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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빚어내는 기억

기사승인 2022.05.29  01:24:41

신현희 안산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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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빚어내는 기억

<기억>, 박인환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2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아이를 안산화정영어마을 앞에 데려다준다. 상록수에서 20분쯤 차를 타고 가야 하는 화정동은 아직도 도심에서는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다. 영어마을과 밭을 사이에 두고 벽돌로 지은 예배당이 보인다. 그 예배당 주변에서 오래 살며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 책이라고 아이에게 소개했다. 

오늘도 휴대폰 안에 몇 장의 사진이 추가되었고, 수천수만 장을 인터넷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살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많지 않은 요즘이다. 그에 비하면 저자가 술회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색깔만 흑백일 뿐, 고화질 동영상처럼 남아있다. 건망증, 단기 기억 상실증이나 치매도 일종의 질병이지만 자연스럽게 망각하는 것은 세월이 가져다주는 축복일진데, 오랜 면밀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버겁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분명 치열했고 암담했을 그때인데 추억이라는 필터가 씌워지면 아름답고 그리운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문제는 잊어버리지 말아야할 것을 잊고 살거나 차츰 잊혀져도 좋을 과거에 매여 사는 것이다. 

저자는 전쟁을 전후로 남쪽으로 밀려 내려와 정착하게 된 집안, 가난한 이주민의 삶, 강원도 산골 상동에서의 상세한 추억을 짧은 호흡으로 하나씩 전해준다. 만화 <검정고무신>(이영일 이우영 원작)처럼 내게는 아버지 세대가 전해주는 이야기 보따리인데 손자 세대, 곧 우리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짧고 재미있고 교훈적인 대목이 있으면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읽어주었다. 풍족함으로 따지자면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요즘이지만 보고, 듣고, 놀고, 만나고, 먹었던 그때를 어린 아이의 시각 그대로 소환하고 있기에 아이들에게도 공감이 된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언제나 기억의 매개가 된다. 떡국과 무국, 얻어먹었던 사과 한 알에 분노, 안도, 수치, 만족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음식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던진 말 한마디와 얼핏 보인 표정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상처나 은혜로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의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지극히 사적인 추억담이지만 ‘누군가에게 지우기 힘든 자취로 남을 일’에 대한 엄격한 책임 의식으로 독자를 등 떠미는 책이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지난 일을 현재로 수렴하는 해석 주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상처받았다며 떠났겠다 싶을 사건인데 딱히 멀리 갈 수 없는 제한된 공간인 산골 마을이라는 배경과 척박한 생활환경이 도리어 은총이었다. 신앙 공동체와 멀어질 수 있고, 믿음이 흔들리고 실망했을 법한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고, 목회자의 삶과 신앙 체험으로 승화한 것은 분명 은총이다. 

주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 있었던 어둠과 슬픔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목격했던 억울한 죽음과 남겨진 슬픔 앞에 해결되지 않았던 질문과 묵은 채무감에 답하며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삶과 결단이 기억을 어느새 기념으로 바꾸고 있다.

신현희 목사 (안산나눔교회)

신현희 안산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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