서는 주로 의식적 부정함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지만, 결론에서는 도덕적 부정함도 극복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이야기한다. 죽음이라는 최고의 부정함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전하며, 이후에 각 사람의 죄의 근원을 완전히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바라보게 해준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정결의식체계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결의식체계가 작동할 필요가 없는 생명의 세계를 만드신다. 정결의식체계는 거룩한 곳을 부정한 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데, 부정함을 일으키는 죽음의 근원을 예수님께서 제거하심으로서 정결의식 체계 자체를 필요 없게 만드신다. 예수님은 부정한 것의 근원을 소멸시키심으로, 온전한 생명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드신다. 

구약의 율법과 성전, 제사장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거룩한 것을 지키는 제한된 역할만 가능했다면, 예수님은 거룩한 능력으로 죽음의 근원을 파괴하여, 사람을 존재론적으로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분이다. 이는 죄와 죽음으로 신음하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고, 침투된 사건이었다. 예수님은 구약의 폐지가 아니라 구약을 완성시키시는 분이셨다. 

이 책을 통해서,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에 있어 섣부른 현대적 접근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약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적 배경과 당시 그리스-로마, 유대적 배경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연구보다 현대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우선시하면, 당시의 예수님께 현대적 이상을 투영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과거를 온전히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나 현대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끊임없는 지향을 통해 좀 더 온전한 예수님의 모습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이상에 사로잡힐 수 있었다. 예수님은 단순히 체계나 제도의 변화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시는 분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에는 인간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인간의 영적, 도덕적 한계성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궁극적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예수님의 일하심은 체계와 제도의 변화를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사건이다. 거룩한 것을, 인간을 보호해야할 제도와 체계를 필요 없게 만드시는 사건이다. 이 모든 것을 필요하게 만들었던 죄와 죽음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온전한 생명을 빚어내는 사건이다. 여전히 세상 속에 존재하는 죄와 죽음으로 인해 수많은 체계와 제도를 고안해 내는 삶 속에서 예수님이 이루실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희망해보며, 비밀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셋째는 생각을 넘어, 기도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심,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 나라가 이 세상에 시작되었고, 침투되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생명의 역사가 교회 속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교회의 모습을 그리는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속에도 여전히 어둠의 요소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둠의 요소만 있지는 않았다. 생명의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시작된 생명의 역사가 오늘 이 곳에 이어지기를, 이 곳을 거쳐, 영원으로 이어지기를. 그 기도였다.

정승환 목사 (한우리교회) 

정승환 한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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