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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만세(萬歲)

기사승인 2022.01.23  00:13:31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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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식 교수(1922~)가 만 백세를 맞아서 기념문집을 출간하였다. 책 제목은 <풍류신학 백년>(동연)이다. 제목만으로도 무게감이 대단하다. 100세에 이르도록 학문적 평가를 담은 기념문집을 낼 수 있을 만큼 후학들이 존재하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그만큼 한국신학의 광맥을 탐구하던 분답다. 유 교수님은 자타가 공인하듯 한국신학의 토착화에서 풍류신학이라는 고유한 지분을 갖고 있다.

난생 처음 백수(百壽) 노인을 보았다. 지난해 연말에 두어 차례 차담을 나누면서 장수에 대해 새삼스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100세 시대란 말을 흔히 쓰지만 정작 백년인생은 결코 흔치 않다. 놀라운 일은 낮은 목소리가 논리적이고, 귀가 맑고 밝다. 여전히 홀로 지내기에 익숙하고, 주일예배에 성심껏 참석하며, 일기를 쓰는 일을 숙제로 삼고 있다. 이쯤 되면 초자연영역에 속할 사건이다. 그래서 백세 나이를 ‘상수’(上壽)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처음 유 교수님과 밥을 먹고, 말씀을 듣자니 경외감이 들었다.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학교 2년 후배라는 말에 한국현대사를 대면하는 듯하였다. 처음에 수학물리과에 진학했다가, 일본으로 유학하면서 전과하였다. 학병으로 징용되어 가고시마 전선에서 여러 차례 사선을 넘었다. 죽음은 오끼나와 턱 밑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귀국 후 1946년 감신에 편입하였다. 동급생보다 나이 든 그는 김지길, 박순경, 이영빈과 수학하였다.

졸업 후 8년 동안 모교 감신에서 가르쳤으나, 목사가 아니란 이유로 연세대학교로 교수직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목사의 길과 멀어진 이유가 있었다. 감신에서 강사하는 동안 자연스레 안수권유를 받았다. 그런데 목사 자격요건 6가지 중에 하나가 그의 목에 걸렸다. 학병 때 술을 배워 평소 반주(飯酒)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주초해서 못한다.” 엄격한 자기 검열이 목사의 길을 스스로 막은 셈이다.

새털처럼 가벼운 몸이지만, 단호한 분노를 담아낼 때가 있었다. 77년이 흘렀지만 일제에 대한 감정은 결코 해묵지 않았다. “왜정시대 못 겪은 사람은 8.15를 몰라!” 그는 자신의 신학적 배경에 일본에서 겪은 식민지 청년의 수모가 배어있다고 하였다. “우리 성씨(性氏)를 바꾼 놈들이야.” 이를 당나라에서 유학하면서 같은 수모를 겪었을 최치원의 분노에 빗대었다. 한국사상의 맥락이 ‘화랑도’와 ‘풍류도’로 이어지는 지점이었다. 유동식의 신학이 지극히 한국적인 까닭이다.

그의 인생의 고비고비가 흥미진진하다. 1950년 9월에 결혼을 약속하였는데, 전쟁이 터졌다. 모두들 남쪽으로 피난을 가는데 공주에서 교사로 일하던 그는 서울로 올라갔다. 약혼한 신부를 찾아야 했다. 목사 장인의 기도가 혼례의 전부였다. 장인은 딸을 “네가 데려가라”고 떠 넘겼다며 웃었다. 지금은 하늘나그네가 된 흰돌 윤정은 교수가 그의 아내이다. 100년 해로(偕老)라는 말도 있지만, 여전한 정분이 느껴진다.

유동식 교수는 자신의 호가 소금(素琴)인 이유를 말할 때 가장 진지해 보였다. 도연명 시에 나오는 ‘소금’은 줄이 없는 거문고라고 한다. 당연히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악기이다. 그는 자신이 평생 하나님 말씀을 가르친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줄 없는 거문고를 타면서 살았다며 하나님 앞에서 송구스럽다고 했다. 100세란 시간은 인간을 더욱 겸손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평생 20여 권의 책을 썼다. 가장 오랫동안 팔린 책이 <한국종교와 기독교>인데 “한글로 옮겨 놓으니 내가 못 읽겠어”라고 웃기신다. <한국신학의 광맥>은 독보적이다. 한국기독교사상을 정리한 최초의 시도로 ‘한’, ‘멋’, ‘삶’으로 분류하여 한국신학의 전개 방향으로 삼았다. 세 가지 요소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매개로 흔들리는 민족적 위기에 직면하여 어떻게 현실에 반응하고, 대응했는가에 따라 한국교회의 신앙형태와 교회사상이 결정되었다고 보았다. 그가 살아온 100년의 역사는 곧 자신의 학문적 배경이 되었다.

아무리 코로나19 상황이라지만 100년을 기념하는 일인데 상수 기념문집 출간행사가 너무 소박하여 유감이었다. 놀라운 것은 잔치를 주관한 동료요, 후배인 이계준 목사는 주인공을 위해 평생 60세, 고희, 미수, 90세 그리고 백수까지 축하문집을 꾸미고, 전집출판에 앞장선 장본인이다. 소금 유동식의 주요한 통과의례를 모두 연출하신 셈이다. 100년 사에 남을 ‘이만한 의리’가 먹먹하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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