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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 엘리야를 또다시 보내시는 이유” 말라기 4장 1절~6절

기사승인 2022.01.17  14:07:38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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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 엘리야를 또다시 보내시는 이유” 말라기 4장 1절~6절

 

 

1.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

 

① (4장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한 해가 마치는 날이 있는 것처럼 세상이 끝나는 그 날도 반드시 온다. 종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세상의 종말, 역사의 종말, 인생의 종말 곧 죽음이다. 우리의 인생이 영원하지 않고 끝이 있다. 성경이 전하는 종말에 대처하는 믿음의 자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곧 오신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더디다고 방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를 증거 한다. 말라기는 그 날에 벌어질 사건을 분명하게 예고한다. (메시지성경) “두고 보아라. 그날이 오고 있다. 산불처럼 맹렬한 그날이, 악을 행하는 거만한 자들은 모두 땔감처럼 태워져 부서질 것이다. 오직 그을린 흙과 재만 남으리라. 그들에게는 암흑의 날이 될 것이다” 말라기는 계속해서 이와 전혀 다른 또 다른 운명을 기록한다.

 

② (2절~3절)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메시지성경) “그러나 너희는 기대하여라! 내 이름을 높이는 이들에게는 의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거기에서 치유의 빛이 흘러나올 것이다. 너희는 기운 펄펄한 망아지처럼 에너지가 넘치고, 악한 자들을 밟게 될 것이다. 그 날에, 그들은 너희에게 밟혀 재처럼 뒹굴 것이다. 만군의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다” 그 날은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벌어진다. 이것은 모든 예언자들이 전했던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이다. 대홍수의 날 물에 수장된 이들과 구별된 노아의 방주처럼 죽음은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종착역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영생의 시작이다. 세속적인 물질과 건강, 명예와 사람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세상의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멸망의 날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던 사람 곧 그 날을 고대하며 준비하며 살던 이들에게, 그 날은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이 나타나는 승리의 날이다.

▶ 그런 의미에서 종말은 모든 것이 끝장나는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이다. 죽음은 이 땅에서 눈을 감지만 아버지 품에서 눈을 뜨는 영생의 시작이다. 타락한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지면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성전이 내려온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한다. 세상의 통치자가 몰락하는 그 날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날이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의 장막이 열린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3~4).” 힘들고 아팠던 묵은 해가 지나가면 이제 새로운 희망의 새 해가 열린다. 그렇다면 이처럼 서로 다른 운명을 가르는 심판의 기준은 무엇인가? 말라기가 전하는 핵심은 여기에 있다.

 

2.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라

 

① (4절)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 하나님의 산, 호렙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 산을 가리킨다. 모세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께서 산에서 전하신 일명 산상수훈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에서부터 시작된 산상수훈의 말씀은 7장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마친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결론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말을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1~27).”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준행이다. 둘 다 집을 지었고 둘 다 말씀을 들었다. 차이는 준행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신앙의 생활화다.

 

② (5절~6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 (메시지성경) “그러나 동시에 앞을 내다보며 살아라. 내가 하나님의 큰 날-결정적 심판의 날-을 위해 예언자 엘리야를 보내어 길을 닦게 할 것이다. 그는 부모의 마음을 돌려 자녀를 돌보게 하고 자녀의 마음을 돌려 부모를 공경하게 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것을 거절하면 내가 와서 그 땅을 저주 아래 둘 것이다” 성서가 전하는 종말의 본질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끝나는 날이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모양은 다르지만 누구도 예외 없이 종말의 날을 경험한다. 종말의 때와 기한은 이단 사이비 단체가 주창하는 ‘알 수 없는 마지막 그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죽음을 통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듯, 종말신앙은 날마다 일상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며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선물로 준다.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엘리야를 다시 보내서 또 다시 거듭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선지 엘리야는 주의 길을 예배한 세례요한을 가리킨다. 그가 베푼 세례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다.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회개다. 새로운 삶의 유일한 조건은 회개다. 뉘우치는 만큼 새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세례요한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회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집을 떠난 탕자가 사는 유일한 길은 아버지의 품으로 돌이키는 것뿐 다른 길은 없다.

▶ 세상을 사는 다양한 삶의 방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욕심-죄-사망’, ‘말씀-의-생명’이다. 회개는 욕심에 이끌려 살던 삶에서 말씀이 이끄는 삶으로의 변화다. 욕심-죄-사망(멸망)에서 말씀-의-생명(구원)으로의 변화, 이것이 회개다. 새로운 한 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한 번의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단지 숫자만 바뀔 뿐 새로운 한해는 결코 오지 않는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회개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새 해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함으로 ‘욕심-죄-사망(멸망)’에서 ‘말씀-의-생명(구원)’으로 한 걸음 더 나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3. 예언서 강해를 마치며

 

① 역사성과 실재성 – 본 성경강해는 모든 예언서가 역사 속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예언서가 예언자들의 활동시기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정황을 분석하고 본래적 메시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구약 예언서의 중심이 되는 역사적 사건은 삶의 기반이던 국가의 멸망과 신앙의 토대가 되던 성전의 파괴다. ‘과거적 종말’인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과 성전파괴의 사건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이라는 관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에게 종말론적 사건으로 그 의미가 적용되고 확장된다. ‘현재적 종말’은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이고 ‘미래적 종말’은 우주적 종말과 인생의 종말인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② 통전성과 총체성 – 구약성서의 역사서가 바벨론 포로기(이하 포로기)를 중심으로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와 ‘에스라, 느헤미야’로 구분되고, 대예언서도 포로기를 전후로 ‘이사야, 예레미야’와 ‘에스겔, 다니엘’로 양분되듯이 12소선지서 역시 포로기를 전후로 해서 예언의 내용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역사서, 대예언서, 12소선지서까지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연속해서 세 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통전적인 시각을 통해서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종말에 관한 예언의 총체적인 메시지를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③ 다양성과 통일성 – 이런 맥락에서 12소선지서의 내용을 개괄하면, 번영과 안정 속에 무사안일을 경계한 ‘호세아, 아모스, 미가’, 이방열국의 흥망성쇠를 바라보며 타산지석으로 삼길 경고한 ‘요엘, 나훔, 오바댜, 요나’,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최후통첩을 전달한 ‘하박국, 스바냐’, 모든 것이 끝난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비전을 예언한 ‘학개, 스가랴, 말라기’로 나뉜다. 이와 더불어 소선지서 12권이 각각 전하는 다양하고 독특한 메시지를 구별해서 면밀하게 탐색하고자 했다. 특히 신약의 복음서와 바울서신, 요한계시록에 직간접적으로 인용된 예언서를 비교해서 종말신앙의 심층적인 메시지를 재발견하기 위함이다.

 

④ 오늘날, 예언서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 구약의 예언서는 성서가 전하는 종말 예언의 원형이다. 하지만 묵시로 기록되어 난해할 뿐 아니라 회개와 심판 같은 무거운 주제로 인해 널리 읽히지 않는 낯선 책들이다. 수천 년 전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다시 상고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구약의 예언서가 지금 전대미문의 재난(COVID-19)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와, 이제 코앞에 닥친 기후 위기를 맞이하게 될 이 시대를 향해 성찰과 회개를 통한 생존과 구원의 길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예언은 급속하게 몰락하는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와 회복의 언약인 까닭이다.

 

⑤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눅21:35)” - 성서가 전하는 종말의 본질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끝나는 날이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모양은 다르지만 누구도 예외 없이 종말의 날을 경험한다. 종말의 때와 기한은 이단 사이비 단체가 주창하는 ‘알 수 없는 마지막 그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죽음을 통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듯, 종말신앙은 날마다 일상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며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선물로 준다.

 

⑥ 삶의 방식을 바꾸는 회개 – 열두 명의 선지자는 시종일관 ‘회개’를 촉구한다. 회개는 삶의 목적과 방식을 바꾸는 회심이다. 오늘날 종교인이나 비종교인 할 것 없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밭들과 집들을 탐하는 우상숭배(미2:2)’에 빠져있다. 본 연구를 통해 신앙인들만이라도 ‘많이 소유하면 행복하다’라는 맹신에서 벗어나 ‘소유에서 향유로’ 변화되길 기도한다. 선지자들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재난의 원인을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한다. 본 연구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생태계의 파괴에서 창조질서의 회복으로 발걸음을 돌이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⑦ 한국교회 갱신의 초석 – 12소선지서가 전하는 회복의 길은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이다.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길도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이는 성경 오남용으로 미혹하는 이단사설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은 성경을 읽고 강해하던 ‘말씀사경회’에서 비롯된 회개운동이다. 본 연구는 말씀사경회의 전통에서 20년 동안 수요일마다 성경을 한 장씩 읽고 강해한 결과물이다. 이 연구가 강해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말씀을 사모하는 평신도들에게 성경공부를 돕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기존에 성경의 몇 구절을 묵상해서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큐티와 무작정 읽는 통독을 넘어 성경을 권별로 읽고 본래적 메시지를 주석하는 말씀사경회의 모델이 되길 소망한다.

 

※ 구약 예언서 강해를 모두 마치고, 다음 주부터 신약 요한계시록 강해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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