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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울타리 만들기

기사승인 2022.01.15  22:20:24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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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흥행에 한참 물이 올랐다. 주가가 점점 상승하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치솟다가 싱겁게 바람이 빠지는 후보도 있다. 잠 못 이루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짐짓 가능성에 부푼 후보도 있다. ‘사람 열 번 된다’는 속담은 여기에도 해당 될 것이다. 아직 판세를 결정지을 상황은 보이지 않으며, 앞으로 치명적인 말실수, 가족 리스크, 측근 비리 등 몇 차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설날 밥상과 후보 등록 즈음 여론의 향방이 중요한 이유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얻어낸 대통령 직접선거는 5년마다 온 국민을 선거판으로 몰아 놓고 편을 가르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견해를 소신껏 밝히고, 당당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젠 공명선거가 정착되어 푯값을 구걸하려고도, 매수하려 들지도 않는다. 천문학적 선거비용은 옛말이 되었다. 총풍이나 북풍, 차떼기 등도 전설처럼 들린다. 지역감정을 자극하지만 이젠 노골적으로 부추기기 어렵다. 이젠 대선 과정은 순리대로 정착한 것일까?

사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라고 하지만 향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의 반장선거에도 상식과 금도가 있는 법인데, 대선전의 언로는 심하게 오염되었다. 정치의 방식은 말의 소통이고, 설득이며, 웅변인데 지나친 매도와 음모, 증오의 문법은 사회적 혈압을 높이고 국민적 신경증만 돋군다. 과도한 보도량과 후보에 대한 과잉 정보 역시 정치혐오와 불신을 낳고 있다. 물론 선거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즉에 실망의 체머리를 흔드는 무리도 많다.

이래저래 정치의 선진화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딱한 것은 짧은 5년 동안, 제한된 국가예산으로 너무 많은 보따리를 푼다는 점이다. 부자의 세금은 감면해주고, 돈 잘 버는 기업일수록 특혜를 약속한다. 그린벨트는 풀고, 아파트는 재개발하고, 도로망은 넓히고, 광역철로 노선은 다각화한다. 지역마다 꿈같은 공약으로 무성하다. 빈틈없이 남발되는 공약은 누구의 약속이 더 현실적인지 따질 겨를도 없다. 대선 후보는 결코 요술램프의 주인이 아니다.

이럴수록 놓치는 공약은 없을까? 선거 때만 되면 우르르 교회니 성당이니 절이니 골고루 찾아다니는 후보들의 뒤꽁무니만 보고 쉽게 종교심을 가르고 편을 나누는 것은 못할 짓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날마다 입버릇 처럼 말하는 선한 영향력을 대통령을 통해서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선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일이다. 그것은 세대, 성, 지역, 노사, 종교, 정치적 지향으로 갈라치고 대립하는 상황을 넘어서서 기도하듯 품어야 할 고민이다.

바로 우리 사회에서 약자를 편드는 일이고, 그늘진 현장에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이다. 물론 후보에게는 표가 별로 없는 곳이고, 언론의 관심 밖에 존재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비출만큼 회제성이 있을 리 없다. 허구헌날 뉴스에 부록처럼 나오는 사건 사고와 같은 현장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환부이고 아픔이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의 눈길을 붙잡아 두어야 한다. 아무개 한 사람을 편드는 일보다 백 사람의 편을 드는 아름다운 선거 운동일 것이다.

아픔은 우리 사회의 중심이다. 그곳은 가장 낮은 곳, 어두운 곳, 약한 곳, 깊은 곳이다. 일일이 보기를 들고 말 것도 없다. 우리 사회가 감추고 싶은 고난받는 삶의 현장이다. 우리 시대 양극화와 불평등이 만든 진자리는 빈곤, 차별, 질병, 학대, 소외, 방치, 폭력, 외로움과 두려움 여러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정치인들의 정책토론이고, 대안 제시며, 공약 중의 공약이어야 한다. 시장 방문에 앞서 찾아가야 할 이웃의 삶이다. 5년마다 더 나은 새로운 권력을 선출하는 이유다.

우리 세상의 중심은 화려한 조명이 있는 곳이 아니다. 뉴스가 단골손님처럼 들러가는 그런 이슈현장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아픔을 한복판에 둔다면, 비로소 ‘편’을 가르는 일을 잠시 멈추고 ‘곁’에 다가갈 수 있다. 사람의 고통 앞에서 네 편 내 편은 없다. 당장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불의는 참을 수 있어도 내 불이익은 참을 수 없다’는 세태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세상인심이 달라 진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가장 가치있는 것들은 대개 고난이라는 포장지로 싸여있다는 말도 있다. 비록 대선이 성인군자를 뽑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 시대에서 선한 마음과 의지를 보여줄 그런 한 사람을 골라내는 복된 일이어야 한다.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드는 법이다”(로버트 프로스트).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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