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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Agora, 2009)

기사승인 2022.05.24  00:48:51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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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아고라》 (Agora, 2009)

   
 

《디 아더스》(2001)라는 독특한 공포영화로도 유명한 스페인의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아고라》는 391년의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그리스 철학자이자 수학자, 천문학자였던 대학자 히파티아(Hypatia)라는 여성을 그 주인공으로 삼는다. 기독교의 성장 시기를 배경으로 하기에 이 영화에는 흥미롭게도 4세기 말엽 교리사의 기독론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키릴로스(또는 시릴)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도 등장한다. 북아프리카 해안에 위치한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문명의 찬란한 중심지였다. 처음으로 이 문명의 중심지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은 가장 먼저 높이 135미터에 장장 40킬로미터까지 그 불빛이 미쳤다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의 등대’에 압도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모든 지성의 총화인 알렉산드리아에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도 있었다. 영화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타종교를 금지하여 기독교 세력의 팽창이 시작되던 시기, 박해받던 기독교가 이제는 박해하는 기독교로 돌아서기 시작한 이 시기에 철학과 과학의 도시 알렉산드리아가 서서히 광신의 태풍권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리를 위해 여인으로서의 사랑과 결혼도 포기한 채 학문에 매진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최고의 교사 히파티아는 귀족이든 노예든 진리에 있어서는 평등하다는 신념을 가슴에 품고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여인이다. 무엇보다 히파티아는 천체의 신비를 풀고자 애썼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신의 창조 질서를 누구보다 올바르게 전심으로 탐구하던 히파티아는 모든 합리적인 이성을 정죄하는 광기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해된다. 마치 이 광란의 소용돌이를 신의 시점으로 관조하듯 영화 속 카메라는 저 끝없는 우주로부터 지구로, 알렉산드리아로, 인간의 광신의 역사 속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서거나 또는 그 반대로 점점 물러서는 장면을 몇 차례 연출한다.

영화는 신념과 신앙은 결코 강요될 수 없고 강요되어서도 안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거룩한 교회사에서는 가려진 교회의 잔혹한 광기의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열정과 광기는 실로 종이 한 장 차이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바울은 살인도 불사할 정도로 교회를 박해했고, 똑같은 열정으로 그는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를 전했다. 유대인들 역시 하나님을 위한다는 열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던가. 결국 열정은 그 자체가 아니라 방향이 문제인 것이다. 그 방향이 나 자신의 내부를 향할 때 신앙은 열정이라는 이름을 간직하나, 그 방향이 타인을 향할 때 그것은 쉽게 광신으로, 괴물로 변한다. 교회사 속에서, 특히 예정론과 관련하여 후자의 경우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하나님의 예정을 나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이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는 수단이었으나, 타인을 향해 이것을 말할 때 기독교인들은 너무나도 쉽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너는 지옥에 가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단순한 논리 속에서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살해는 자행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히파티아는 자신의 애제자였다가 키레네의 주교가 된 시네시오스가 개종을 강요하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네시오스, 넌 네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 혹은 그럴 수 없거나. 하지만 난 그래야만 해.”(Synesius, you don’t question what you believe, or cannot. I must.) 진리의 끝자락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던 이 철학자는 결국 확신에 가득 찬 기독교 광신도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고 만다. “신념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라고 니체는 말했고,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이 있을 때 더욱더 철저하게 기쁨에 넘쳐 악을 행한다.”라고 파스칼은 말했다. 어쩌면 당신들은 지금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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